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희끗한 노년의 도예가는 나에게 너는 아직 젊고 유망하니, 앞으로도 열심히 작업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나는 그의 손이 30살인 내 손보다 부드러워 깜짝 놀랐다.
Leslie Manning, 그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몇 년 전 밴쿠버에 사는 작은 오빠 집에 갔다가, 시립도서관에서 나의 청춘을 응원해주던 그의 기사를 보았다. 여전히 그는 젊은 도예가들에게 너희들이 미래라며 응원해주고 있다. 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 같아 약간의 아쉬움이 느껴졌다.
남편은 기술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언제든 작업은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한다. 가끔 내가 유명해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비치면, 나를 위로하려고 하는 말인데, 음, 반반이다.
내가 도예를 좋아하는 것은 나만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끔 나의 작업에 대해서 사람들이 권유하는 혹은 자신이 희망하는 형태를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음, 나는 그런 면에서 보수적인 것 같다. 내 취향이 아니면, 동요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에서는 작가정신이 뛰어난 것 같다.
대학원 논문을 쓸 때, 어떤 형태에 영감을 받아 주제로 정하고 조형물을 만드는 것은 학부생 수준의 작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나는 결이 다른 논문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쓸 거면, 학교 다니지 마"
앞 선 졸업생들의 논문을 본 남편이 나에게 던진 말이다. 남편은 내 지도교수님보다 더 엄격했다.
나는 아름다운 청춘을 보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렇게 열심히 작업하진 못할 것 같다. 막상 그때를 돌이켜보니, 살짝 눈물이 난다. 절대 아쉬워서가 아니다, 단지 그리울 뿐이다.
World Ceramic International Competition 3rd.
나는 두 번 다시 큰 상을 받을 자신이 없어서, 수상자로 참석하겠냐는 연락을 받았을 때 한 번에 간다고 대답을 했다. 나름 세계적인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의 도예 인생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옆 자리에 앉은 E대 스카프녀가 나에게 학부생이냐고 묻는다. 이건 또 뭐지?
"제가 최연소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딱 잘라 말했다.
니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나 남편 있거든.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족석에 앉아있던 남편 옆 자리 동행인이 이렇게 물었단다.
"Who's your wife?"
"small one."
스카프라도 하나 목에 둘렀어야 했다.
그녀는 나의 랜선 절친이다. 정작 내 배우와 상관없이
"Can I upload your drawings?"
"Oh! yes, My pleasure. But I feel ashamed......"
우리는 별그램에서 만났다. 내 그림들을 보면서 그녀는 언제나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준다.
그녀는 인도네시아 사람이다. 만 이천 명이나 되는 follower를 거느리고 있고, 나는 그중 한 명이다.
사실 중국 드라마는 본토 다음으로 인도네시아가 큰 시장이다. 남들은 한류가 대세라고 하지만, 우리들의 세계에서는 얘기가 좀 다르다.
어느 날 밤, 나는 그렇게 그의 세계에서 데뷔를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밤을 보냈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친구들은 내 배우에게 직접 DM을 보내보라고 한다. 나의 정성에 감사한 마음을 느낄 거라고.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그를 좋아하는 것인지 그의 사진을 좋아하는 것인지 그의 사진을 보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것인지 나조차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