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을 시작하며
어떤 말만 들어도 마음이 뭉클해지고 슬퍼지는 눈물 버튼이 사람마다 존재한다. 이는 살아가면서 생겨버린 버튼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공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나에게도 그런 버튼이 있다. 그 버튼이 생겨나기까지의 추억과 기억, 후회와 가르침을 담아 전달하려고 한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쓰면서 눈물이 흐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주인이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강아지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개띠라서 그런 건 아니고 어릴 때부터 할머니댁에 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푸들은 15살로 노견이었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괜히 더 무섭기도 했지만 귀여웠다. 부르면 나오고 네발로 걸어 다니고 검은 털이 신기했다.
사람이 아닌 동물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그 동물과 함께 집에서 산다는 게 흥미로웠다. 이런 매력 때문에 부모님에게 우리도 키우면 안 되냐고 투정도 부리고 징징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도 어렸고 여러 여건상 계속되는 거절의 답만 들었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예쁜 코카스파니엘 두 마리를 키우게 되었다. 한 마리는 정말 예쁘게 생긴 한비였고 나머지 한 마리는 거친 성격의 예삐였다. 오랜(?) 소원이었던 개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내 친구 아니 내 가족
두 마리의 반려견을 키우게 되면서 나만의 철학을 세웠다. 내 친구 아니 내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키워야겠다는 것이다. 때로는 친구처럼 지내고 때로는 가족처럼 지내면서 훌륭한 주인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다 보니 세워진 철학이었다.
그런데 반려견을 키우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배변훈련부터 해서 이갈이, 이름에 적응시키기, 두 마리라서 가끔 다툴 때의 중재 등 많은 과제들이 있었다. 그때 '단순히 키우는 행복만 생각하면 안 됐구나', '왜 키우는 것에 대해 신중했는지 알겠다' 등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도 좋았다. 내가 그렇게 원하던 강아지가 우리 집에 있기 때문이다.
당시 만화 [포켓몬스터]나 [디지몬]이 유행했던지라 나와 동생은 각각 한 마리씩 담당하고 자리를 비울 때 두 마리 모두 맡기로 했다. 눈도 못 뜨는 시절 동생 바지에 실례를 했던 한비를 동생이 맡고 나는 예삐를 맡기로 했다. 마치 트레이너나 마스터가 된 것 같은 재미까지 더해져서 좋았다.
이게 뭐라고...!
반려견이 생기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뭘까? 단연코 산책이다. 당시 컴퓨터가 보급되고 인터넷 게임도 재미있는 것이 많이 나왔지만 밖에서 노는 아이들도 많았던 때였다. 나는 게임도 재미있었지만 축구나 옥상탈출 등 뛰어노는 것도 그 못지않게 재미있었던 나였다. 그래서 산책을 결심했다.
아파트다 보니 차가 많이 있었고 혼자서 두 마리를 이끌 자신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한 마리씩 데려가기로 했다. 첫 타자는 내 담당이었던 예삐였다. 목줄을 채우고 휴지와 비닐 등을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는 평지개념이었으니 몰랐는데 계단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예삐를 보니까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내게 익숙한 계단이 예삐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여러 고민 끝에 옆에 자전거를 위한 평지 내리막길로 내려갔다. 일단 한 바퀴 도는 게 좋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이후 아파트 단지 이곳저곳을 가기 위해 산책하는데 계속 계단을 마주쳤다. 그러다 보니 계단 오르고 내리기를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높지 않은 계단을 찾았고 한 발씩 올라가는 게 해봤다. 어쩔 줄 몰라하더니 이내 발걸음을 내디뎠고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예삐를 안고 계단을 내려간 후 다시 시도해 봤다. 또 망설이다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천히 내려가봤다. 무너가 깨달았는지 계단을 한 발씩 내려갔다. 이후 그냥 반복했더니 계단을 마스터해 버렸다.
이 경험은 나에게 있어서 뿌듯함이라는 감정을 느낀 첫 순간으로 남아있다. 내가 가르쳤고 결과를 내준 예삐에게 고마웠던 그 경험이 뿌듯하다는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뒤이어 한비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가르쳤고 한비도 곧잘 해줘서 뿌듯함을 느끼게 해 줬다.
당시에는 '이게 뭐라고 기분이 좋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만했다. 뭔가를 가르치기에 어렸던 초등학생 5학년이 가르치고 결과를 얻어냈으니 말이다. 지금은 거기서 더 나아간다. 내가 한비랑 예삐로 뿌듯했는데 내가 걷다가 일어나는 모습, 일어나서 뛰거나 계단을 타는 모습을 보며 부모님은 얼마나 뿌듯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