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조트는 등록되어 있는 사람 외에는 외부인을 철저히 금지하기 때문에 아주 안전하지만 그곳도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곳이기에 사기 또한 조심해야 한다. 물론 등록된 사람들이긴 하지만 잘못 코를 끼게 되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 있다. 오후에 호텔에 도착했을 때 수속을 끝내고 한 사람에게 방 열쇠와 손목에 투숙객을 표시하는 팔찌를 받은 후였다. 다른 멕시칸 남자가 동석을 하면서 자기네들끼리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하더니 우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였다. 내일 아침식사 후에 설명회 프로그램 이 있는데 그곳에 1시간 반 정도 참석하여 이야기를 들으면 공짜로 칠 수 있는 골프 티켓 2장을 준단다. 언뜻 듣기로는 좋은 제안이었다. 자세히 이것저것을 물어보는 사이에 대충 어떤 것 인지를 파악했다.
회원권을 파는 설명회였다. 나이는 75세 미만의 결혼한 부부로 신용 카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회원권을 사면 호텔에서 운영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멕시코 여행 시 호텔 요금부터 부동산 구입까지 여러 가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결격 사항은 없지만 그동안 멕시코에 대한 소문이나 뉴스거리를 종합해 볼 때 그리 신뢰감이 안 가서 그럴싸한 제안을 거절했다. 물론 모든 것이 사기는 아니겠지만 엄청난 사기가 범람하는 세상이고 보니 의심이 든다. 특히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니 선의의 설명회도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열여덟 명이 함께 간 여행에 부부는 세 커플이었고 나머지는 싱글이었다. 부부들이 설명회에 참석하면 나머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혜택으로 서비스가 주어진다. 하지만 몇 푼짜리 선물이나 서비스를 받기 위해 부부들은 사기라는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 그중 한 사람은 예전에 설명서에 잘못 싸인했다가 한동안 원치 않는 전화로 힘들었다며 절대 반대다. 나머지 사람들도 그 이야기를 듣더니 싫다고 한다. 차라리 돈을 주고 가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이 다수의 의견이었다. 설명을 하던 주최 측 사람들은 우리들의 표정을 보더니 체념한 듯 힘이 빠져 돌아가는 모습에 회의감이 보였다. 떳떳한 설명회라면 패키지에 포함시켜 누구나 참석하여 조그만 서비스를 주고받으면 공평할 텐데 몇 사람씩 와서 설명하고 자기네 나라말로 쑥덕거리는 모습에 의심스러워 거부감이 생겨 설명회는 없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또 다른 문제는 골프였다. 인터넷 여행사 홈페이지에는 세 번의 무료 골프가 패키지에 포함된다고 명시되었는데 골프를 치려고 티타임 예약을 하려 했더니 일인당 한 번에 미화로 75불을 내야 한단다. 세 번 무료 골프 이야기를 하며 인터넷 홈페이지 광고를 보여줬더니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한동안 실랑이를 한 뒤에 얻어낸 것은 18명의 무료 시내 관광 서비스였다. 무료 골프가 무산되어 기분이 찜찜했지만 리조트에 꼼짝없이 묶여 있느니 그냥 다녀오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다니지 말라는 경고 때문에 함부로 다닐 수 없는 상황이라 호텔을 출입하는 버스를 타고 시내 관광을 나왔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의 일정이다. 일단은 과달루페 성모 성당과 프리마켓을 구경하고 금은방에 가서 보석을 구경한다는데 가는데만 거의 두 시간을 버스를 타고 왔다.
무료 시내 관광의 경험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중간중간에 여행객을 태우며 오느라고 시간이 배나 걸렸다. 도로가 매끄럽지 않아 버스가 힘들어하며 간 곳에 몇 개의 동상이 있어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과달루페 성당에서는 결혼식을 하는 날이라 그런지 양쪽 문을 열어 놓고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데 아주 복잡하다. 문 옆에 동냥하는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구걸을 하는 모습이 보이고 심지어는 성체 조배실 옆에서 잠을 자는 걸인도 눈에 띄었다. 너무 시끄러워 성당인지 시장인지 구분이 안된다. 경건해야 할 성당의 분위기에 많이 실망했다. 조금 걸어 올라가니 프리마켓이라는 간판이 보이는데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을 연상케 한다. 조그만 가게들이 줄줄이 있고 물건을 빼곡하게 쌓아놓고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판다. 특별히 필요한 것도 없고 살만한 것도 없어 눈 구경만 했다.
40분가량 다시 버스를 타고 32개의 멕시코 주 중에 5개의 주 안에서만 생산할 수 있다는 테킬라 술공장에 견학을 갔다. 멕시코 술 종류 인 '테킬라' 시식을 하며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재료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다. 옆에는 작은 식당이 있었고 식당 매니저가 음식의 종류와 가격을 설명하는데 전부 튀긴 음식이라서 원하는 사람들만 식사를 하고 나머지는 동네를 돌면서 그들이 사는 모습을 둘러보았다. 마치 1960년대의 가난했던 한국을 보는 듯하였다. 간판은 있는데 장사를 하는 사람은 몇 안되고 집이나 사람들 사는 모습이 아주 가난해 보인다. 조그만 집에 여럿이 살아가고 생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하여 닭을 키우는 모습이 보였다. 빈부차가 큰 나라이라서 없는 사람은 힘들게 살아간다. 울퉁불퉁한 도로로 버스는 두 시간을 달려 호텔에 도착했다. 돈 내고 골프 치는 대가로 받은 공짜 시내 관광이 시간 낭비였다는 생각이 든다. 멋진 포장으로 그럴싸하게 보이는 '속 빈 강정'인 경우도 많다.
