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지혜학교, 철학교육 이야기 11]
9년 간 이어져 온 인문반 철학수업을 중심으로 지혜학교의 철학교육을 새롭게 고민하기 위해서 최근에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건넸다. 먼저 학교를 졸업한 7기(25세), 9기(23세), 10기(22세)의 몇몇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러분들은 인문반의 철학수업을 통해 무엇을 배웠습니까?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요?’ 또 현장에서 함께 철학을 가르치는 동료교사들을 찾아가서 차 한잔 나누었다. ‘철학수업과 관련해서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1.
먼저, 철학수업을 거쳐 간 졸업생들에게 수업에 대한 의미를 재차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지금껏 내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는지’는 설명했지만, 그들 자신이 무엇을 ‘배웠으며’ 그들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7기 졸업생은 그 당시의 인문반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학교는 '철학 인문학 대안학교'의 간판을 걸고도 ‘7기 인문반’은 그다지 선생님들께 관심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교육과정이 체계적이지도 못했어요. ‘내가 이러려고 인문반에 왔을까’하는 생각에 내가 배우는 이 공간을 스스로 바꿔나갔죠. ‘내가 기대했던 그리고 지금 필요한 환경은 무엇일까, 어떻게 바꿔나가야 하며,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6년 전 인문반 시절뿐만 아니라, 지혜학교를 졸업하고 홀로 섰을 때도 정말 중요한 질문들이었어요. 인문반에서 지냈던 그 1년의 세월이, 수업뿐만 아니라 그 모든 순간이 저에게는 가장 큰 배움이었던 것 같아요.”
아! 기억이 난다. 2018년 ‘인문반’이 생긴 지 3년 차, 아직 여기저기 고치고 채우고 다듬어야 할 것들이 많은 교육과정이었다. 그때 저 친구는 담임선생님, 부장선생님, 교장선생님 등 선생님이란 선생님은 모두 찾아다니며 ‘인문반의 교육과정을 지원해 달라!’ ‘선생님들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라며 외치고 다녔다. ‘건의’부터 ‘항의’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고 다녔다. 그 덕분일까? 2018년에 3명이었던 인문반 학생들이 2019년에는 12명을 넘기기도 했다.
그렇게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인문반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웠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까?
“… 하지만 이러한 사고력을 키울 수 있었던 건, 주 6시간의 철학수업 덕분이었죠. 함께 책을 읽으며 모르는 부분을 바로 질문하며 토론으로 이끌어가고, 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작업은 그때의 '철학수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자세를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철학수업에서 배웠던 요소들을 바탕으로 현재 내가 맞닥뜨린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현실적 그리고 실용적으로 연습한 셈이라고 생각해요.” (7기 졸업생)
“당시 인문반은 기존의 수업들과는 다르게 좀 더 철학적인 수업 위주로 진행되었습니다. 개인 적으로 집중했던 주제는 '인간'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특히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토론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 철학 수업에서 이어진 고민은 졸업 이후의 삶과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회를 바라보고 사람을 대할 때면 머릿속은 수년 전 인문반의 토론 수업과 같았습니다. 철학적 사고가 일상에 스며든 것입니다. 타당한 근거와 함께 가장 적합한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현재까지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9기 졸업생)
“저는 인문반을 생각이 억압되지 않았던 때로 기억합니다. 규칙이라는 틀에 관해 토론하며 도덕이 상실된 자유로운 세상을 이야기했지만, 인문반에서는 누구도 서로의 의견을 틀렸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사실과 거짓의 문제만 아니라면 모든 옳고 그름을 각자의 판단에 맡겼습니다. 누군가의 생각이 윤리적으로, 혹은 나의 입장에서 옳지 않다고 생각되더라도, 의견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생각을 조율해 나가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의견, 질문들이 존중받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어 원래의 주제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런 과정들 속에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성장할 수 있었기에 그 시간은 현재까지도 저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밤을 새워 글을 써보기도 하고, 장소를 바꿔보기도 하고, 막히는 구절을 반복해 읽다가 아예 글을 써내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나름 글에 자신이 있어 잘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철학 글쓰기와 평소에 제가 쓰던 글은 명백히 달랐습니다. 잘 듣고 잘 이해하는 것 역시 글쓰기의 일부라는 것을 그때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글쓰기 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 저는 인문반을 졸업 후 더는 대화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을 밝히는 게 무서워 토론에 소극적이었던 전과 달리 저의 의견을 반대하는 게 저라는 사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뽐내기에 급급해 많은 말을 하려고 했던 시기도 거쳤습니다. 현재는 경청의 즐거움과 생각을 정리 후 나누는 이야기가 더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열정적으로 글을 쓰고 생각하며 살았던 인문반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10기 졸업생)
글을 보내 준 졸업생들 중에는 졸업 후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찾아 대학 진학을 한 사람도 있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또 졸업 후 자신만의 삶을 살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쌓은 뒤에 비로소 원하는 공부를 위해 독일의 대학에 진학한 사람도 있다.
