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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Jul 07. 2023

오랜만에, 신작

Noritake in Nagoya

가수 김현철이 오랜만에 새 앨범을 발표했다.

비와 관련된 노래들이었는데, 뭐 음원을 구입할 건 아니지만, 궁금해서 몇 곡 들어봤다.

가사가 매우 일상적이었다. 어렵지 않고, 술술 내뱉을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너무 익숙한 얘기들이라서 그리 즐겁진 않았다.

뭔가 새로운 걸 기대한 내 마음에,

, 아저씨도 늙었구나!하는 아쉬움이 더 컸다.

나도 늙고, 그도 늙고.

우리의 대화는 이제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은가 보다.


문득 1집 앨범에 있던 노래제목이 37도였는지, 38도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둘 중 하나인 줄 알았는데, 정작 <32℃ 여름>이었다.

온도차가 이렇게 클 줄이야.

90년대 당시로는 굉장히 신선한 노래 제목이었고, 인터뷰에서 사람이 느끼는 더위가 32도를 기점으로 바뀐다나 어쩐다나...... 모든 것이 가물가물하다.


"요즘 친구들 얘기가 아니다. 제 학생 때 얘기, 그러니까 저희 세대를 위한 곡"

인터뷰 기사를 천천히 읽어보니, 내가 신곡을 제대로 이해한 건 맞았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그럼 나는 어떨까?

나에게도 신선함이 남아 있을까?

대학 졸업작품과 대학원 졸업작품, 느낌은 비슷하다.

십 수년간의 작업을 돌이켜 보면, 나는 항상 제자리에 있는 느낌이다.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는 언제나 같았고, 그 주변을 크게 맴돌고 있을 뿐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고 결심하지만,

지난번 혹은 지지난 번과 유사한 작품이다.


내가 그의 신곡을 신선하게 느끼지 않는 것처럼,

남들도 이미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오른쪽 사진 가마 굴뚝을 보고, 나혼자만 울컥한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우리 가족은 나고야 여행을 다녀왔다.

Yoon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미식의 도시 오사카보다 나는 나고야가 잔잔해서 더 좋았다. 도요타자동차 박물관을 갔을 때, 남편이 자동차를 좋아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무엇보다 그곳에는 Noritake 본사가 있다.

Noritake 작업실

지 씨 성을 가진 두 남자에게, 나는 전공자이므로, 혼자 작업실 구경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의 즐거움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 혼자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부는 아주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고, 작업실은 훌륭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묵묵히 가마를 재고 있는 직원을 한참 바라봤더니, 그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아마 나만큼 오랫동안 자신을 주시한 방문객은 없었으리라.

멀리서, 코일이 가득 감긴 가마 내부 사진을 찍었는데, 내가 산업스파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달까.


마침 작업을 하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 나도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도예가이며, 혹시 흙을 조금 만져볼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살짝 콧웃음을 쳤다. 하지만, 나는 그를 향해 너와 나는 한 핏줄이라는 눈빛을 쐈다.

그가 나에게 흙을 조금 건네주었고, 가져가도 좋다는 말을 했다.

나는 문익점 아저씨가 목화씨를 붓통에 넣어 국경을 넘었던 것처럼, 작은 흙 한 덩어리를 아주 소중히 여겼다.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 문득 그 사실이 떠올랐다.

건조 - 수비 - 반죽 - 성형. 단계는 정확하지만, 내용은 미니멀

건조상태의 흙에 물을 넣어 무르게 만드는데, 이 과정을 '수비'라고 한다.

신기한 것은 수비를 거친 흙은 점성이 '0'이다.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란 얘기다.

그 결을 찾기 위해 반죽을 해야 하는데, 엄지와 검지를 이용한 건 내 평생 처음이었다.


'무엇'만들 것인지는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덩어리를 나누고, 조금씩 형태를 찾아갔다.

머릿속의 생각이 먼저인지 내 손의 기억이 먼저인지

분간할 순 없었지만, 내 몸이 기억하는 데로 자연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순간, 주변의 모든 사물은 멈춰있고, 텅 빈 공간에서

나 혼자만 흙을 주무르고 있다.


"문득 음악을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남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때 '신곡을 썼어야 했는데'하고 후회하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나 싶었다"

                                                             - 중앙일보 인터뷰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결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뿐,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무작정 새로운 것을 쫓겠다고 게으름을 피우기보다는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

다시 한번 부지런을 떨어야겠다.

무엇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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