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의 일화
독일인 작가 루이제 린저의 유명작 <삶의 한가운데>는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여자 형제들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든지 혹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든지 둘 중 하나다."
나는 이 책의 첫 문장을 읽자마자 이 책에 당분간 내 시간을 바쳐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와 여동생 세현과의 관계는 오랫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제야 겨우 조금씩 알게 되는 상태 사이에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동생과 고작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지만 그렇게 옆에 있으면서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를 순도 높은 진심으로 알려고 한 적이 없었다. 나는 남들에게 나만 앞세워 자랑하기에도 바빴다. 어딘가 나보다 느리고 신중한 동생이랑은 정말 맞지 않다 생각했다. 그리고 얼추 세현을 다 알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각자 떨어져 살던 학창 시절을 지나 재작년부터 동생과 함께 살게 되면서 나는 세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되면서 수반되는 것들이 많다. 우린 자주 싸운다. 그리고 삐죽거리는 말투이지만 빠르게 화해한다. 같은 배에서 나왔다는 게 의심될 정도로 너무나 첨예하게 다른 의견을 갖다가도 바깥세상에는 절대 못 말할 이야기를 우리의 유대감을 믿고 뱉기도 한다. 우린 서로를 자주 웃기는 개그맨이고, 같이 어느 날 계시를 받은 듯 디저트에 입이 터져 달다구리를 옴팡지게 먹기도 한다.(월경주기가 비슷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옛날 k-pop을 틀고 막춤을 같이 춘다. 유리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우스꽝스럽지만 좋다. 우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제야 서로를 알아가기에 더 모른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상대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 알아가는 것의 시작인 것 같다. 우리는 아래와 같은 대화를 한 적도 있다.
<함께 장을 보고 돌아와 땀을 식히며 한 동생과의 대화>
- 나는 언니를 봐도 봐도 모르겠어.
- 왜?
- 언니를 이런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또 다른 날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야.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 엄마아빠도 마찬가지고.
- 그건 우리가 서로 많이 애착관계가 형성되어서 그런 거 아닐까. 우린 정말 관심 없는 대상을 두고 무언가 확정 짓는 말을 하잖아. 얘는 이렇고, 저건 저래. 마치 모든 것을 파악했다는 권능감을 갖는 것처럼.
- 아니 권능감이 아니야. 그냥 그 정도로 판단하고자 결정한 거지. 난 더 이상 그 사람 혹은 사물을 알 필요가 없고 이 정도까지만 생각하기로 결심한 거야.
- 그렇구나.
- 그래서 난 어딜 가서 언니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면 정말 뭐라고 답할 수가 없어.
위 대화처럼 우리는 서로를 알기 위해 계속 헤맬 것 같다. 내 동생이지만, 내 언니이지만 전혀 모르겠는 이 사람. 제일 편하지만 어느 순간 제일 낯선 사람. 세상에서 절대 잃을 수 없는 제일 첫 번째 사람은 다름 아닌 동생이다. 하나의 일화를 콕 집을 순 없는 것은 세현이 그냥 내 삶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기꺼이 세현을 알아가고자 길을 여러 번 잃을 것이고 헤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