이들 모두는 한 목소리로 철학수업을 통해서 ‘생각하는 힘’을 배웠다고 말하고 있다. ‘자기 생각’ 즉, 자기 자신이라는 텍스트와 자기를 둘러싼 텍스트를 다루는 힘으로 흔들리는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들을 포함하여 졸업생들이 간간이 들려주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선생으로서 마음이 벅차오른다.
▲ 12기 학생들의 졸업식 매년 2월 말이 되면, 매 기수 학생들이 졸업을 한 뒤에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펼쳐 나간다. ⓒ 지혜학교
2.
24년부터 6학년 인문반 철학수업의 수업방식을 기준 삼아 3학년, 4학년, 5학년의 철학수업을 일관된 흐름 속에 재배치했다. 이에 관해서 4학년 철학 수업을 맡고 있는 동료교사가 <수업계획서>에 잘 정리해 두었다.
“2024년부터 지혜학교 철학 교육의 흐름과 방향이 바뀌었다. 기존 철학 교육은 서양, 동양, 한국 등의 철학사를 주로 공부하고, 6학년에 이르러서야 책 깊이 읽기와 자기 생각 쓰기를 시도했다. 이런 교육이 효과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교육과정은 ‘스스로, 함께 철학함’에 대한 교육보다는 ‘철학 사상에 대해 아는 것’에 치중되어 있었다는 것이 철학 교과 내의 반성이다.
따라서 철학사와 철학함을 구분하고, ‘스스로 그리고 함께 철학함’을 주요 목표로 두기로 했다. 3학년에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귀 기울이는 법과, 개념 중심으로 철학을 배우고, 4학년에는 서양철학사와 함께 ‘논리와 비판적 사고(주요 목표)’를 습득한다. 5학년에는 다양한 글을 읽고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쓰는 연습을 하고, 6학년에는 자서전을 비롯해 읽기, 말하기, 쓰기의 능력을 더 심화시키게 된다.”
이런 배경 아래 3학년 및 4학년 철학수업을 새롭게 기획하고 운영한 지 2개월이 지났다. 3학년 및 4학년 담당 교사들에게 찾아가서 ‘수업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어떤 점을 고민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처음 철학을 배우면서, 철학이란 낯설지만 익숙한 공부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어요. 일상적으로 겪는 경험이나 그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철학적으로 생각하기로 연결하는 것을 수업의 주요 활동으로 설정했습니다. <이런 철학은 처음이야>라는 교재를 중심으로 익숙한 생각들을 철학적으로 낯설게 바라보기를 시도했습니다.” (3학년 철학 교사)
그렇다. ‘일상에서의 철학하기’이다. 나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특히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토론활동이 더 늘어나길 바랐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다른 생각을 들으며 생각을 다듬는 활동에서 공부의 재미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렇게 자기 경험만 이야기해서는 생각이 쌓이기보다는 제자리를 빙글 뱅글 돌기 마련이다. 학생들의 재기 발랄한 생각들이 철학적 사유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2,500년 철학의 역사에서 길어 올린 ‘철학적 개념’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학생들마다 노트를 준비시켜요. 토론할 때 자신의 생각이나 다른 이의 의견 중에 챙겨야 할 것들을 메모하게 합니다. 또 철학사적 배경이나 철학적 개념들을 설명할 때에도 메모하고 공부하라고 강조합니다.”(3학년 철학교사)
수업 교사는 때마다 강의 자료를 준비한다. 글줄만 읽으면 봄기운을 핑계로 엎드려 있을 게 뻔하다. 철학적 쟁점을 담고 있는 가상의 이야기나, 역사적 사건을 담은 예술 작품을 가져와서 어떻게든 이 중요한 이야기들을 전달하려고 애쓴다. 이렇게 1년을 배우고 나면, 기본적인 철학적 개념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도덕적 쟁점들, 사회적 문제들에 깔려있는 철학적 쟁점에 관하여 자신의 생각을 편안하게 이야기하기를 바란다.
