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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밸류닥터 구자룡 Oct 28. 2022

<나를 부르는 숲>에서 다시 백두대간을 느낀다

북리뷰

<책 개요>

나를 부르는 숲 (개역판), 빌 브라이슨(Bill Bryson) 저, 홍은택 역, 까치(까치글방), 2018.

원서 : A Walk in the Woods, 1997.



<훔치고 싶은 한 문장>

우리는 3,520킬로미터를 다 걷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시도했다. 우리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던 것이다.


<리뷰>

다시 산에 가고 싶다. 다시 백두대간을 걷고 싶다. 이런 욕망을 다시 일으킨 책이다.


이 책은 미국의 3대 장거리 트레일인 애팔래치아 트레일(AT)을 섹션 하이커로 종주한 저자의 기행문이자 경험담을 유려하고 재미있는 필체로 서술한 에세이다. 더하여 숲과 애팔래치아 트레일, 그리고 그 주변의 여러 이야기들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종주하는 코스에 따라 기술되어 있다.


3,360킬로미터의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고 체력도 강해야 한다. 완주 성공률이 10% 정도라고 한다.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이라고 해도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저자와 동행한 친구는 중년의 사내들로 등산을 처음 시도한 사람들이다.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으로 보이는 종주를 시도했다. 저자인 빌 브라이슨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등을 저술한 작가였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가보지 않고도 그곳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런 작가의 기행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인다.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역사와 종주 경험자들의 영웅담, 그리고 자연과 숲에 대한 여러 내용들이 들어있다. 단순한 기행문이나 경험담이 아니라 인문학적 배경 하에 저자가 느끼는 감정이 함께 서술되어 있다. 조금은 지루하고 왜 이런 내용이 있는지 의아한 부분도 있다. 특히 미국의 역사와 지리적인 이해가 크지 않는 나로서는 흥미를 잃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이 책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 도전 기록을 읽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종주 구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과 그 시점에서 벌어지는 생각과 그 주변의 자연에 대한 지식이 쌓여 더욱 풍부한 내용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했다. 아마도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 상상으로 그려내야 한다.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다.


종주 기간 내내 친구와 함께 동행하면서 겪게 되는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두 사람 간의 갈등도 있다. 또 간혹 만나는 하이커들과의 불편한 조우나 즐거운 동행도 있다. 이런 상황들은 트레일에서 종종 경험하게 되는 일이어서 격하게 공감이 되었다.


다시 백두대간을 걷고 싶다는 생각은 애팔래치아 트레일과 백두대간 트레일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섹션 하이커로 백두대간의 여러 구간을 걸었다. 다만 다른 점은 특정 방향을 정해놓고 걸은 것은 아니다. 백두대간의 구간은 다양한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교통의 편의성을 감안하여 어느 구간은 북에서 남으로, 어느 구간은 남에서 북으로 걸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함께 백두대간을 종주하던 핵심 동료 3-4명과 만나는 것이 어려워졌다. 일부는 서울에 거주하고 일부는 대구에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 초기에 대구가 온상지가 되면서 대구에서 왔다는 것을 종주구간에서 노출되면 이동 자제를 요청한 정부 정책에도 맞지 않고 심리적으로 불편해서 계획한 구간을 미루게 되면서 3년이란 세월이 그냥 지나갔다.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 다시 시동을 걸어야 하는데 망설여진다. 다시 배낭을 메고 대간길을 걸을 수 있을까 의심도 든다. 이 책으로 읽으며 다시 용기를 얻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백두대간 구간을 마저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대 초반에 다시 등산을 시작하고 백두대간에 오르며 사진을 찍고 기록을 부분적으로 남겨 놓았다. <뜻밖의 발견, 백두대간>이란 제목으로 출간을 준비해 왔는데 매듭을 짓지 못했다. 이 책으로 다시 출간에 대한 용기를 얻었다. 나도 나름 작가이기도 하다. 경영서적을 여러 권 저술했다. 아울러 사진작가이도 하다. 실은 이 둘을 결합하여 작품을 구상하면서 백두대간 트레일을 집중적으로 탐험했다. 지난 10년 가까이 계절별로 한 번 정도씩 구간 구간 다녔다. 이제 나의 포토에세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곧 나의 책으로 독자들을 만나고 싶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

p.17. 뉴햄프셔 주의 작은 마을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우연히 마을 끝에서 숲으로 사라지는 길을 발견했다.

p.17. 애팔래치아 트레일(Appalachian Trail, AT). 이 트레일은 장거리 종주 등반의 원조로 불린다. 미국의 동부 해안을 따라 고요히 솟아 은근히 사람의 발길을 부르는 애팔래치아 산맥 위로 굽이굽이 3,360킬로미터나 흐르는 길이다. 조지아 주에서 메인 주까지 14개 주를 관통한다.

p.17. 집에서 나오자마자 이 길을 따라 조지아 주까지 2,880킬로미터를 걸어서 가거나, 또는 반대 방향을 택해 거칠고 돌이 많은 화이트 산맥을 따라 720킬로미터를 걸어서 몇 사람 경험해보지 못한 전설적인 캐터딘 산을 밟아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뜨거워졌다. “근사하지 않은가. 당장 바로 하자”는 충동이 불끈 솟았다.

p.18. 가야 할, 더 설득력 있는 이유들이 있었다. 애팔래치아 산맥은 세계의 온대지방에서 가장 다양하고 풍성한 수종을 자랑하는 위대한 숲들 중의 하나인데, 지금 위기에 빠져 있다.

p.18. 나는 종주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서둘러 내 결심을 친구와 이웃, 그리고 출판사 사장에게 전해 나를 아는 사람들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게 했다.

p.74. 숲은 여는 공간과는 다르다. 무엇보다도 입체적이다. 나무들은 당신을 에워싸고 위에서 짓누르며 모든 방향에서 압박한다. 경치를 가로막고 당신이 어디 있는지 분간하지 못하도록 압박한다.

p.170. 종주 등산객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한 시즌에 끝내버리는 ‘스루 하이커(thru-hiker)’, 다른 하나는 구간별로 나누어서 종주하는 ‘섹션 하이커(section-hiker)’다. 가장 오랜 기간 종주한 섹션 하이커의 기록은 46년이다.

p.350.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하는 것은 내가 일생에서 시도한 것 중 가장 힘든 일이었다.

p.379. “집으로 돌아가고 싶니?” 내가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응, 돌아가고 싶어”라고 말했다. “나도 그래.” 그래서 우리는 트레일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p.388. 나는 1,392킬로미터를 주파했다. 그러나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절반도 안 되는 거리다.

p.389. 삼림과 자연 그리고 숲의 온화한 힘에 대해서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 나는 전에는 미처 몰랐지만, 세계의 웅장한 규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전에는 내게 있는 줄 몰랐던 인내심과 용기도 발견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친구도 얻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p.389. 우리는 3,520킬로미터를 다 걷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시도했다. 우리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던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문헌>   

<와일드 :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저, 우진하 역, 나무의철학, 2012. 원서 : Wild, 2012.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저, 김석희 역, 열림원, 2017. 원서 : Walden, 1854.

<나를 찾는 길 :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김광수 저, 처음북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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