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라 해도,,, 봄은 온다

by Chong Sook Lee
꽃이 되어 온 봄 ( 그림 : 이종숙)


기다리는 봄은 안 오고 며칠째 막바지 겨울 추위가 극성을 떨었다. 온도가 영하 20-30도로 내려가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수영장에서 간단한 운동만 했는데 오늘은 영하 5도라 해서 남편과 나는 오랜만에 가까이에 있는 계곡을 찾았다. 지난가을에는 맑은 계곡물이 힘차게 흘렀는데 지금은 꽁꽁 얼어붙고 그 위에 눈이 내려 쌓여 땅인지 얼음인지 구분이 안된다. 벌써 여러 사람들이 얼음 위로 산책한 발걸음을 따라 우리도 걸어보았다. 두껍게 얼은 계곡을 걷다 보니 많은 나무들이 추운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여기저기 누워 눈을 받아 안고 있다. 쓰러진 고목들이 계곡을 가로막고 있어 나무 위로 넘어가거나 나무 밑으로 기어서 가야 한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절벽에 햇볕이 강렬하게 쬐는 곳에는 눈이 녹아 얼음 위로 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이러다간 얼음이 깨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얼른 산책길로 발길을 옮겼다.


어느새 내일이 지나면 3월인데 햇빛의 따스함은 눈을 녹이고 두꺼운 얼음도 녹일 것이다. 겨울이 오기 전부터 기다려온 봄은 언제나 게으름을 피우지만 이렇게 갑자기 날씨가 따뜻해질 때는 봄이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나무들은 꼼짝 않고 그냥 서 있는 듯하지만 나무 끝은 벌써 물이 통통하게 올라 언제라도 파란 싹이 터질 듯하다. 이 계곡은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면 다녀갈 수 있어 시간이 되면 자주 오는 곳이다. 시내 중간에 있지만 계곡이 깊고 숲이 우거져 많은 사람들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한다. 사람 하나에 개 한두 마리는 보통이니 어찌 보면 개 공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데군데에 개 배설물을 버릴 수 있는 비닐봉지와 쓰레기통이 있어 산책길은 깨끗하다.


추운 겨울 동안 집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개들을 데리고 나와 끈을 풀어놓고 마음껏 뛰게 하며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이 가까이에 있어 참 좋다. 어릴 적 개를 키웠던 나였지만 결혼 후 개를 접할 기회가 없어 나름 개가 가까이 오면 무서운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엔 이렇게 산책을 하며 개들을 가까이 보다 보니 이젠 개가 가까이 와도 무섭지 않게 됐다. 열심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지나가는 커다란 개가 짖으며 앞쪽 숲으로 뛰어가는데 개 주인이 불러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없이 달려가는 곳을 바라보니 이리 한 마리가 점잖게 서 있다. 이리나 늑대 그리고 여우가 살만큼 숲이 깊어 산책할 때는 늘 나뭇가지를 들고 다니거나 방울 소리를 내고 걷는다.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닌 곳은 길도 넓고 평평하여 동물들은 잘 나타나지 않지만 항상 조심해야 한다.


숲은 언제나 질서 정연하다. 아무도 그 누구도 무엇을 하라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피어나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힘이 다하면 그 자리에 누워 생을 마친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걷다 보니 지난번 왔을 때 짓기 시작했던 산속의 별장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다.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마침 집주인이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던 참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좋은 집을 짓고 살아서 좋겠다". 고 부러운 듯 말을 하니 기분이 좋아져서 한참을 집 자랑을 하더니 집이 완공된 뒤에 언제라도 와서 커피를 함께 하자며 친절한 말을 건넨다. 아마도 숲에 사노라면 숲을 닮아 마음이 넓어지고 온순해지나 보다.


봄이 저만치 다가온 겨울 끝이라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많은 새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블루 제이라는 새가 봄이 오고 있음을 전해 주기라도 하는 듯이 떼로 날아다닌다. 한국어 이름은 파랑 어치라고 불려지며 북아메리카 지역에 서식하는 까마귀 과에 속하는 철새이다. 시끄럽고 수다스럽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값을 하려는지 늦잠 자고 게으름을 피우는 봄을 깨우려 하나보다. 깃털 색이 예쁜 하늘색이라서 아주 신선해 보이고 날렵하게 날아다니는 모습은 정말 예쁘다. 나무가 많은 우리 집에도 블루제이가 많이 날아오지만 이렇게 여러 마리가 떼를 지어 다니는 것은 처음 본다. 며칠 전에는 가슴이 빨간 로빈새가 한쌍 날아와서 봄소식을 전해주더니 오늘은 블루제이가 봄맞이 준비하라며 난리를 친다. 어차피 다 지나간 겨울이 안 가겠다고 발버둥 쳐봤자 며칠 못 간다. 봄이 들고일어나는 것은 아무도 못 말린다. 세상에 봄을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는가? 슬픈 역사 속에 있는 빼앗긴 들에도 오는 것이 봄이 아닌가?


쉽게 어두워지는 산길이라 다시 오던 길로 돌아서 걷는데 아까 걸으며 왔던 계곡은 어디선가 눈이 녹아 조금씩 물이 고이고 하늘은 빨려 들 듯이 청명하고 바람은 따스하다. 아침에 올 때 옷을 두껍게 입고 열심히 산길을 걸었더니 땀이 난다. 모자며 목도리며 장갑을 하나 둘 벗으니 시원했지만 감기라도 걸릴 까 봐 다시 쓰고 두르며 발길을 옮긴다. 이렇게 공기 좋은 산길을 걷노라면 세상사가 다 잊히고 영혼조차 세탁되는 듯해서 좋다. 더구나 한 달 넘게 하던 기침조차 숲 속의 고요함을 깨지 않으려는 듯이 오늘은 한 번도 하지 않아 기침이 이젠 끝났나 하는 생각조차 들게 한다. 이파리 하나 없는 빈 가지들 사이로 눈부신 태양이 인사를 한다. 머지않아 따스한 봄이 오면 더 자주 만나자며 팔을 흔들며 재회의 기약을 한다. 하찮은 마른 나뭇가지 하나, 얼음 한 조각 조차 소중하게 여겨지는 2월 산책길의 행복을 살며시 어루만진다.

오는 봄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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