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새로운 가족 혹은 라이벌

by 추억과기억
어른이 아닌 성인이 되다


수능이 끝났다. 나이의 앞자리가 2로 바뀌고 나서야 겨우 대학생이 됐다. 성인이 되었다는 유일무이한 기분을 느꼈다. 그런 기분을 느낄 때까지 한비는 아직도 한자리의 나이를 유지하고 있었던지라 괜히 더 아이처럼 보였다. 반려동물의 시간이 사람의 시간보다 7배 정도 빠르다고 봤었는데 와닿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도 한비는 마냥 귀엽고 아이 같은 천진한 웃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무게가 좀 늘었을 뿐이다.


성인의 삶은 그전과 달랐다. 늦게까지 놀다가 어두컴컴할 때 들어오기도 하고 술을 마시고 취해서 해롱해롱 거리기도 하고 책상에만 앉아있지 않아도 됐다. 색다른 경험을 해보면서 어른이 된 거 같은 느낌을 받으며 겪어보지 못했던 하루하루를 마주하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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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를 마주한 시간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어른의 삶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가면 잠을 청하기 바쁘고 쉬는 날에는 컴퓨터 게임하기 바쁘고. 그리고 힘들어지고 있는 집안 분위기가 숨통을 막았기 때문이다. 그때 내 머릿속을 채운건 친구들과 시간 보내기, 학점, 집안 사정뿐이었다.


한비는 그대로 곁에 있었다. 그래서 똑같이 행동했다. 그전에 한비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은 여전히 다짐일 뿐이었다. 당시를 돌아보면 한비와의 시간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시간이 많았다고 판단했다. 그런 핑계는 한비를 심심하게 만들었고 한비의 세상을 좁게만 만들 뿐이었다. 나는 어른이 아니라 그냥 성인이 됐을 뿐이란 걸 알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새로운 친구 혹은 라이벌


대한민국의 남자로 태어나고 성인이 되었다는 건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군대에 가야 한다는 의무가 생겼다는 것이다. 쓸데없이 신체검사에서 1급을 받고 21살이 되던 해의 4월에 입대했다. 군생활에 대한 걱정과 기대만 가지고 갈 수는 없었다. 여전히 암담한 집안 사정과 분위기, 가족의 건강 등 내가 어쩔 수 없는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빠질 수 없이 떠오른 건 한비에 대한 그리움이다. 한비에게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입대 전에 떠오른 것 중 하나였고 한비도 10살을 코앞에 두고 있었던 만큼 괜한 두려움과 걱정도 생겼다. 입대 당일에 한비와 아침 산책을 하며 또 다짐했다. 휴가 때나 전역 이후 한비와 많은 시간을 꼭 보낼 거라고.


그렇게 입대하고 적응하며 지내다 보니까 어느새 상병이 되었다. 지금처럼 군내부에서 휴대폰을 보유할 수도 없었고 전화도 공중전화 같은 거 말고는 안 됐기 때문에 싸이버 지식방이 필수였던 시절이었다. 휴가를 얼마 안 남긴 어느 날 동생과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서 새로운 가족이 생겼음을 알았다. 그렇게 사진을 보내줬는데 헉. 새하얀 댕댕이가 왔다. 금발인 한비와 다르게 생긴 귀요미가 온 것이다.


기본적인 정보를 듣고 휴가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마주한 새로운 가족인 화이터테리어 '모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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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지인 중 한 분이 여러 사정 때문에 자주 돌봐주지 못했는데 상황이 더 심해져서 키우기 힘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가 맡아서 키우게 되면서 우리 집으로 오게 된 녀석이었다.


애견호텔에 자주 맡겨져서 주인을 거의 만나지 못한 아픔이 있는 친구인 모모.

주인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서 사람을 좋아하지만 경계심이 많고 활기찬 친구인 모모.


한비가 도도한 매력이라면 모모는 애교가 많은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비는 당시 10살이 되면서 노견에 진입하고 있었고 모모는 3살이라서 아주 팔팔했다. 그래서인지 애교로 암담한 집안의 분위기를 조금은 녹여주는 모모가 이쁨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주인에 대한 결핍이 있는지라 더 이쁨 받았다. 평소 한비가 질투심이 강한 아이라서 다른 강아지가 이쁨 받는 걸 못 견뎌하는 편인데 모모를 더 예뻐하는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집에 왔을 때의 상황은 여기까지였다. 어찌 됐건 모모는 뒤늦게 찾아온 가족이고 한비는 원래부터 있던 가족이다. 모모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건 이해 가는데 한비를 뒤에 두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그 뒤로 휴가 나올 때마다 아니 전역하고서 몇 달 동안은 모모가 1예쁨을 받으면 내가 한비를 1예쁨 했다. 이는 새로운 친구 혹은 라이벌로 등장한 모모가 한비와 잘 지내며 우리 가족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모도 역시 잘 챙겨주면서 모모의 최애 주인으로 등극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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