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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쉴만한 물가 Nov 12. 2024

책놀이? 아니, 놀이터

늘봄교실 첫시간

드디어 8세가 되어 학교에 입학했다.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날 생각에 신이 난다. 학교는 어떤 곳일까? 진짜 크던데 학교에 가면 친구들도 엄청 많고 재미있겠지? 

 그런데 막상 학교에 가보니 화장실도 내 마음대로 못 가고 친구한테 할 얘기가 있는데도 서로 얘기하지 말라고 그런다. 빨리 집에 가서 놀아야겠다. 4교시야, 제발 빨리 지나가라. 

"네? 엄마? 늘봄교실에 가라고요? 나는 빨리 집에 오고 싶은데"

 거기 가면 재미있는 수업도 들을 수 있다고 방과 후처럼 다녀오라는 거였다. 엄마가 가라니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 빨리 집에 가서 놀고 싶었는데.. 

늘봄교실에 가보니 그래도 재미있는 수업을 한다. 놀이체육, 보드게임, 미술, 전래놀이. 재미있는 수업을 매일 할 수 있어서 꽤 괜찮다. 앗, 그런데 목요일은 책놀이? 으으윽, 4교시 동안 공부하고 왔는데 또 책을 봐야 한다고? 

     

늘봄교실 책놀이 수업은 아이들의 선택이 아닌, 늘봄교사의 선택이었다. 

아이들이 듣는 수업이라지만 아이들의 선호만 따라갔다가는 부모님들이 만족하시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루정도는 책 수업을 끼워 넣어 학부모님들도 만족하실 수업커리큘럼을 만들어보자는 늘봄교사의 큰 그림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열댓 명의 아이들 중 고작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한다. 

과목명도 독서논술이 아닌 책놀이로 변경해 아이들에게 친근하고 재미있게 다가가려고 노력했지만  ‘책’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거부감을 드러내는 아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아이들과 만나는 첫날, 뭐 입지?

외출하기 전 뭘 입어야 하나 하면서 옷장문을 열고 아래위 열심히 훑어본다. '에라이 모르겠다. 도저히 입을만한 게 없네.' 하며 외출을 포기해버리고 싶은 날이지만 오늘은 첫 수업이니 어떻게든 골라보도록 해야 했다. 

‘아이들과 만나는 첫날이니 음.. 저학년 아이들의 호감을 얻으려면 바지보다는 치마가 좋겠어. 1학년 아이들은 아무래도 밝은 색 톤을 좋아하겠지? 그럼 이너로 핑크색을 입자. 좋아, 완벽해.’ 

평소에는 청바지에 운동화를 즐겨신지만 수업이 있는 날은 아이들의 취향에 맞게 좀 더 신경을 써서 입는다. 핑크색 이너에 블랙 에이라인 원피스를 입고 또각또각 구둣소리를 내며 운전대를 잡았다. 

“아아아 음음 도레미파솔 솔~~~~~아아 안녕하세요, 친구들 ” 

20분 후 아이들과 만나기 위해 운전을 하며 솔 톤을 장착해 본다. 

여유롭게 주차를 마치고 4층 교실로 직진. 드르르르륵. 



“어, 누구지?

안녕하세요, 선생니임.

오늘은 무슨 수업이지? 

새로 온 선생님이다. 선생님 내가 선물로 마이쭈 줄게요. 

아, 알겠다. 우리 음악수업 해요?”


아이들이 나를 궁금해한다. 

아우, 이런 유치원생 같은 작고 귀여운 녀석들이라니. 무관심은 아니니 반은 성공이닷.

“친구들 앉아주세요. 선생님하고 인사하고 선생님 소개해 줄게요.

 모두 차렷, 공수, 인사. 안녕하세요. 선생님은 책놀이 강사 허니쌤이예요. 

 친구들 만나서 반가워요.”

처음 보는 선생님이 들어와 기대에 찬 눈을 반짝이던 아이들은 ‘책놀이’ 선생님 이라는 말에 필터링되지 않은 말들을 쏟아놓는다. 어린이답게. 


“안녕하세요오오오.

 아 책놀이요? 아. 나 책 싫어하는데. 

 책놀이선생님이었구나. 

 지금까지 공부하고 왔는데 또 책 읽어야 해요?

 우와. 책놀이요? 재미있겠다. 선생님 저는 책 읽는 거 좋아해요.”      


첫인사를 나눈 후 반응이 극과 극이다. 

다행히 책을 좋아하는 한 여자친구가 긍정적인 반응을 해준다.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고 수업 중에도 자주 돌아다니는 목소리가 아주 큰 선우.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며 목소리가 크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은유. 첫날부터 “제가 정말 속상하거든요.”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며 어두운 표정으로 뒷자리에 앉아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지환이. 

'음. 한 반에 한두 명 있을법한 금쪽이들이 여럿 눈에 보인다.' 

말이 많은 친구들은 목소리가 정말 크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말을 많이 하면서 복식호흡을 체득한 건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주변을 의식하지 않은 채 하고 싶은 말을 바로바로 한다.     

첫 시간은 나에게나 아이들에게나  중요하다.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 공을 들여 옷을 골라 입듯 아이들도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어 바른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첫 시간임에도 아이들이 집중해주지 않는다.  그러곤 너나 할 거 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책상 위에서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다. 나도 가만히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 그렇지. 지금은 정규수업 시간이 아닌 방과 후 프로그램이었지.' 

늘봄교실 첫 수업은 같은 연령아이들과 정규수업으로 만났던 느낌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학교 수업 대신 그림책을 읽는 건 환영이지만, 놀이시간에 책을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아이들의 생각이다. 

아이들은 그저 친구들을 만나 재미있는 놀이를 할 요량으로 여기와 앉아있는 것이었다. 

4교시가 끝나기만을 기다려 재미있게 놀고 싶어 늘봄교실에 달려온 아이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시간을 경험한 후 어떻게 하면 책에 관심 없는 아이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수업을 준비한다. 이 귀여운 아이들이 책을 통해 생각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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