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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준 Mar 22. 2024

3. 지혜학교 학생들은 어떻게 자기 삶을 돌보는가?

[광주 지혜학교, 철학교육 이야기 3] 자신의 삶터를 사랑한다는 것

1. 

이번 글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삶터를 돌보고 가꾸는 일’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할 참이다. 얼핏 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도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각할 거리들이 가득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학생들의 ‘삶터’란 무엇인지, 그것을 ‘돌보고 가꾸는’ 일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일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 안에 ‘어떤 것들을 쌓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텍스트’가 되는지에 관해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려 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삶터를 돌보고 가꾸는 일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듯이 마냥 일상을 성실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방을 잘 정리하고 정해진 시간을 잘 지키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하면서 한 뼘 두 뼘 쑥쑥 자라나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은 오히려 이런 것들이다.


2015년의 일이다. 학교에서 세월호 추모 행사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어린 학생들끼리 짓궂은 장난을 치다가 급기야 갈등으로 불거졌다. ‘세월호를 생각하며 아파하는 자리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격앙된 교사들이 해당 학생들을 심하게 질책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고3 학생들이 교사들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아무리 상황이 그렇더라도 지도과정에서 드러난 폭력성에 대해서 침묵할 수 없다. 교사회에서 해당 학생들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그들은 수능 준비를 하다가 책을 덮고 몇 주에 걸쳐 대책회의를 하고 대자보를 붙이며 학교장 항의 방문을 했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2017년의 일이다. 교사 중 한 명이 개인 SNS에 동성애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을 올렸다. 그 글을 본 고3 학생들이 졸업 준비를 하다가 멈추고 또 모여 앉아서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 회의를 했다. 학교 게시판에 ‘동성애 혐오를 중지하라’는 대자보를 붙였다. 해당 교사는 사과와 설명, 그리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대자보를 옆에 붙였고, 또 그 옆에 학생들이 그에 응답하는 대자보를 연이어 붙였다.


생각하다 보니 이런 장면도 떠오른다. 2018년의 일이다. 이번에는 중2 학생들 이야기다. 수학을 가르치던 외부 강사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받아들이기에’ 폭력적인 언행을 했다. 이에 학생들은 교실을 뛰쳐나와 교무실에 있는 교사들에게 상황을 알렸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함께 생각한 뒤에 수업을 ‘보이콧’했다. 1년 뒤 그 학생들이 3학년이 되었을 때, 지혜학교에서는 교육과정 개편을 대대적으로 진행했는데, 이들은 교육과정 개편 과정에서 학생들과의 충분한 소통이 없었다며 또 ‘교육과정 개편 반대’ 성명서를 작성하여 교사회에 제출했다.


또, 2018년 가을에는 전국을 들썩였던 ‘스쿨 미투’가 지혜학교 안에서도 일어났다. 학교 곳곳에 재학생과 졸업생의 대자보가 붙었다. 학교에서의 ‘일상적인 성폭력 문화를 끊어내야 한다’는 수많은 말과 행동으로 몇 달 동안 학교가 들썩들썩했다.     


2. 

‘유별난’ 학생들만 지혜학교에 오는 것이 아니다. 지혜학교에서 학생들을 ‘투쟁꾼’으로 키우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학생들의 항의를 독려하는 입장에서, 또 어떤 경우에는 학생들의 항의를 받는 입장에 섰던 나는, 지혜학교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이들은 학교를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여기며, 이곳을 돌보고 가꾸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는 사람은 ‘큰 싸움’을 벌이지 않는다. 한두 명의 불만이 쌓인다고 하여 곧바로 모든 이의 저항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라고 절절하게 생각하며 몸부림칠 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다. 그것도 뒤에서 구시렁거리며 감정을 해소하거나 그냥 흘러가게 두며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목소리를 내며 끝까지 문제를 좇아갈 때에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다. 이곳 학교가 자신이 사랑하는 삶의 터전이며, 이곳에서 자기 삶을 진지하게 사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인 것이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사랑하며, 이곳에서 삶을 충실히 사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고 또 행할까? 그 과정에서 자기 안에 텍스트, 즉, 떠올리고 곱씹어 볼 생각거리들이 얼마나 촘촘하게 쌓이고 있을까? 저 많은 이야깃거리들을 어떻게 하면 끄집어내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생이 품고 있는 텍스트를 입체적인 콘텍스트로 펼쳐낼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철학 수업을 준비하면서 내가 주로 고민하는 것들이다. 


3. 

개인적으로, 앞서 나열한 지혜학교의 여러 장면들은 고통스럽다. 저 일들에 직·간접적으로 얽혀든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기 안에 몇 마디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수많은 상처와 흉터를 지니고 있다. 이 글을 마치기 전에, 학생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을 돌보고 가꾸는 일을 존중하기 위해, 즉 학생들의 인간적인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교사와 부모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도 함께 떠올리려 한다.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고 큰 목소리로 교사들에게 항의할 때마다 교사들은 힘겨웠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교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오갔고, 크고 작은 갈등 속에서 서로 상처도 주고받았다. 그런 교사들이 서로 부딪히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함께 애써 노력한 일이 있었으니, 거칠게 요구해 들어오는 학생들을 결코 다그치거나 억누르지 않은 것이다. 교사들은 그들이 던지는 날것의 주장들이 미숙하다고 내치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고 둘러앉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매번 회의를 되풀이 함으로써, 더 이상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몇 번이고 들썩이고 휘청거리는 학교를 보며 마음이 흔들렸던 부모들도 애쓰기는 마찬가지였다. 보이고 들리는 것을 전부로 생각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곧바로 사실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자녀에게 학교의 상황을 캐묻거나 교사를 찾아가서 어찌 된 일인지, 왜 해결하지 않는지 따져 묻지 않았다. 아이들이란 좌충우돌하면서 한뼘씩 자라나는 것이라 믿고 기다렸다. 너무 힘들 때에는 선배 학부모들에게 기대어 '...결국 아이들은 자라더라'는 경험담에 가슴을 쓸어내기리도 했다. 당장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이런 의미에서 지혜학교에서 학생들이 보여준 저 빛나는 ‘저항의 역사’는, 동시에 교사와 부모의 뜻깊은 ‘인내의 역사’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자신이 서 있는 삶의 터전을 돌보고 가꾸기 위해 열심히 몸부림칠 때, 교사와 부모는 학생들의 터전 주위에 믿음과 희망이라는 울타리를 치는 노동을 함께 했다. 학생들은 자신이 발딛고 있는 삶터를 사랑했으며, 교사와 부모는 그런 학생들을 사랑했다. 


인간의 교육에 있어서, 인간다움을 기르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으로 사는 것’이다.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세계, 자신의 터전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터전을 돌보고 가꾸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자기 안에 쌓을 것이며, 때마다 그것들을 꺼내어 곱씹어 봄으로써 생각과 말, 행동이 조금씩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에게 물어야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의 삶은 어떠한가? 입시와 취업만 이야기하는 '학교'나 '학원' 말고, 잘 기획된 ‘체험 학습 현장’ 말고, 스마트폰 안에서 펼쳐지는 온갖 ‘가상 세계’ 말고, 이들은 도대체 어떤 곳을 사랑하는가? 어디에 서서 무엇을 겪고 행하는가? 거기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며, 무엇에 힘쓰는가? 2024년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자기 안에 어떤 텍스트들을 쌓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위해 교사와 부모는 …, 아니, 이 땅의 어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17년 학교 교육과정 학생 토론회' 의 논의 결과들을 학교 구성원들이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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