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야지
그렇다. 관용구처럼 붙어있던 한비예삐는 이제 없다. 너무 슬펐지만 내게 남은 건 한비뿐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2마리여서 분산했던 내 애정과 에너지를 한비에게 몰빵 할 수 있으니 더 잘 기를 수 있다고.
한비는 처음에 어색해했다. 마냥 좋은 사이로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던 예삐가 갑자기 사라졌으니 말이다. 나만의 착각이었는지 몰라도 예삐를 찾아다니는 듯 예삐가 자주 갔었던 곳을 두리번거렸다. 말은 못 하지만 "어디 갔어?"라고 하는 거 같아서 괜히 찔리고 미안했다. 그래서 한비를 불러 장난도 치고 간식도 주고 그랬다.
최선을 다해 한비를 키워야지라는 다짐만이 가득했던 시기였다. 집을 비우게 되었을 때 이제는 한비만 있게 되니까 더 그랬다. 하지만 그러기에 시기가 좋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교복을 입었고 점점 집안에 여유는 없어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심한 주인이다
보편적인 대한민국의 학생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니는 곳이 있다. 바로 학원이라는 곳이다. 성적이라는 실적의 체험판을 본격적으로 따지기 시작하는 시기를 맞이하다 보니 학원을 통해 성적을 올려야 했다. 초등학교 하교 시간보다 늦어진 중학교 하교시간에다가 학원수업도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에 있는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내 스트레스 해방구인 컴퓨터 게임 시간조차 줄어들다 보니 한비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은 사라져 갔다. 가끔 산책시키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간격이 길어졌고 의무적으로 나가는 느낌이 들어 즐겁지 않았다. 물론 한비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기분이 좋았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이런 상황을 반복했다. 고3을 향할수록 집에 있는 시간은 적어졌고 집안의 여유는 사라져 갔다. 그렇게나 좋아하던 컴퓨터 게임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음악감상도 지루해져 갔다. 부모님은 사람이다 보니 피곤해하고 예민한 아들에게 힘내라는 말과 서포트를 해주시는 등 건드리지 않으셨다. 하지만 한비는 집에 온 주인에게 다가갔다. 하루 중 1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만 얼굴을 볼 수 있는 주인이니까 한비의 행동은 지극히 당연했지만 나는 한비에게 짜증을 냈다. 아니면 아주 잠깐 반겨주고 방문을 닫고 다시 공부를 했다.
당연히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비는 눈치 없이 놀아달라고 하는 것처럼 느꼈던 거 같다. 얼마나 한심하고 멍청한 생각이었는지 지금은 알 수 있는데 그때는 왜 몰랐을까? 여유가 없으면 당연한 상식마저 외면하고 왜곡하여 받아들이게 되는 걸 그때 처음 배웠다. 그 행동이 후회라는 공부를 통해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는 건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고등학생 시절이 끝날 때까지의 기억을 돌아보면 한비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당장 내 인생이 걸려있었고 반복되는 공부만이 남아있을 뿐이라서 한비를 기억 속에서 떠올려내기란 쉽지 않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었다.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잘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이라도 한비와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았던 스스로에게 후회가 남아있을 뿐.
이런 장난도 버거웠다는 핑계만 남아있는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