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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Oct 14. 2016

익숙하고도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의 가치

[서평] 정여울의 <공부할 권리>

익숙하고도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다


누군가 좋은 책이란 그 책을 읽고 나서 또 다른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라면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인 셈이다. 이 책은 내게 익숙한 곳이든 낯선 곳이든 상관없이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든 책이다. 그만큼 다채롭고 풍부한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읽은 동화 속 이야기에 담긴 의미를 궁금하게 만드는 오이겐 드레버만의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심리 읽기>, 진정한 용기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자연 속에서 독립된 자아를 꿈꾸고 국가가 정해 놓은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 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과 <시민 불복종>,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던 뫼르소의 고독을 응시하게 하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미디어에 익숙해져 타인의 고통에도 피상적으로 반응하는 현대인을 비판하는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 나를 믿고 응원해줄 단 한 사람을 꿈꾸게 했던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성격도 취향도 너무 달라 서로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을 드러내는 자매의 모습에 공감하게 되는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 등 이 책 속에는 다양한 책과 이야기의 향연이 펼쳐진다.      

흥미로웠던 건 이미 읽은 책에 관한 내용인데도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 마냥 설렜고, 새로운 책 이야기가 펼쳐질 때면 나중에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친구처럼 친근하게 여겨졌다는 것이다. 독서를 저자와 독자의 만남이자 대화라고 한다면, 나는 누구보다 마음이 잘 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난 셈이다. 인상적이었던 대화를 좀 옮겨보기로 한다.      


드레버만은 그림동화에서 인간 정신의 원형적 체험을 발견해 냅니다. 재투성이 신데렐라에게서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아이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감을 잃지 않는 강인한 영혼을 읽어내지요. 또 ‘잠자는 숲 속의 공주’로 잘 알려진 ‘가시장미 공주’에게서는 아버지의 독단으로 인해 가시울타리에 갇혀 스스로 시간을 멈춰 버린 한 소녀의 영혼을 읽어냅니다. 그는 동화 속에서 계모나 마녀로 나타나는 존재가 실은 ‘진짜 어머니’를 에둘러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요. 생모를 향해 직접적으로 분노를 표출할 수는 없으니 신데렐라의 계모나 라푼젤의 마녀 등을 통해 부모와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서사라는 것입니다. - 본문 22-24쪽      


동화 속에 등장하는 계모는 으레 전처의 자식을 구박하고 못되게 구는 사악한 마녀처럼 그려진다. 계모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현실에 투영되어 그동안 계모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작용해 왔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이겐 드레버만은 <어른을 위한 그림동화 읽기>에서 동화 속에 계모나 마녀가 등장하는 것은 ‘진짜 어머니’를 향해 차마 드러낼 수 없는 감정을 표출하기 위한 상징적 대리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계모에게 입혀진 부정적인 이미지는 동화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오해였던 셈이다. 이쯤 되면 계모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우리가 어릴 적 재미있게만 읽었던 동화 속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궁금해진다.      


진짜 ‘나’를 발견하기 위한 공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그의 책 <월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기억 속의 <월든>은 소로가 숲 속 호숫가에 오두막을 지어놓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의 낭만적인 모습만 기억했던 것이다. 소로가 추구했던 ‘완전한 자아의 독립’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 속세의 굴레를 벗어나 고독을 견디고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이 결심한 삶의 길을 묵묵히 가고자 했던 그의 용기와 신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소로를 보니 환경을 위해 ‘노 임팩트 맨’이 되기로 했던 콜린 베번이 떠오른다. <노 임팩트 맨>을 읽으면서 소로의 <월든>이 떠올랐던 게 우연은 아니었나 보다. 자기 신념에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한 용기가 내게도 있는가, 문득 궁금해진다. 소로의 신념과 용기를 보여주는 또 다른 책 <시민 불복종>에 관한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시민의 의무로서 ‘인두세’를 내야 했던 소로는 자신이 왜 세금을 내야 하는지 납득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기에 6년 동안 세금을 내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소로는 세금을 내지 않아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이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다고 고백합니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나는 당신들이 억지로 정한 시민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고도의 지적 일탈에 관계자들은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합니다. 일단 가둬 놓고 보자, 감옥에 가두면 얌전해지겠지, 이런 공포 전략도 통하질 않았지요. 소로는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로는 감옥에 갇힌다고 해서 두려움을 느끼며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나약한 소시민이 아니었습니다. 그 행동은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지 시민이나 국민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라는 증명이기도 했습니다. - 본문 89쪽      


국가가 정해놓은 ‘시민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신념에 따르는 인간임을 당당히 선언한 소로의 용기에 또 한 번 놀랐다. 감옥에 갇히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소로에게서 진정한 자아로 살고 있는 자유인의 모습을 본다. 우리가 책을 통해서나마 그를 꼭 (다시) 만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 정여울은 책의 제목을 통해 단순히 공부가 아니라 ‘공부할 권리’를 이야기한다. 우리에겐 공부를 해야 할 의무나 책임이 있는 게 아니라 삶을 위해 당당히 공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공부는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는 공부가 아니다. 그렇다면 공부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공부는 하면 할수록 우리가 아는 것이 없음을, 우리가 안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너무나 쉽게 허물어지는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자신의 앎이, 지식이, 습관이, 인격이 부서지는 것은 우리가 진정한 자아를 획득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결국 공부는 우리가 진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인 셈이다. 진짜 ‘나’를 발견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이 책을 길잡이 삼아 익숙하고도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책 정보- <공부할 권리> (정여울 지음/ 민음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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