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정해버린 라이벌
어릴 때부터 바랐던 반려견이라서 한비와 예삐가 너무 소중했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았고 산책을 다니는 것도 좋았다. 한비와 예삐가 익숙해져 갈 때 라이벌이 생겼다. 아니 내가 만들었다. 바로 컴퓨터 게임이라는 것이다.
산책을 시켜야 하는데 게임이 너무 재미있었다. 파티 퀘스트를 하는 게 재미있었고 레벨을 다른 애들처럼 높이고 싶었다. 학교, 학원을 빼고 집에 있는 시간이 될 때면 어김없이 컴퓨터가 나를 불렀고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한비와 예삐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다. 바로 우리 방 컴퓨터가 있는 책상 아래다.
그 새로운 보금자리는 정신없이 꼬여있는 연결선과 먼지가 다였다. 푹신한 담요나 방석도 없는. 가끔 푹신한 것이 생겼는데 바로 내가 신던 슬리퍼다. 발냄새도 냄새라서 그런가 내 슬리퍼 위에 한비와 예삐는 번갈아 누워있었고 자리를 못 잡은 나머지 한 마리는 내가 앉은 의자 근처에 자리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테이블 아래를 차지하기 위한 한비와 예삐의 경쟁이 아니라 주인 근처를 차지하기 위한 그들의 몸부림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비와 예삐가 더 소중하지만 그때는 게임의 성적이 더 중요했다. 동생이 컴퓨터를 하는 시간이 되면 한비와 예삐에게 가는 걸 보아 컴퓨터 게임의 라이벌이 아닌 대체품처럼 생각했던 지난날이 가슴 저리게 떠오른다.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한비와 예삐는 같은 엄마의 뱃속에서 나왔지만 달랐다. 한비와 예삐를 구경하며 약간은 다름을 알았지만 뭘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한비는 암컷이고 예삐는 돌연변이였다. 예삐는 굳이 따지면 중성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돌연변이라서 태어날 때 중성으로 났고 다행히 건강에 이상이 있지는 않지만 성격이나 행동이 마냥 정상적이지는 않았다.
한비와 달리 가끔 배변을 아무 때나 하고 아무 이유 없이 한비를 깨물기도 했다. 이런 게 반복되다 보니 한비는 물론 가족들도 스트레스... 미움받는 예삐를 더 케어하고 챙겼던 나도 점점 힘들어졌다. 사랑으로 돌봐도 어쩔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느끼던 어느 날 선택의 순간이 왔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보고 고모집으로 보내느냐 보내지 않느냐는 선택지였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보내자는 의견이었다.
예삐는 원하지 않는 상태로 태어나게 되었는데 미움받는 거 같아서 불쌍했고 보내는 걸로 몰리는 게 미안했다. 나머지 가족들의 스트레스도 이해했기 때문에 그들을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보내기로 했고 이는 예삐가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서 있던 날이 되었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났는데 예삐가 무슨 잘못이 있길래'라는 가족에 대한 원망과 '피해를 줘서 왜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느냐'에 대한 예삐에 대한 미움이 있었다. 그리고 예삐 때문에 나머지가 스트레스받는 것에 대한 속상함과 미움받는 예삐에 대한 불쌍함도 있었다. 나 혼자 생활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보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까지 더해지니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어쩔 수 없는 게 있다는 건 무력감을 불러온다는 걸 배운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