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by 핑크리본

오늘 아침, 내 눈 앞이 마치 정지화면처럼 멈추어 보인다. 집 앞으로 난 인도에 오가는 사람 하나 없다. 무르익어 물컹한 감을 쪼던 새도, 새소리도 없다. 거실 창가에 면한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며 끓인 밥 한 술을 떠넣었다. 매일 먹는 밥, 목숨 부지를 위해 쑤셔 넣는 밥,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 밥을 입이 자동으로 씹어냈다.


사위가 숨 막힐 듯 적막하다. 이 적요를 깨고 싶어. 통유리창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아 온 힘을 다해 밀어 열었다. 멀리서 높고 짧은 새소리가 희미하게 창가로 새어 들어왔다. 새들이 서로 대화하듯 번갈아 울었다. 새소리가 살얼음 낀 호수표면을 톡 깨뜨려 동그란 파동을 만들어 주었다.


창문을 열자 거실공기와 바깥공기가 만나 창에 뿌연 결로가 만들어졌다. 작은 물방울이 바깥풍경을 가렸다. 탁탁탁,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사이로 새소리가 추임새처럼 끼어든다. 나는 방금 지저귄 높은음의 새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참새인가. 그보다 굵은 중저음의 소리는 물까치인 것도 같다. 물까치와 참새는 집 앞 화단 단골 손님이다. 마침 물까치 세 마리가 집 앞 소나무로 약간의 시차를 두고 날아 들었다. 새들은 빠른 동작으로 가지를 바꿔 앉는다. 음표가 오선지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춤을 추는 모양새다. 자신들의 노래를 몸으로 표현하는 것도 같다.


둘째 아이는 아직 자고 있다.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얼마 전 무서운 꿈을 꾸었다며 일어나자마자 내게 꿈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둘째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이야기가 간밤에 어떻게 연출되었을지 궁금하다.


첫째 아이 졸업식에 사들인 꽃을 투명 꽃병에 담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졸업식 덕분에 누린 호사다. 독서 중 간헐적으로 장미향이 콧 속으로 들어왔다. 창문도 열지 않았는데 옅은 바람이 지나간 건가. 내 주위에 바람이 있었구나, 생각한다. 꽃을 꽂아둔지 오늘로 오 일째. 꽃이 점점 시들고 있다. 아름다웠는데. 꽃봉오리의 고개가 힘없이 처졌다. 실크처럼 부드럽던 꽃잎이 말라 꽃잎 끝이 또르르 말려 올라갔다. 화병에 꽂힌 아름다운 꽃다발은 내 폰의 사진첩에서만 생생하게 살아있다. 죽어가는 꽃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꺾지 않았대도 언젠가는 잎을 떨구고 시들었을 거야, 합리화 기재가 불쑥 비집고 들어왔다. 죽이지 않았대도 사람은 언젠가 죽잖아라고 말한다면 어떨 것 같아,라고 꽃이 항변할 것만 같다.


둘째 아이와 새 학원에 가는 첫날이다. 학원을 시작할 때의 마음은 무척이나 무겁다. 선생님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과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경험을 하며 살아온 사람일까. 어떤 색의 마음이 몸속에 흐르는 사람일까. 이 인연은 짧게 끝날 것인지, 오래가게 될 것인지. 무의식의 세상에 들어찬, 고요하게 잠들어 있던 옛 감정들이 일어나 법석을 떨어댄다. 인사를 하고, 사정을 말하고, 탐색하고 알아가는 시간을 나는 늘 피해 다녔다. 목구멍에 무언가 걸려 있는 것처럼 불편하다. 목구멍에 박힌 덩어리가 어제의 나를 또 흔들었다. 나는 불안에 늘 진다. 복잡한 감정은 잠시 넣어두자. 오늘만은 단순하게. 입꼬리를 가까스로 올리고, 내 앞의 둔덕을 아이의 따뜻하고 말랑한 손을 꼭 잡고 함께 가뿐히 넘어보자. 내가 넘어지면 아이는 언제나 나를 작은 손바닥으로 따뜻하게 토닥여 줬으니까. 나를 살며시 안아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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