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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Nov 27. 2023

백기를 들어 놓는 최선의 수

초침이 너무도 빨리 움직인다. 무너져 가는 하늘을 보며 솟아날 구멍을 찾는 사람에겐 시간이 빠르게 느껴진다. 시간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다.


2023년 7월부터 시작된 재정악화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다. 이미 2018년에 겪은 상황을 복하는 것이 아닐까.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지, 두 번이나 겪는다면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에게 자문자답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과거에는 직장에서 답을 찾았다.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면 해결된다는 생각. 다행히 대기업 문턱을 넘었고, 전화위복을 맞이했었다. 지금은 사업에서 답을 찾고 있다. 실패는 사업의 영역이지, 직장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실패를 감수하겠다는 각오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각오와 달리 실패는 쓰다. 만약 사업을 잘 일구던 때 인맥을 넓혔다면 더욱 쓰게 느껴진다. 주변에 이미 '잘하는 사람, 성실한 사람' 등으로 포장되어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또 잘 일구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때문에 마치 '나 빼고 모두가 사업을 잘 영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곳에서 나 혼자 절망이 일어난다. 사업은 나의 업인데 어느 순간 타인과 비교나 경쟁을 하며 정답을 체크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들을 인지하기 시작한 후로는 슬슬 백기를 들 준비를 했다. 바둑처럼 앞을 내다보며 최악의 수와 최선의 수를 계산했다.


백기를 드는 것은 이미지를 깨는 것이다. '나는 실패했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외부로 포장했던 이미지들을 버리고 게으른 사람, 신뢰가 없는 사람, 경제관념이 부족한 사람, 또 실패한 사람. 정 반대에 위치한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심을 한 후 생애 처음으로 백기를 들었다. 비수기를 돌파했지만 흑자도산의 우려가 있고, 숨만 쉬어도 몇 백만 원을 지출하고 있는 현실, 앞으로 두 달 후 판가름이 날 최악의 미래와 최선의 미래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모두 드러냈다.


강한 것이 아니라 강한 척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 강해야 한다고 옭아매고 있었다. 나약해도 되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파국을 맞이한다. 10년 전부터 멘토로 여겨왔던 이효찬 님의 글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이때 죽는 것은 내가 그동안 구축했던 생활과 모습에 대한 파국이지, 삶으로서의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다'


어젯밤, 백기가 가장 마지막으로 도달한 곳은 1년 가까이 함께 일해주시던 알바 분이었다. 사업을 영위할 때 누군가를 고용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계, 즉 삶의 일부를 함께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아무나 고용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오늘은 이상하리 만큼 개운하게 눈이 떠졌다.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다. 가릴 것이 없으니 마음도 가볍다. 앞으로 두 달, 최선의 수를 두기에 가장 좋은 시작이다. 아직 능력이 남아 있고, 버틸 체력이 있다. 앞서 실패를 경험한 선배들과 지지해 주는 지인들이 있다.


앞으로도 사업을 하면서 여러 번 실패할 수 있다.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며, 인생의 패배도 아니고, 결론도 아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말자. 그렇기에 어떠한 실패를 마주하더라도 나는 아침에 일어나 최선의 수 하나를 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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