낮동안의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아 피곤했지만 배도 고프고 식사시간이 되어 저녁을 예약해 놓은 해변가 식당으로 갔다. 어제 생각지 않게 융숭한 대접을 받았던 곳이다. 어제는 가제 살에 베이컨을 두른 맛있는 애피타이저가 나왔다. 하우스 와인 한잔과 시금치와 아몬드 샐러드가 나왔고 크림 숩이 나왔는데 아주 맛있었다. 메인 요리는 손바닥 만한 리바이 스테이크와 삶은 감자 그리고 삶은 야채가 나왔다. 이미 샐러드와 국으로 배가 차 있어서 얼마 먹지 못했지만 분위기가 좋고 서비스가 좋아서 그런지 무척 인상적 이어서 다시 가 보았는데 오늘은 서브가 아니고 뷔페식 식사였다. 무슨 음식이 있나 가서 보니 튀기고 볶은 여러 가지 멕시칸 음식이었다. 어제처럼 주문에 따라 만든 음식은 아니고 미리 만들어 놓은 음식이라 말라 있어 보이고 분위기도 썰렁해서 본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본관에 있는 식당에는 '어부들의 날'이라서 생선요리가 주요리로 나왔다. 생선찜과 생선 튀김을 비롯하여 새우와 오징어 그리고 온갖 싱싱한 해물을 넣어 볶은 것인데 약간 매콤한 맛이 식욕을 돋웠다. 힘들었던 하루는 그렇게 지나갔다. 이렇게 여행기간의 반이 간다.
성당에서의 경험은 경이로웠다.
하늘은 물감을 뿌려놓은 듯 파랗다. 날씨도 그리 덥지 않아 걷기 좋은 일요일 아침이다. 리조트에서 택시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성당이 있다는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갈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아침을 먹고 해변가나 걸어 볼 양으로 걸어 나갔다. 가는 길에 우연히 함께 여행 온 자매님을 만났는데 일요일에는 신부님이 리조트에 오셔서 미사를 집전하시니 굳이 나갈 필요가 없단다. 미사 시간에 맞추어 어젯밤에 쇼를 했던 강당으로 갔다. 어젯밤에 젊음과 낭만이 넘치던 강당은 예수님 상과 성모님 상이 신자들을 받기는 거룩한 성전으로 변하였다. 현지 멕시코인들이 옆에서 신부님과 수녀님을 도와 신자들을 맞으며 여행객들을 위해 봉사를 한다.
멕시코 언어는 전혀 모르지만 천주교 양식은 세계 어디를 가도 동일하여 아무런 불편이 없다. 미사 시간이 되어 미사가 시작되었다. 막상 미사가 시작되었는 데 무슨 말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영어 미사를 보듯이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미사 전례는 같지만 멕시코 언어로 하는 미사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뿐더러 억양이 강하기 때문에 한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미사를 드리러 왔는데 정신만 없고 시끄럽기까지 했다. 외국에서 드리는 미사이기 때문에 어떤가 하는 궁금증도 있고 언어가 다르니 잘 듣기 위해 앞쪽으로 앉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앞에 앉아 있는 것이 고역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경건하게 미사를 들이고 있는데 중간에 나갈 수도 없었다.
평소에 멕시칸 들과 오며 가며 몇 마디 인사말을 주고받을 때는 참으로 경쾌하고 즐거웠는데 막상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성당에서의 미사는 정말 황당했다. 인쇄물로 만든 주보를 아무리 읽어도 아는 글자가 한자도 없었다. 다 외우고 있는 한국어 기도문은 생각조차 안 난다. 사람들을 따라 해 보았지만 머릿속은 텅 빈 채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앉을 때 앉고 일어설 때 서는 것 외에는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방언이 생각났다. 내가 알고 있는 방언은 기독교에서 성령의 은사 중 하나로 설명하는 언어의 종교적 행사를 말한다. 보통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는 외국어를 의미한다. 당연히 알지 못하는 외국어이니 나에게는 방언과 다름이 없었다.
전혀 들리지 않던 말이 그렇게 마음을 열고 들으니 무언가 들리기 시작했다. 주보에 있는 멕시칸 글들도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던 그들의 언어가 마치 모국어처럼 친숙해졌다. 하느님의 언어는 하나라는 말이 생각났다. 나라마다 고유의 언어가 있어 서로 소통하고 외국인은 공부를 하고 배워서 소통하게 되어 있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인다. 언어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마음을 열면 서로 통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세세한 것들은 모르더 라도 얼굴 표정이나 손짓 발짓으로 대충 알아들을 수 있다. 또한 목소리의 톤으로도 상황을 판단할 수 있다.
지루할 수 있었던 멕시칸 미사를 마음 하나 바꿈으로 즐거운 미사 시간이 되었다. 안 보인다고 모른다고 거부만 하고 앉아 있었다면 고통스러웠을 시간에 하느님의 지혜를 깨닫고 마음을 열은 결과는 엄청났다. 사람들은 아는 것, 좋은 것만 선호하며 산다.실망하고 소망하며 내일을 꿈꾼다. 어차피 사람 사는 것이 장소와 언어만 다를 뿐 거기서 거기 아닌가? 생긴 것이 다르고 생활 습성이 다르지 모든 인간은 누구나 사랑하며 기대하며 산다. 며칠간의 여행으로 이 나라를 알 수 없듯이 관심과 흥미를 갖고 매사에 임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선입견으로 놓쳐버린 행운도 있겠지만 조심하여 나쁠 것도 없는 현실이다.어디를 가도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나쁜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가슴에 남는다.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경험과 인연은 항상 동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