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참 착한 나를 독하게 해

가해자는 소시오패스였다!

소시오패스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들 얻어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타인의 고통과 상처는 이들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보통 권력이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진심 감탄해하거나 부러워하거나 무서워하는 등 타인의 감정도 갖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서 협박과 회유를 번갈아 써가면서 사람들을 조련한다.  

이들은 자신의 선택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며 단지 비용과 효율만을 따진다. 쓸모와 무쓸모는 모든 인간관계의 기준이 된다. 승부욕이 강하며 권태를 견디지 못하고 항상 자극과 갈등을 원한다.  

배려, 미안함, 죄책감 등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감정들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연습하고 흉내 낸다. 하지만 흉내 내려는 노력이 너무 과한 나머지 어색할 때가 있다. 사과와 배려의 타이밍이 항상 어긋나기 때문에 뜬금없을 때가 많다. 

그들은 현실을 재구성해 실제보다 더 영리하고 강한 사람으로 본인을 프로그래밍한다. 이를 위해서 본인 주변의 사람들, 환경, 지위, 재력 등을 부풀려 자신을 한껏 포장한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거짓말일 경우가 많다. 

본인이 프로그래밍하려고 하는 모습을 가진 사람을 특히 두려워한다. 

가해자인 팀장 역시 처음 인사하는 자리에서부터 공무원으로서의 본인의 이력, 지역 유지라는 아버지의 재력, 정부 기관 곳곳에 닿아있는 본인의 인맥 등을 과시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들은 너무나 쉽게 사실 확인이 가능한 것들이었다. 가해자에게 한 가지 능력이 있었다면 거짓말이 들통났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대담함이었다. 

그리고 본인의 폭력적인 성향을 무용담으로 자주 늘어놓았다. 화가 나서 물건들을 다 부숴버렸다, 누가 보는 앞에서 뭘 던졌다 등 이런 이야기들을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우리가 두려워하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이렇게 가해자는 우리의 감정을 컨트롤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본인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의 친분이 쌓이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다른 기관 공무원들끼리 사적으로 만나는 모임도 본인에게 보고하길 바랬다. 본인의 상자 속에서만 있길 원했다.  

이런 가해자의 괴롭힘은 나를 포함한 계약직 공무원들에게만 가해졌다. 항상 우리의 약점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계약과 이직은 가해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협박이었고 폭력이었다. 

'다른 곳으로 옮길 때 전화해서 안 좋은 얘기 하겠다'

'계약 연장 못하게 하겠다'

'나한테 100% 맞추지 않으면 재계약 못하게 할 수 있다'

'한 명이 잘못하면 전부다 재계약 안 해줄 것이다'

가해자는 우리가 그 말에 반응하길 바랬다. 하지만 셋 중 누구 하나 계약직이라는 신분에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그야말로 정글 같았던 각자의 분야에서 살아남은 불굴의 프리랜서들이었으니까. 다시 정글로 돌아가는 게 사실 싫기는 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공무원을 목표로 살아온 사람들도 아니었다. 편하게 일하려고 공무원을 선택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일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가해자는 우리가 그저 공무원이 되고 싶어 환장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런 사람과 잘 지내는 방법은 나의 생각과 의지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본인보다 능력이 없음을 최대한 증명해서 당신만이 나를 구원해줄 수 있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최소한 이렇게 괴롭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불행히도 나는 생각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고 그에 따라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거짓말을 분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사회생활의 당연한 행동방식이 가해자에게는 눈엣가시가 되었고 괴롭힘은 점점 단계를 밟아나갔다. 

나는 좀 독해져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