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렇게 다시

노력, 책임감의 중요성

by 추억과기억
현기증 난다 말이에요


하교나 학원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면 반겨주러 오던 그 모습은 없었다. 굳이 배변을 치우러 전전긍긍하지 않았다. 남아있는 건 씹다 남은 개껌, 널브러진 인형이 한비와 예삐가 남긴 유이한 흔적이었다. 소파와 침대에 남아있는 냄새가 코를 맴돌대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잠시일지라도 이별이란 이렇게나 힘들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절대 잊을 수 없음에도 한비와 예삐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게임 속 펫을 아무 스킬이 없어도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고르고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 훗날 돌아왔을 때 어떻게 놀고 산책할지를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배변훈련이 성공리에 끝나면 분명히 돌아오는 걸 알고 있는데도 '혹시 데리고 오지 않으면 어쩌지'하는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모든 게 불안하고 걱정되는 하루하루였다. 현기증 난다 말이에요...


기특한 내 새끼


그렇게 버틴 하루하루는 몇 달이 됐고 고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둘 다 배변을 이제는 다 가릴 수 있다는 행복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와 드디어!"라고 육성을 내뱉었던 내 모습이 18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는 주말이 되어 아빠차를 타고 고모집으로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버텼다.


한편으로는 약간 두렵기도 했다. '아직 어린애들인데 나를 잊었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찾아오면서다. 그러면서 검색창에 엄청 찾아봤다. '강아지 기억력', '어린 강아지 주인 기억력' 등 강아지들은 주인을 얼마나 기억할지, 강아지 자체의 기억력은 어떨지 등에 대한 안심을 위해 컴퓨터를 오롯이 사용했다. 게임과 숙제를 하지 않고 써본 적은 처음이라서 아주 생생하게 떠오른다.


시간이 되고 나와 동생, 아빠는 고모집으로 향했다. 괜한 걱정이었는지 한비와 예삐는 반겨줬고 안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반가움은 주인에 대한 그들의 기억력이 아니라 함께 했던 그 시간에 대한 내 성과였던 거 같다. 고모 집에 맡기기 전에 함께 했던 시간이 한비와 예삐에게는 나쁘지 않았고 그 성과가 우리를 반겨주는 걸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한비와 예삐가 기억해 주느냐처럼 상대방의 능력에 대해 기대를 가지기보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잘해줬느냐처럼 내가 노력을 기울이는 게 맞다는 걸 그때 어렴풋이 느꼈다.


그렇게 집으로 데려왔고 이내 배변훈련의 성과가 나오는 걸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기특한 내 새끼.


다시 나는 주인이다


다시 돌아온 한비와 예삐였다. 우리 집 이곳저곳을 냄새 맡고 적응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반가웠다. 알 수는 없지만 '오랜만에 와서 좋아'라는 감정의 표현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는 배변훈련의 진가를 보여줬다. 예삐가 화장실 냄새를 맡고 안으로 들어갔다 왔고 치우고 난 후 나중에 한비가 다녀왔다. 이렇게 성공리에 배변활동을 하는 게 신기했다. 역시 오랜 경험을 갖춘 숙련자(?)는 남다르군... 이런 생각으로 고모에게 전화를 했고 너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학교 마치고 집에 갈 때마다 대소변을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됐고 한비와 예삐가 혼나기 전에 재빨리 치우지 않아도 돼서 마음도 편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주인이 되었다. 내가 한 거는 없지만 더 열심히 키우고 챙기면서 한비와 예삐가 다시는 우리 집에서 나가지 않기 위해 노력할 거라는 다짐을 했다. 잠시 이별했던 슬픔이 꽤 컸기 때문에 다시는 반복하기 싫었다.


없을 때 다짐하고 세웠던 계획을 실행했다. 산책을 갈 때 가봐야지 했던 곳에 가보기도 하고 집에서 같이 놀기도 하고 색다른 간식도 먹였다. 어리고 부족한 주인이지만 잘 따라와 줬고 활기차게 다녀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책임지고 키우기에는 어렸기 때문에 제한되는 게 많았지만 할 수 있는 건 꼭 해줘서 행복하기를 바랐다. 내 새끼들이기 때문에 꼭 행복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