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요리사 ep.02 -손만두

"빨리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려고 하는 거."

by 춘식

김치찌개 손님이 다녀간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 이후로 손님은 없었다.


사실 원테이블 레스토랑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손님이 많이 오는 것보다는 진짜로 필요한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해한이는 여전히 나와 함께 지내며 가게 일을 도와주고 있다. 그 녀석은 애플 주식으로 벌어들인 돈을 또 다른 곳에 투자한다고 정신이 없다.


"억해야, 니는 정말 이렇게 장사해서 먹고 살 거가?"

"응, 나는 이게 좋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정말 필요한 사람 한 명한테 제대로 해주는 게 나은 것 같아."


오늘은 10월 1일 개천절이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을 느끼는 날씨다. 나는 대오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가게 앞에 70대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혹시... 여기가 기억요리사라는 곳인가요?"

"네, 맞습니다. 어서 오세요."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가게 안으로 들어오셨다. 작은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으신 할머니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정겨웠다.


"어떻게 오시게 되셨어요?"

"아... 얼마전 강북삼성병원에서 우연히 한 젊은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여기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자기 어머니 김치찌개를 똑같이 만들어줬다면서..."


아, 그 군인분이 할머니에게 우리 가게 이야기를 해드렸구나.


"그래서 저도... 혹시 가능할까 해서 왔습니다."


나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분의 기억을 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3개월 전 남편분을 먼저 보내드린 상태였다. 60년을 함께 살아온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지금은 혼자 살고 계셨다. 그런데 할머니의 기억 속에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함께 만두를 빚던 추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할머니, 혹시 드시고 싶은 음식이 있으신가요?"


할머니는 잠시 망설이시더니 조용히 말씀하셨다.


"손만두요... 우리 영감하고 매년 겨울이면 함께 빚던 손만두가 그리워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기억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볼 수 있었다.


1963년 겨울, 신혼시절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좁은 단칸방에서 살고 계셨다. 돈이 없어서 자주 외식을 할 수 없었던 그때, 할아버지가 제안하셨다.


"여보, 우리 만두 만들어서 먹을까?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가 해주시던 만두가 정말 맛있었거든."


할머니는 그때 만두를 만들어본 적이 없으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배우고 싶으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자신의 어머니에게 배운 만두 만드는 법을 알려주셨다.


만두피는 밀가루와 뜨거운 물로 반죽해서 만들었다. 밀가루 2컵에 뜨거운 물을 조금씩 넣어가며 반죽하고, 소금을 조금 넣어 간을 맞췄다. 반죽을 30분 정도 숙성시킨 후 동그랗게 밀어서 만두피를 만들었다.

소는 돼지고기와 두부, 부추, 당근을 다져서 만들었다. 돼지고기는 앞다리살을 사용했고, 두부는 물기를 꼭 짜서 으깨서 넣었다. 부추는 2cm 길이로 썰고, 당근은 잘게 다져서 넣었다. 여기에 다진 마늘, 생강, 참기름, 소금, 후추로 간을 맞췄다.


할아버지는 만두를 빚는 방법을 할머니에게 정성스럽게 가르쳐주셨다.

"여보, 이렇게 만두피 가운데에 소를 올리고, 가장자리에 물을 발라서... 이렇게 주름을 잡아가며 오므리는 거야."


할머니는 처음에 서툴렀지만, 할아버지가 옆에서 웃으며 도와주셨다. 그들의 첫 만두는 모양이 제각각이었지만, 함께 웃으며 만드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찜통에 찐 만두를 간장에 식초와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양념장에 찍어 먹었다. 그 맛은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다.

그 후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매년 겨울이면 함께 만두를 빚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었다. 6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그들만의 전통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그 레시피를 정확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함께 만든 만두의 기억도 보였다.


