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본문을 다 쓰고 제목을 ‘삶을 위한 철학교육’이라고 붙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철학공부는 삶과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목에서는 삶이 목적이며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서 철학공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철학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철학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되, 지혜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함께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 책은 ‘철학교육’이라는 씨줄과 ‘지혜학교’라는 날줄로 짠 옷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위험한 구성입니다. 철학교육의 세부 구성과 방법론을 제대로 다루는 것도 아니고, 지혜학교 교육의 전체를 균형있게 살펴보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부리다가 죽도 밥도 안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며 각자 필요한 부분에 주목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 글을 쓰면서 머릿속에 떠올렸던 독자는 크게 두 부류였습니다. 하나는 청소년 철학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 및 시민’들이었습니다. 이들을 위해서 지혜학교와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인문 철학교육의 몇몇 장면들을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구체적으로 2009년 개교 이후에 지혜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적 활동들을 1인칭의 시점에서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물론 이 지면에 남겨진 장면들은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누구라도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지혜학교 현장의 여러 선생님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함께 기록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쩌다보니 저 혼자 맡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독자는 청소년을 위한 철학교육을 고민하고 있는 여러 현장의 ‘선생님’들입니다. 이분들을 떠올리며 이 땅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대한 고민들을 나열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무어라고 포장하든지간에 결국 70여 년 전부터 오직 ‘입시’라는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경쟁입니다. 이 땅에서도 철학교육이 가능할 것인지, 철학교육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렇게 이루어진 철학교육은 어떤 모습일지를 가늠하는 데에 하나의 참조점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정리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교실에서 철학교육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의 공교육의 학교 교실에서 이 땅의 청소년들과 함께 철학을 공부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관련해서 떠오르던 장면이 있습니다. 저는 수년 전 광주의 몇몇 고등학교에서 ‘전남대 청소년 철학교실’의 강사로 활동했었습니다. 고등학교 1, 2학년 학생들과 둘러 앉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우정(philia)’을 다루는 부분을 읽고 있으려니 한 여학생이 갑자기 눈물을 쏟았습니다. 평소에는 옆에 앉아있는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있다고 믿다가도, 정작 중간·기말고사가 되면 우정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이 경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정을 나누고 있다고 자기를 위로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친구를 버리는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이 비겁하고 구차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죠.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철학을 학교 교실에 펼쳤을 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런 종류의 내적인 충돌은 빈번했었습니다. 철학수업에서 자신의 마음 속 맨 얼굴(?)을 마주하며 무너지는 폭력적인 경험을 온전히 학생에게 전가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대한민국 교실에서 철학교육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관해서는 단지 하나의 교실에서 단기간의 수업 몇 시수를 배치하는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교육과정 또는 학교교육체계까지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에서 한 발짝 떨어진 대안학교이자 청소년 인문 철학 대안학교인 지혜학교의 지난 시행착오에서 분명히 길어올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글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먼저, 지혜학교에서 철학교육을 정착시키기 위한 시행착오를 다루고, 그 다음으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고3 대상의 인문반 철학 수업을 소개했습니다. 세 번째로 지혜학교의 교육 현장의 이모 저모를 조망했고, 마지막으로는 학교 구성원들이나 지역의 시민들과 함께 나누었던 교육 관련 칼럼들을 배치했습니다. 이로써 부족하지만 지혜학교의 철학교육을 둘러싼 현장의 스케치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 담겨 있는 경험을 거름삼아 더 많은 생각들이 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