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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통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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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쉴만한 물가 Nov 05. 2024

니들이 부화를 알아?

생명 탄생의 신비

"엄마, 이번 어린이날 선물로 부화기 사줘~ 응? 제바알~~"

노란색을 가장 좋아하는 예람이는 작고 귀여운 거라면 어쩔 줄 몰라 동동거린다.

귀여운 동물의 아가들, 작은 인형, 길가에 예쁜 돌멩이, 길 가다 만나는 유모차 속  아가.

그런 예람이에게 삐약이는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사랑스러운 보석 같은 존재였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서울에 살았던 나는 시골을 경험해보지 못한 서울촌년이다.

어릴 적 자연과 벗하며 살았다면 달랐을 텐데 유년기부터 쭉 도시 생활만 해왔기에 남편과 내외하듯 자연생명체들과도 내외하게 된 것이다. 어릴 적 친구들이 귀엽다며 잡고 가지고 놀던 작은 생명들도 어쩐지 난 무섭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조류에 대한 예민함을 폭발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으니 여름방학을 맞아 사촌언니집에서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새"라는 영화를 본 후부터였다.

집에서도 텔레비전을 자주 보는 편이 아니었고 영화는 더욱이 자주 접하지 못했던 터라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 "새"는 새들이 인간을 공격하며 마을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내용이었다. 새들이 사람을 공격하는 모습이 훈련을 통해 가능한가? 어린 마음에 영화 속의 수많은 새들이 감독의 싸인에 맞춰 사람을 공격하는 연기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내용들은 재연이 아닌 실제 장면을 촬영한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영화가 남긴 것이라고는 조류에 대한 극심한 공포심뿐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볼 수 있는 새라야 몇 종류 되지도 않았지만 그 녀석들의 발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꼈고 푸드덕 거리는 날갯짓은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공포감을 주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조류 공포증으로 조금은 불편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로마에서 목격된 새 떼


그 시절 국민학교 앞에는 병아리와 메추리 새끼를 팔던 장사꾼들이 종종 왔었다. 어린이들은 귀여운 병아리들을 구경하느라 돗자리 앞은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 나는 삐약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 귀를 막고 학교 앞을 재빠르게 빠져나와야 했다.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초등학생으로 키울 만큼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귀엽다는 병아리 한 번 쓰다듬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조류를 끔찍이도 싫어했다.

 또 하나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소꿉놀이하듯 오늘은 뭘 해 먹나, 하루하루 새로운 메뉴를 만들던 신혼 시절이야기다.

그날은 결혼 후 처음 맞이하는 복날이었으니 난생처음 삼계탕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마트에 들러 삼계용 닭을 샀다. '여보 배고파~'를 외치며 퇴근할 남편을 위해 일찌감치 준비에 돌입했다.

  삼계용 닭 봉투 끄트머리를 잡고 툭툭 내려쳐 그것이 도마 위에 올려졌을 때, 난생처음으로 알몸으로 누워있는 생닭과 마주했다. 누구에게나 첫 경험은 잊지 못할 기억이 되겠지.  조류의 날 것과 마주하는 순간 한여름 더위가 싹 가시는 오싹함이 엄습했다.

얌전히 누워있던 그것이 나에게 푸드덕 날갯짓하며 날아올 것 같았다.  

견딜 수 없는 공포심에 그대로 방으로 뛰어들어가 남편의 퇴근 시간만 기다렸던 웃지 못할 추억이 떠오른다.




그런 나에게 두 딸이 부화기를 요구한 것이다.

시골 할아버지댁에서 키우는 닭들이 낳은 알을 가져와 부화한다는 거였다.

시댁에 가면 닭모닝 소리가 이른 새벽 우리를 깨웠다. 닭모닝 소리와 함께 기상한 아이들은 화장실로 달려가 소변을 보듯 닭장으로 직진해 막 낳은 뜨끈한 알을 수거해오곤 했다.

닭장에 들어가는 아이와 동행해야 할 때는 눈을 반쯤 감고 빡빡 거리며 푸드덕 거리는 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 손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고 따라가야 했던 기억이 있다. 


하루는 예람이는 생일을 맞아 대형마트 토이저러스에 데려갔다

“ 예람아, 생일선물로 갖고 싶은 거 하나 골라봐!”

