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1

역사 서술 방식과 삼국시대의 성립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1

― 역사 서술 방식과 삼국시대의 성립 ―


본격적으로 삼국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 삼국시대를 어떤 방식으로 기술해야 할지 잠시 고민해보자!


고구려, 백제, 신라—나라별로 써야 할까?


아니면 인물 중심으로 풀어야 할까?


하지만 내 글은 정식 역사서가 아니니, 굳이 딱딱한 형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독자가 읽기 쉽고, 그 시대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사실 지금까지 내가 써온 역사 글도 딱히 형식을 갖춘 건 아니었다. 그때그때 시대 흐름에 맞춰 내 나름대로 정리했을 뿐이다.


역사 서술 방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역사는 역사가의 관점과 목적에 따라 다양한 서술 방식을 취한다.


그 목적이란 결국, 역사적 사실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있다. 대표적인 역사 서술 방식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기전체(紀傳體)


중국 사마천의 '사기'에서 처음 쓰인 방식으로, 인물 중심 서술 이다.

<본기(本紀)–열전(列傳)–표(表)–지(志)>의 4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물 생애와 업적, 당시 사회적·문화적 배경 까지도 생생히 드러낸다.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를 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삼국사기', '고려사'도 이 형식이다.


2. 편년체(編年體)


시간의 흐름대로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으로, 연·월·일 순서로 사건을 기록한다.


한눈에 사건 전개와 결과를 파악할 수 있으며, 일기나 연대기 형태로 많이 쓰인다.


대표적인 예는 '자치통, '조선왕조실록'이 있다.


3.기사본말체(記事本末體)


사건 중심으로 역사를 정리하는 방식이다. 같은 사건과 관련된 인물이나 시기를 하나 본말(本末) 아래 모아두기 때문에, 사건 단위의 이해에 탁월하다.


'삼국유사'가 대표적 기사본말체 서술서이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지금까지 써 온 역사 글을 전체적으로 살펴 보면 '편년체' 형식 '기사본말체'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삼국시대의 진짜 시작은 언제일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삼국시대 (三國時代)는 한반도 북부 고구려, 중서부 백제, 동남부 신라를 중심으로 펼쳐진 고대국가 시대를 말한다.


여기에 북쪽 부여, 남쪽 가야, 제주도 탐라, 울릉도 우산국 등 소국들도 존재했다.


'마한'도 '백제'와 상당기간 동시에 존재했다는 학설도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를 보면, 삼국 중 가장 먼저 건국된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신라'이다.


신라: 기원전 57년


고구려: 기원전 37년


백제: 기원전 18년


하지만 신라와 백제 건국연대는 고고학적 실증자료 부족때문에, 다소 조정이 필요하다는 설이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는 고구려가 가장 먼저 국가로 성립했다고 보는 견해가 더 우세하다.


실제 ‘삼국시대’는 몇 년 부터 시작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시대는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가 병존했던 시기로 이해되지만, 실제로 세 나라만 존재했던 시기는 562년부터 660년까지 약 '98년'에 불과하다.


가야는 6세기 중반 신라에 병합 되었고, 탐라국 등 몇몇 소국은 여전히 독립적인 상태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에 따라 '삼국시대'란 용어를 거두고 '오국시대' 혹은 '열국시대'라는 용어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삼국지위지동이전'에도 3세기 중반 한반도 중남부에 78개국이 존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옥저, 예, 부여, 낙랑군 등도 여전히 존속 중이었다.


즉, 삼국만 존재한 ‘진짜 삼국시대’ 는 4세기 이후로 보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더 가깝다.


이러한 시대 구분 혼선을 해결 하고자 등장한 개념이 바로 <원삼국시대>(Proto–삼국시대)이다.


역사학자 김원용은 '한국 고고학 개설'에서 기원후 1년부터 300년 까지 시기를 <원삼국시대>로 정의했다. 이는 국가로 성장하기 전, 연맹체 단계 고대 정치체들이 존재하던 시기로 본다.


만주: 부여, 고구려


한반도: 낙랑, 대방, 옥저, 동예, 삼한 등


고고학적으로는 <청동기소멸, 철기도래, 고인돌소멸, 와질토기> 등장 등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이 <원삼국시대>라는 용어는 '문헌사학계'에서는 채택 하지 않고 있으며, 고고학계 내 에서도 학자마다 다른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가야는 왜 ‘제4국’ 이 될 수 없었을까?


삼국과 함께 고대사의 또 하나의 축으로 가야가 존재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삼국시대를 ‘사국시대(四國時代)’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이는 학문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가야가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하기 전에 멸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야는 대부분 시기에 복수의 영도국이 존재했으며,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기 어려운 구조였다.


예를 들어,


1~2세기: 금관국, 고자국, 안라국, 독로국 → 사두 체제


3세기 이후: 포상팔국의 난으로 고자국·독로국 쇠퇴 → 금관국, 안라국, 반파국의 삼두체제


이에 반해 '마한'이나 '진한'은 유력한 영도국이 존재했으며, '백제'나 '신라'도 연맹단계에서 점차 국가로 성장해갔다는 점에서 '가야'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가장 먼저 등장하지만, 다양한 고고학적, 역사적 정황 보면 고구려 건국이 가장 빠르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따라서 본격적인 삼국사 이야기의 시작은 고구려 건국설화인 '고주몽' 편'에서 시작하려 한다.


이어서 고대사 2가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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