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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회 Mar 27. 2024

장가계 천문산

천문동

장지아제?

중국 여행의 최상급 상품이죠


뙤놈들도 일컫기를


사람이(人) 살면서(生) 장가계(張家界)에 도(到)달해 보지 못했다면(不)

100살(百歲)이 되었다 한들 어찌(豈) 능(能)히 어른(老翁)이라 칭(稱)할 수 있겠는가?

인생부도장가계(人生不到張家界)

백세기능칭노옹(百歲豈能稱老翁)

이라 극찬했다는 곳입니다




결행 26일 전


밤중에 중딩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쇄도했습니다


여차저차해서 결원 때문에 문제가 생겼으니 웬만하면 장가계에 좀 따라가자


말인즉


계원초등학교 11기 모임에서 장가계 여행을 도모하여 도원결의를 한 바

20명이 동의하여 여행사와 예약을 했는데 4명이 불기피하게 동참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약 80여 만원의 페널티를 물게 되었겠다


4명의 대체 인원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명석중학교 동창 관계인 저를 공략했겠죠


때마침 싱가포르 출장 언저리라 여권은 따끈따끈했고

장가계는 미답지였으니 회사사정이 여여하다면 흔쾌히 동행하겠노라


그들의 노력으로 여자분 게스트 1명이 합류하고 도합 여걸 14명, 남쫄 4명이 확보되었답니다

졸지에 소림사 18동인이 결성되어 좌충우돌 중국 호남성 장가계로 행차하였으니

5년 전 백두산에 이어 중국 관광 제2탄이 되겠습니다


장가계를 본 소감은


백세기능칭노옹이라 했듯이

비로소 변방의 늙은이가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과

짐이었겠지만 끼워준 계원초교 친구들께 감사할 뿐입니다


03/23 김해에서 출국하여

03/26 귀국한 바

이틀의 연차 휴가를 더한 3박4일의 일정이었습니다

비용은 140만 원인데

동창회에서 20만 원을 지원하여 120만 원에 다녀온 셈이니 더더욱 감사한 거죠

훗날 그들의 행사 때 은전을 되갚으리다




이곳 지형이 참 독특한데요

수억 년 전에는 바다였답니다

석영 사암지대가 지각변동에 의하여 융기가 되었을 텐데 물속에 잠겨있던 땅이 일거에 하늘로 솟구쳤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침식과 풍화작용에 의하여 약한 부위는 무너지고 석회암은 흘러 내려서 강한 부분만 살아남았으니 죽순이 빼곡하듯 돌기둥이 삐죽삐죽할 겁니다

무려 3,100개가 넘는다고 하네요


골이 깊으니

물도 많을 것이고

물이 많다는 건 당연히 안개를 수반할 터

안개는 척박한 돌기둥에 나무를 키우고

소나무는 침봉과 운무와 어우러져 수만 폭의 동양화가 되었죠


무림 고수들이 휙휙 날아다니듯 무협지에나 나올법한 풍경이며

상상 속의 신선놀음을 연상케 하여 한국인의 정서에 딱 부합하는 모양새가 바로 장가계인 거죠


실제로 이곳을 통칭하는 이름은 무릉원(武陵源)인데요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바로 그 무릉도원이라 하더이다


노자와 장자에 익숙한 우리들은 마치 신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풍경에 열광하는 것이고

이곳을 관광하는 외국인의 80퍼센트는 한국인이라 하는군요


뙤놈들은 한나라의 후손이라 하여 스스로를 한족으로 추켜 세우지만

그 이전에 상나라가 있었고

상나라가 망한 후 집권층의 후예들은 장사를 하여 부자가 되었죠

부자가 된 상(商)나라 사람(人)을 상인이라 하는데요


오늘날 최고의 장사꾼답게 장가계의 요소마다 통과세를 내도록 설계해 놓았습니다


백두산도 그렇고 한국인의 정서를 교묘하게 이용했을 겁니다

그야말로 비단장사 왕서방인 거죠


모르긴 해도 우리들이 장가계의 토가족을 먹여 살리는 게 아닐까!


만약 설악산을 막아놓고 입장료를 10만 원쯤 내라고 하면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중국의 유명 관광지는

한국인 관광 선배님들께서 얼마나 화끈하고 확실하게 길을 닦아 놓았던지

곳곳에 한글 표시가 있고

귀가 따갑도록 한국말로 호객행위를 하고요

중국돈

미국돈

한국돈

모두 받아 줍니다




이곳에는

장가계

원가계

양가계 등 비슷한 명칭이 많은데요


풀이하면

장가계는 장씨 성을 가진 사람의 영역

원가계는 원가의 나와바리

양가계는 양가의 구역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를 지칭할까요?



