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발

잠시만... 아주 잠시만

by 추억과기억
쉽지 않다


한비와 예삐를 키우는 건 너무 행복하고 좋다. 학교에 가서 강아지를 키운다는 게 자랑이 되었고 그토록 원했던 강아지 키우기가 신났다. 물론 마냥 좋은 점만 있지는 않다. 금발의 털을 휘날리며 다니다 보니 옷에 개털이 묻으면 더 티가 났고 이갈이 때문에 내 손가락을 이갈이 대상으로 할 때 아프기도 했다.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옷에 묻은 건 떼어내면 되고 이갈이는 언젠가 끝이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갈이 때 개껌을 줘도 되니까 괜찮았다.


그런데 쉽지 않은 게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두 마리를 키운다는 것이다. 두 마리를 키우면 집에 사람이 없을 때 덜 심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이 생각보다 많다.


첫째로 각종 비용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식비는 물론 각종 예방접종도 배가 된다. 동물병원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병원에 간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었고 식비는 당연히 알게 된 것이었다.


둘째로 두 마리가 다툴 때 조정하는 것이다.

사람도 지내다 보면 의견이 달라 다투게 되는데 동물이라고 해서 다를 수 없다. 더군다나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사이가 나쁜지 좋은지 알 수 없었고 갑자기 다투는 소리가 들려서 말리러 가기 일쑤였다. 자기들끼리 장난칠 때도 입으로 건드리고 해서 장난치는 건지 애매하기도 해서 더 어려웠다.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두 마리가 다툴 때는 무서웠다. 도중에 말리다가 물릴 수도 있고 한 마리는 놨는데 나머지 한 마리는 계속 물고 있으면 정말 답이 없었다. 부모님이 있을 때는 요청하면 되지만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 외에도 단점들이 있지만 이미 내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보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가 잘 조정하고 케어하면 될 거다는 생각으로 방법과 노하우를 하나둘 씩 찾아갔다. 쉽지 않지만 못할 건 아닌 일이었다.


새로운 할 일


이갈이도 끝나고 두 마리 간의 사이 조정에 대한 노하우도 쌓이면서 잘 지냈다. 하지만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배변훈련이었는데 각종 방법을 써도 실패만 반복될 뿐이었다. 아직 크기가 작아서 양이 많지는 않지만 집 올 때마다 찾아서 치워야 하는 거나 나도 모르게 밟아서 빨아야 하는 슬리퍼 등은 짜증을 만들었고 바닥에 있는 마루는 점점 일어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짜증 내는 부모님의 심경도 이해 가서 더 답답하고 화도 났다. '이걸 왜 못 가리는 거야?' 이런 짜증이 반복되면서 괜히 미워지기도 했다. 동시에 '이러다가 다른 곳에 보내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무서워졌다. 그렇게 보내기는 싫었다. 어떻게 키우게 된 강아지인데..


그러다 보니 눈 뜨고 나서 그리고 하교 후 집에 오고 나서 새로운 할 일이 생겼다. 그건 바로 재빠르게 치우기다. 다른 곳에 배변을 본 걸 부모님이 보면 화나서 다른 데로 보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빨리 치우지 못해 마룻바닥이 일어난 걸 보면 다른 데로 보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내가 얼마나 기다려온 반려견인데...

내가 해야 할 할 일이 늘었지만 알고 있었다. 완벽하게 내 의도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재빠르게 해도 한 번쯤은 아니 몇 번이고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빌었다. 제발 한비와 예삐가 가리게 해달라고.


잠시만이기를


그런 날들이 반복되고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있는 상황에서 외식을 다녀왔다. 오래간만에 맛있는 고기를 먹었고 사이다와 콜라를 섞어마시며 어른이 된 것처럼 기분도 냈던 만족스러운 외식이었다. 그런 만족감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은 또 불안했다. 제발 사고만 치지 말아라..


그런 날이 있다. 불안함이 적중하게 되는 하필 그런 날. 바로 그날이었다. 두 마리는 기어코 집안 모든 걸 다 뜯어놓고 전시하는 사고를 치고 만다. 소위 '3대 지랄견' 중 한 종이었던 특성과 어린 나이의 활기(?)를 주체 못 한 녀석들의 작품에 부모님은 폭발해 버렸다.


다른 사람한테 줘버리자는 말에 덜컥 겁이 나서 갖은 설득을 시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나에게 주자는 건 아니었고 화가 많이 났다는 걸 표현한 거 같다. 여하튼 그때 나는 굉장히 난처했다. 정말 할 말이 없었으니.


설득 끝에 배변훈련을 위해 고모집으로 잠시 보내기로 했다. 고모는 반려견을 오래 키워봤기 때문에 노하우가 남다를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맡기게 됐다. 혹시나 데려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고모집에 갈 때까지 함께 가기로 했다.


거기에 놔두고 점심을 먹은 뒤 함께 시간을 보냈다. 어떤 상황인 줄도 모르고 마냥 행복하게 있는 모습을 보니 참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간절하게 말했다. 제발 배변훈련에 성공하라고. 시간이 되어서 집으로 출발하려는데 현관 앞에 있는 두 마리의 눈빛이 너무 서글펐다.


어디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나와 동생은 눈물이 고인 채로 집으로 돌아왔고 이내 방문을 닫고 울었다. 고모 집에 다른 반려견도 있었고 고모가 잘 키워줄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나와 동생의 첫 반려견이 사라졌다는 것은 너무 슬펐다. 나와 직접 교류한 가족과 이별한 첫 경험은 눈물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부디 잠시만이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버텼다. 제발 성공해서 다시 데리고 올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