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by 핑크리본

영속적이지 않다. 내가 벌려 놓은 일들. 끊어지고 끝맺음이 불확실하다. 펼쳐 놓기만 하고 도망쳐 버린 일들. 그래서 쌓이는 것이 없다. 남는 것이 없다. 내가 보낸 하루가 부정적으로 훼손되고 내가 놀며 보낸 시간만 선명하게 남아 후회하고 반성하고 질타한다.


무언가 꿰어야 한다. 길고 하얀 줄에 차곡차곡 꿰어 이어 붙여야 한다. 색색의 하루를 목걸이로 완성해 밋밋한 목에 두르고 싶다. 긴 호흡이 힘들면 작은 반지라도 꿰어 새끼손가락에 걸고 싶다. 나도 완성했노라, 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느려진 심장에 채우고 싶다. 늘 마지막 매듭을 목전에 두고 눈을 돌린다. 이걸론 부족해, 아직은 아니야. 고개를 돌려 다른 것을 바라본다. 미완성작이 쌓인다. 가슴에 무능함을 새긴 채 돌아 서 버린다. 심장에는 어렴풋이 낭비된 시간으로 각인된다. 손에 쥐어지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누군가의 쌓여가는 글들을, 쌓이면서 발전하는 글들을 시샘 어린 눈으로, 때론 무기력한 자세로 읽어 내려간다. 나도 그렇게 해 보겠노라고. 마음을 가볍게 비우고 생각나는 글감을 가감 없이 두드려 보겠노라, 마음먹는다. 일상에서 불쑥 찾아온 글감이 번쩍 사라지기 전에 메모장을 꺼내 끼적인다. 메모는 다시 펼쳐보지 않게 되거나, 펼쳐 보더라도 스친 순간의 감정과 뉘앙스가 풍부하게 살아나지 않아 쓸모없게 된다. 그렇게 떠나보낸 글감만 수십 개. 가능하면 바로 써 내려가보자, 마음을 다잡는다. 힘 있게 나아간다. 한 문단 두 문단 써 내려간다. 조금만 더 조금만, 하다 어느새 욕심의 문턱을 넘긴다. 이내 글 속 미로에 갇히고 만다. 쓰고 지우고 윤색하고 덧대고 자르고. 순환의 고리에서 길을 잃는다. 갈아도 갈아도 끝도 없는 밭에서 허우적대다 자괴감에 빠진다. 역시 나는 안돼. 애초에 너무 큰 꿈이었어. 무리한 꿈. 내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덤볐어.


글이 지저분하게 찢긴다. 이게 뭐야. 글도 뭣도 아니잖아.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노트북을 열었더라. 글감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글감이 땅 속으로 꺼졌다. 나는 화가 나 흙을 꾹꾹 눌러 밟았다. 절대 나오지 마. 세상 밖으로. 세상에 나오기에 너무 못생겨졌어.


나의 머릿속에서 돌던 단어들을 슈웁 빨아들여 뱉어보자. 땅 위에 퉤 뱉어보자. 아무도 안 보이는 곳에. 아무도 모르게. 창백하고 푸른 점의 지구에 먼지 티끌도 되지 않는 단어 몇 자 갈겨 아무도 안 보이는 음지에 흘려 본다. 건강한 씨앗인지 감감무소식 씨앗인지는 내가 가리지 말자. 그냥 심고 심다 보면 자라는 나무도 있겠지. 다 죽을 수도 있겠고.


속이 후련한 걸로 된 거야. 그거면 된 거야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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