진시황의 진나라가 망하고 통일 중국의 열매를 고스란히 따 먹은 자는 한(漢)나라의 초대 임금인 고조 유방입니다


그가 초(楚)나라의 항우와 싸워서 이긴 결정적 동기는 휘하에 3명의 걸출한 공신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흔히 건한삼걸이라 하지요

한(漢)나라를 건(建)국한 세(三) 명의 호걸(傑), 바로

소하

한신

장량입니다


우리가 즐겨 두고 있는 장기판은 이 한나라와 초나라의 전쟁에서 유래한 것이죠


소하는 전쟁 때 보급품을 관리한 행정가이며

한신은 장군으로서 군을 총괄하는 지휘관이었고

모진 수모를 참는다는 과하지욕과

토끼 사냥이 끝나자 사냥개를 잡아먹는다는 토사구팽의 주인공입니다


장량의 호는 자방인데요

꾀를 잘 내는 책사를 흔히 장자방이라 하잖아요

천하의 전략가였죠


'전쟁이 끝났으니 나의 역할은 여기까지'

자신의 분수를 알고서 삼만 호의 봉토도 마다하고 병을 핑계하여 은퇴한 후 이곳에 와서 신선처럼 살았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원주민인 토가족(土家族)과 알력이 있었으나 선진 문물과 기술을 전수하는 등 점점 토가족과 유대를 넓히며 신임과 존경을 받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한고조의 처 여태후는 장량을 죽이고자 끊임없이 모함하여 이곳을 정벌하게 하였고

이에 용맹한 토가족은 장량과 함께 일치단결하여 험준한 지형을 앞세워 처절하게 저항함으로써 결국은 한고조도 이들을 정복하지 못하고

장(張)량

가(家)문의

땅(界)이라 인정하게 되었으니


이른바 오늘날의 장가계가 된 것이랍니다



원가는 당나라 말기 [황소의 난]이 일어났을 때 황소의 부하 중 원(袁)씨 성을 가진 장수가 이곳에 숨어들어 살았기 때문에 원가의 땅이란 뜻으로 원가계가 되었고


반면

북송의 양가장(楊家將)이란 장수가 향왕천자를 토벌할 때 이곳 천자산에 주둔했으며 전쟁이 길어지면서 아예 양씨 가문의 후손들이 번성하여 양가계가 되었다고 합니다



잔소리가 길었습니다

슬슬 장가계에 빠져 보실까요

일자별로 포스팅하겠습니다




첫날 (2024-03-23 토)


06:00 집을 나서

11:45 김해공항에서 발진

14: 00 장가계시 하화공항에 착륙했는데요


1시간의 늦은 시차 때문에 한국시간으로는 15:00에 도착한 셈이니 비행시간은 맞바람으로 인하여 3시간 15분 걸렸지만


귀국할 때는 바람이 뒤에서 불어 주므로 30분 빨리 도착했습니다


체류기간 내내 비가 온다는 예보여서 실망과 설마 하는

맘으로 조마조마했었는데 막상 당도해 보니 역시 그런가 보다

이곳은 300일이 흐리고

그중 200일이나 비가 온다더군요


쾌청한 날을 보려면 적어도 5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장가계입니다



직항로 하화공항에 도착하여 왼쪽의 웅장한 산을 바라보면

첫 번째 탐방지 천문산입니다


장가계를 대표하는 혼(魂)이라고 한다네요

천문산은 하늘(天)로 통하는 문(門)이란 뜻의 산(山)이며 해발 1518m이군요


정상부 근처에 얼핏 봐도 구멍이 뻥 뚫린 바위가 보이는데요

이 구멍을 천문동(洞)이라 했습니다


세계곡예비행 대회에서 2대의 경비행기가 동시에 통과하면서 유명해졌다고 하더이다


해발 1300미터의 암벽에

높이 132m

넓이 57m

깊이 60m의 구멍이 뚫려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석회암 동굴이라 합니다


워낙 웅장하고 오히려 위압감마저 드는 것으로 보아 이곳 사람들이 혼이라고 할 만도 하겠네요



먼저

천문동으로 향하는 케이블카를 타는데요

어디나 돈을 내야 하고

어디든 줄을 서야 합니다

장사진이 딱 맞는 말이죠


민가의 지붕 위로 날아가는 케이블카는 우리나라 같으면 어림도 없을 텐데

공산주의 국가의 특색입니다


이 케이블카 역시 7,455m로 제일 길다고 하는데

뙤놈들은 뭘 하든 1등이 되고 싶은 모양입니다


예전에는 버스를 타고 올랐다는데요

발아래에 꼬불꼬불 기상천외한 도로가 압권입니다

만리장성을 보유한 나라 답네요



U튜브에서 보았던 귀곡잔도와 유리잔도를 직접 걸어 보는데요

해발 1,430m 위치랍니다

강화유리가 깔린 부분은 60m이군요

300미터가 넘는 수직 낭떠러지 벽에다 길을 낸다는 발상은 중국이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귀곡잔도를 혹여 귀곡자의 이름을 땄을까 싶었더니 정말 그렇다고 합니다

춘추전국 시대에 맹 활약을 했던 소진과 장의의 스승이 귀곡자였죠

잔도 밑 계곡에서 귀곡산장을 지어놓고 살았다는 것 아닙니까!


= 다음 포스팅에 계속 =


= 다음 포스팅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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