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찾았고 그 안에 비중은 또 적었다
영원히 멈춰있을 것 같던 국방부의 시계는 꾸준히 흘러갔고 어느새 글로만 보던 날짜가 찾아왔다. 2015년 12월 31일. 2015년 한 해의 마지막인 그날은 내게 전역일로 남아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인생 중에서 가장 자신감이 넘친 날이다. 부푼 가슴을 안고 부산행 기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가족은 물론 한비와 모모까지 나를 반겨줬다. 남은 날을 위해서 플랜을 세우고 살아가야지! 그런 다짐을 했던 날이었다.
복학도 하고 사회에 적응도 하며 지내다 보니까 그 다짐은 점점 옅어져 갔고 공부를 위한 휴학만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하고자 했던 공부를 하면 수험생과 같은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던 거 같다. 그 자유에 한비와 모모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가끔의 산책과 간식을 주는 것, 잠깐 놀아주는 게 다였다. 그전에 여러 일을 통해 느꼈던 반려동물에 대한 감정과 다짐은 또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나 한심하고 부족한 소위 반려견의 주인이었다.
현실은 모르는 척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린 시절 반려동물도 건강검진이나 스케일링 등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후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여러 이유로 하지 못한다고 듣고 그냥 받아들였다. 돌이켜보면 이미 힘들어진 상황에서 병원비에 쓸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하신 거짓말이었다. 그 결과 한비는 몸 안에서 여러 증상이 생기기 시작했음에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전역할 때쯤 한비의 나이는 10살 정도였다. 강아지의 1년이 사람으로는 7년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럼 한비의 나이를 사람으로 계산하면 70살, 즉 노견이었다. 예쁜 외모와 달리 신체적으로는 노견에 속한 한비. 그 흔한 건강검진, 스케일링 등도 해주지 못했으니 몸이 안 좋게 바뀌고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였다.
한비의 눈 밑과 머리 위에는 검은 종기 같은 게 생겼고 배 안에는 알 수 없는 덩어리가 있었다. 물도 많이 마시고 생리현상도 전보다 많아졌다. 이도 다 빠져서 잇몸만이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흐린 눈을 했다. 현실이 너무 무겁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버티는 거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이런 핑계가 그때 유일한 선택지라는 게 비참했다. 모르는 게 아니라 모른 척할 수밖에 없던 게 참 비참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전히 식욕이 넘쳐서 잘 먹어주는 것이었다.
최악의 시기
휴학을 했다. 내게 자기 최면을 걸어서 하고 싶다고 믿었던 그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내 상황 아니 우리 집 상황은 로또나 고소득의 전문직이 아니고서는 답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탐구? 고민? 사치였다. 그렇게 공부에 돌입했다.
공부에 대한 돈도 엄청 버거웠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공부에 대한 지원을 해주셨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에 나가서 밤에 들어오는 수험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한비와 모모에 대한 관심이 점점 멀어졌고 꼭 성공해서 더 많이 놀아주고 챙겨주리라 다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부에 대한 회의, 가슴이 아닌 머리로 하는 공부의 한계, 여전히 힘든 상황 등으로 인해 집중력은 떨어져만 갔고 시작부터 피폐했던 몸과 마음은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오전 공부만 하기로 정했던 어느 날 집에 왔다. 달려와주는 모모 그리고 그냥 자고 있는 한비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모모를 예뻐해 주고 한비 근처까지 갔는데도 여전히 한비가 누워있었다. 너무 놀라서 한비를 건드려서 깨웠더니 그제야 날 보고 한비가 반겨줬다. 그렇다. 한비는 귀가 들리지 않은 상태까지 가버린 것이다.
아무도 없어서 서럽게 울었다. 한비가 이렇게 될 때까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는 것보다 해줄 수 있는 게 있어도 선택하지 못한 상황이라서 울었다. 내가 하고 있는 공부로 인해 받았던 여러 스트레스와 상황에 대한 감정까지 더해져서 울음 앞에 '서럽게'라는 말을 붙여도 될 거 같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곁에서 나를 반기고 얼굴과 손을 핥아주는 한비와 모모는 눈물을 더 오래 가게 만들었다. 한참을 울고서 한마디를 내뱉었다.
"미안해 한비야 모모야"
무슨 뜻인지 모르는 말을 들은 모모와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 한비는 그저 오랜만에 본 주인 한 명과 같이 있는 게 그저 좋았나 보다. 오래도록 애교를 부려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의 한 장면으로 재생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