3학년에서 철학적 ‘개념’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라면, 4학년에는 개념과 개념의 관계, 즉 ‘논리와 비판적 사고’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다. 4학년 철학교사는 <수업계획서>에 다음과 같이 썼다.
“4학년에서 배울 ‘논리와 비판적 사고’란 인간성이 말살된 기계적 사고나 경청과 공감 없는 날 선 비난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논리와 비판적 사고는 ‘타자를 향한 열린 마음’이다. 논리적인 사람은 개인적인 감정에 휩싸이기보다는 많은 사람이 동의할 합리적인 이유를 찾는 사람이다. 논리적인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선입견과 편견이 아닌지 의심해 보는 사람이다. 논리적인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논리적인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주의 깊게 듣고, 그것과 비교해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생각을 바꾸는 사람이다. 논리적인 사람은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주장도 명확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주장의 근거를 세심히 살피는 사람이다. ‘논리와 비판적 사고’는 사람다운 삶의 태도이자,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필요한 기술이다. 이런 태도와 기술을 습득해 세상 이곳저곳을 빛낼 15기를 기대해 본다.”
<논리는 나의 힘>이라는 교재를 중심으로 주요 개념을 공부한 다음에 토론 주제로 토론을 하면서 상대방의 주장에 담겨 있는 의미를 추상화해 보고, 정의 및 전제 등을 분석하는 활동을 한다. 또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전혀 다른 성향의 신문 칼럼들을 서로 대조하며 분석적 읽기를 훈련하기도 한다.
3학년에 ‘개념적 사유’의 의미를 알고 그것에 대해 이해하며, 4학년에 텍스트 안에서 개념들이 관계 맺는 방식 즉 ‘논리와 비판적 사고’를 훈련한다. 5학년과 6학년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철학자의 텍스트를 골라서 꼼꼼히 ‘읽고’ ‘토론하며’ ‘글 쓰는’ 활동으로 확장된다.
확실히 ‘이로정연’하다. 이것이 24년에 정리한 철학수업의 흐름이다. 이런 수업을 가능하게 만든 동료교사들, 낮에는 담임으로서 학생들과 뒹굴다가 밤이 되면 책상 앞에 앉아 수업 준비를 하느라 자신을 쥐어짜고 있는 동료교사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3.
“그런데... 이렇게 하면 충분할까요?” 철학수업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이야기의 끄트머리에서 4학년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던 동료교사가 던진 질문이다. 졸업생들이 보여주었듯이 생각하는 힘이 자라나서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잘 꾸려나가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3학년에서 6학년까지 우리의 학생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쌓아 올린 경험을 바탕으로 개념적 사유를 훈련하고 논리적 사유를 배운 것을 바탕으로 철학 텍스트를 읽고 토론하고 글 쓰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그러니까 그 교사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지혜학교의 학생들은 (본인들의 입장에서는 물론 각자의 고통과 결핍을 가지고 있지만) 분명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벗어나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이 땅에는 수많은 고통과 가난과 부조리가 널려 있는데 그것들로부터 떨어져서 이렇게 평화로운 것만으로 충분한가? 이들이 졸업해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온 우리의 교육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질문의 밑바닥에는 ‘대안교육으로서의 철학교육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깔려있다. 감히 생각하건대, 입시교육에서의 철학교육이라면, 사교육 시장에서의 철학교육이라면 이런 고민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안’을 꿈꾸는 교육이라면,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짓는 교육이라면 주체적인 사람을 길러내는 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단지 자기 일에 주체적인 사람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형성하는 사람을 길러내야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의 고통, 가난, 부조리를 마주할 때, 적어도 고개 돌리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행복이나 고통에 매몰되어 눈앞의 이익과 손해만을 따지는 것을 주체적이라 착각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 너머의 무언가를 과감하게 생각하고 결연하게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런 데 까지 이야기가 이어지니 갑자기 아득해졌다. 나와 동료교사는 학교 구석 의자에 앉아 뒤뜰에서 깔깔거리는 한 무리의 학생들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 학교의 일상 한 무리의 학생들이 학교 뒷편 별관(볼라벤)에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추교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