" 이거 골랐어? 다른 거 좀 큰 거 골라도 되는데~"

작고 귀여운 걸 좋아하는 취향 덕분에 그 넓고 방대한 장난감 창고에서 8천 원짜리 병아리 인형을 단번에 골랐다. 효녀 났어 정말. 장난감 가게에서 떼쓰는 법이 없는 예람이가 생일선물로 8천 원짜리 인형을 골랐다며 놀이터에서 엄마들에게 자랑삼아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평소에 요구가 많지 않았던 아이라 아이가 원하는 건 웬만하면 사주고 싶었다.

초록창에 검색해 보니 부화기의 가격이 그리 비싸지도 않다.

몇 가지 다짐을 받고는 드디어 구입할 결심을 했다. 

"엄마가 많이 무서워하는 거 알지?

 엄마는 부화하는 과정에서 아무것도 도와줄 수가 없어.

 너희들이 그 모든 걸 감당한다면 한번 해보자."

아이들도 믿었지만 조류를 무서워하는 걸 잘 아는 남편이 있었기에 두렵지만 용기를 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할아버지댁에서 가져온 유정란 10알을 넣고 부화기의 전원을 켰다.



"부모는 자녀에게 사랑을 주지만, 자녀는 부모에게 용기를 준다."
– 에리카 종 (Erica Jong)

부화중인 알


부화기 내에서 부화가 문제없이 지속되고 있다면 이론상 탈각이 '오늘내일정도겠지' 하던 시점이었다. 

코로나로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대체되어  아이들은 줌수업 중이었다. 

"얘들아, 엄마는 자동차검사 예약일이라 1시간 내로 다녀올게.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차를 몰고 나와 자동차를 맡기고 기다리던 중 전화가 울린다.  '우리 집'이라는 문구와 함께.

" 엉엉엉  엄마 병아리가 죽은 거 같아. 얘가 피를 흘리고 있어. 죽을 거 같아. 엉엉"

식은땀이 등줄기에 차오른다. 숨이 가쁘고 심장이 빠르게 뛴다. 

" 무슨 일이야. 병아리가 나왔어? 엄마가 지금 갈게"

역사는 남편이 출근하고 애들과 나만 있는 그 순간에 일어났다. 

헐레벌떡 떨리는 손발을 부여잡고 집으로 들어가 보니 알 껍질이 방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다. 

국민학교 앞에서 보던 병아리보다 훨씬 작고 갈색빛을 띤 병아리는 젖은 채로 부화기 속에 누워있다. 한참을 들여다보니 아직 숨은 쉰다.

우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어찌 된 일인지 들어보니 엄마가 나가자마자 부화기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는 거다. 알을 꺼내보니 안에서 병아리가 부리로 쪼며 삐약거리는 소리는 나는데 알이 깨지지 않아 그대로 두면 병아리가 죽을 거 같았단다. 너무 무섭고 두려운데 병아리가 죽을까 봐 울면서 알을 손으로 직접 까주었단다.

온 몸이 젖은 채로 군데군데 피 묻어 서지도 못하는 힘 없는 병아리를 만나고는 죽을 것만 같아 무서웠다고 하는 거였다. 

정상적인 부화의 과정을 좀 더 지켜봤더라면 병아리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올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절묘한 타이밍에 아이의 도움의 손길로 목숨을 건지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첫 생명과 가슴 떨리는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다. 

10개의 알 중 3개의 알이 부화되었고 한 개는 탈각되지 못해, 다른 한 마리는 부화되고 몇 시간 내로 죽게 되었다. 온전히 건강하게 살아 있는 건 아이와 처음 만난 그 녀석뿐이었다. 잘못되는 일들을 경험한 후 며칠을 신경이 곤두섰다. 남편은 알아서 클 거라며 쿨쿨 잘도 잔다. 아이들은 신기하고 놀랍고 궁금하지만 그래도 잠은 잔다. 하지만 나는 긴긴 밤동안 잘 버텨줄지 걱정이 되어 한두 시간마다 보초를 섰다. 그렇게 3주 정도 키우고 날개에 깃털이 돋기 시작해 할머니댁에 보냈다. 

병아리를 3주 정도 키우며 조류공포증은 많이 좋아졌다. 아직 만질 수는 없지만 보는 건 얼마든지 가서 볼 수 있게 되었고 사람을 엄마인 양 따르는 병아리가 귀엽기도 했다. 

그 후 한번 더 시도한 부화에서는 7마리나 부화에 성공하였고 6마리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엄마도 조금씩 자란다. 

편견 없는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아이는 나보다 더 빨리 자라는 것 같다. 

그 덕분에 혼자였으면 절대 안 했을 몇 가지의 일들을 하게 되었고 

그 세계는 방대한 세계와 마주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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