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이 글은 SK건설 사보 <SKEYES> 2020년 6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skeyes.skec.com:8445/pages/story/MA/cont?menuId=20500&rawid=499144&menuL=2
대면은 하되 접촉은 하지 않는 언택트의 시대
최근 정부 지원사업의 대상 기업을 선정하는 심사위원을 했다.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통해 화상 대면으로 발표와 질문이 이루어졌다. 처음 1분 정도는 발표자도 심사위원도 어색했지만, 이후 진행에 문제를 느낄 수 없었다. 전국에 소재한 기업들이 심사를 받으러 서울까지 올라오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한다면 혁명에 가까운 변화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의 한 단면이다. 전염병 예방 차원과 함께 감염에 대한 우리들의 불안 심리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이 오히려 신선한 혁신이 되고 있다. 원격 진료, 온라인 개학, 온라인 화상회의, 온라인 콘퍼런스 등 다양한 형태로 비대면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콘택트(contact)’에 부정을 뜻하는 ‘언(un)’을 조합한 ‘언택트(untact)’는 코로나19 이전에도 무인 택배, 셀프주유, 무인 단말기 주문, 무인 우편 창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된 마케팅 트렌드였다. 사람과의 접촉이 사라진 서비스에 대해 좋아하는 소비자도 있었지만, 불평하는 소비자들도 있었다. 소비자 습관화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반면에 코로나19 이후의 언택트는 거부할 수 없는 새로운 일상이 되고 있다. 마케팅 트렌드를 넘어서서 사회 전반적인 트렌드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언택트에 대한 코로나19 전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접촉하지 않거나 최소화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비대면이 기본이었다면, 이후에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대면을 한다. 그래서 언택트를 비대면으로 표현하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디지털 기술 덕분에 화상으로 대면하면서 단지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않을 뿐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일상이 되는 디지털 기반의 언택트인 비접촉 대면 방식은 새로운 일반화, 즉 뉴노멀이 되고 있다.
접촉 없이 대면하는 새로운 시장의 부상
언택트 트렌드가 산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언택트가 가능한 산업도 있고, 불가능한 산업도 있다. 언택트가 가능한 산업에서도 새로운 시장에 참여하는 기업이 있고, 참여하지 않은 기업이 있다. 다만,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기업의 시장가치는 확연히 다를 수 있다. 최근 영국 다국적 컨설팅 그룹 딜로이트(Deloitte)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는 업종을 항공, 여행 및 호텔산업으로 제시했다. 대표적으로 콘택트가 되어야만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업종이다. 전시컨벤션업도 같은 상황이지만 이 업종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실현 가능하지도, 실효성도 높지 않았던 온라인 전시, 웨비나(Webinar), 온라인 콘퍼런스가 자연스럽게 열리고 있다.
구글 트렌드에서 ‘온라인 콘퍼런스’를 키워드로 분석해보니 금년 들어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검색량이 증가했다. 빅카인즈(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에서 2019년과 2020년의 1월부터 5월까지 온라인 콘퍼런스에 대한 기사 게재 건수를 검색해보니 0건 대 48건으로 분석되었다. 즉, 온라인 콘퍼런스란 키워드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기업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다. 오프라인 기반 전시컨벤션 업체 중에서 발 빠르게 디지털로 변신한 기업도 있고,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는 기업도 있다. 한편, 이 시장에 참여하지 않았던 ICT 기업이 갑자기 뛰어들어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혼돈의 경쟁상황이다. 새로운 사업 기회는 고객의 불편과 불안의 가치사슬을 끊어내어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 주는 곳에서 생긴다.
언택트 마케팅은 디지털로 인한 정보격차를 해소해야
언택트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그리고 혼합현실까지 구현되고 있다. 또한 홀로그램, 신체 감응 장치, 각종 센서 기술 등 가상으로 대면을 가능하게 하는 비접촉 기술들이 속속 상용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홀로그램을 이용한 K-POP 공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또한 마블 영화인 ‘블랙 팬서’에서 가상현실을 이용하여 자동차와 투명전투기를 원격으로 조정하고, 홀로그램으로 통신하는 장면이 나온다. 최근 방영된 미국 드라마 시리즈 ‘웨스트 월드 시즌3’에서는 인간과 호스트(인공지능)의 전쟁을 다루면서 현실 세계의 다양한 장소에서 홀로그램 인간과 호스트가 대면하는 장면이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나 비행체가 인간과 호스트를 원하는 목적지로 이동시켜준다. 영화와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이런 기술이 상상의 기술이 아니라 현실의 기술이 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의 중심에 디지털이 있고, 이로 인한 정보격차도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한 여러 정책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 문제다. 온라인 개학을 하는데 집에 컴퓨터가 없는 가정이 있었다. 학부모의 컴퓨터 사용 능력이 학생들의 학습에 영향을 미쳤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수령하는데, 신용카드에 언택트로 수령하는 사람들과 주민센터나 금융기관을 방문하여 콘택트로 수령하는 사람들 간에 정보격차가 존재했다. 비접촉으로 진행되는 업무 뒤에는 디지털 기술이 들어 있다. 사용자가 기술 자체를 다 알 필요는 없지만, 그 기술을 습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학습이나 경험이 축적되어야 정보격차가 해소된다. 언택트 마케팅으로 사업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사용자들의 정보격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온라인 콘퍼런스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정보격차를 극복하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언택트가 사회 전반적으로 수용되면서 주택건설에도 다양하게 적용되고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주택건설 부문에서 고객의 불안 심리를 해소하는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언택트를 고려한다면, 고객의 가치사슬 중에서 어떤 부분에 불편이 있는지 찾아야 한다. 고객이 가상현실과 홀로그램으로 모델하우스를 자유롭게 다니며 체험할 수 있다면 어떨까? 비접촉이지만 가상으로 실감나게 대면해 볼 수 있는 뭔가를 제공한다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글 구자룡
트렌드 분석과 가치 제안으로 통찰력을 제공하는 마케팅 전문가. <지금 당장 마케팅 공부하라>, <마케팅 리서치>, <한국형 포지셔닝> 등의 저서를 집필하였으며, 이코노믹 리뷰와 브런치에 전문가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마케팅&브랜딩 전문기관 밸류바인 대표 컨설턴트이며, 서울브랜드위원회 위원으로 자문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