"할머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만들어드릴게요."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밀가루 반죽부터 시작했다. 할머니의 기억 속 그대로, 뜨거운 물로 반죽하고 소금을 넣어 간을 맞췄다. 돼지 앞다리살을 다지고, 두부 물기를 짜서 으깨고, 부추와 당근을 썰었다. 마늘과 생강을 다져 넣고 참기름으로 버무렸다.


반죽이 숙성되는 동안 나는 할머니 곁으로 가서 앉았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만두 빚던 이야기 해주세요."

할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지시며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 영감이... 만두 빚는 게 정말 서툴렀어요. 60년을 함께 살았는데도 나보다 못했거든요. 그런데도 매년 겨울이면 꼭 함께 만두를 빚자고 했어요. 나는 혼자 하는 게 더 빠르다고 했는데... 그 영감이 그러더라고요. '빨리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려고 하는 거 아니겠나?' 하면서..."


나는 반죽을 밀어 만두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기억 속 할아버지의 손길을 그대로 따라하며.


"할머니도 함께 만들어주세요."

"아니야, 내가 뭘..."

"할아버지께서 그러지 않으셨나요? 빨리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려고 하는 거라고."


할머니는 잠시 놀라신 표정을 지으시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우리는 함께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손놀림은 여전히 능숙했다. 60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손길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만두 빚을 때 자꾸 모양이 이상해지면 뭐라고 하셨어요?"

"호호... 그 영감이 '이것도 만두다, 예쁘게 생긴 것만 만두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자기 변명을 했지."

우리는 함께 웃으며 만두를 빚었다. 찜통에 올린 만두가 익어가는 동안 할머니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영감이 마지막에 병원에서... '여보, 올겨울에도 만두 함께 빚자'라고 했어요. 나는 '그래, 알았다'고 했는데... 결국..."


할머니가 말을 잇지 못하셨다.

찜통에서 만두가 다 익었다. 나는 할머니의 기억 속 그대로 간장, 식초, 고춧가루를 섞어 양념장을 만들었다.


"할머니, 첫 만두 드셔보세요."

할머니는 만두 하나를 양념장에 찍어 드셨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셨다.


"똑같아요... 우리 영감하고 함께 만들던 그 맛이에요."

나는 할머니 곁에 앉아서 함께 만두를 먹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만두를 먹었다.


"할머니."

"응?"

"할아버지께서 할머니에게 만두 만들기를 가르쳐주신 건 단순히 배고파서가 아니었어요. 할머니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시간 자체를 사랑하셨던 거예요.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모두 할머니와 함께한 그 작은 일상들이었어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는 지금도 할머니가 만두를 빚기를 원하실 거예요. 혼자가 아니라... 마음으로나마 함께."

할머니는 남은 만두를 모두 드셨다. 그리고 가방에서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주셨다. 젊은 시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함께 부엌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우리가 결혼하고 첫 번째 겨울에 만두 빚던 날 이웃집 아주머니가 찍어준 거예요. 그때는 사진기가 귀해서..."

"정말 행복해 보이세요, 두 분 다."

"그때는 가난했지만... 참 행복했어요."


할머니는 계산을 하려고 하셨지만 나는 받을 수 없었다.

"할머니, 오늘은 할아버지와 함께 만든 만두였어요. 제가 혼자 만든 게 아니라서요."

"그게 무슨..."

"할아버지께서도 함께 만들어주셨어요. 할머니 기억 속에서요."


할머니는 한참을 나를 바라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럼... 다음에 또 와도 될까요? 이번엔 내가 직접 만두를 빚어서 그 영감 제사상에 올려주고 싶어서요."

"네, 언제든지 오세요. 할머니."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해한이가 주방에서 나왔다.

"억해야, 니는 정말 특별한 놈이다. 사람들의 기억을 음식으로 되살려주는 거 말이다... 그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니는 아나?"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하해가 주고 간 이 능력을 잘 써보고 싶을 뿐이지."

그날 밤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기억을 보았다. 할머니는 집에 돌아가셔서 할아버지 사진 앞에 앉아 계셨다.


"영감, 오늘 우리 함께 만두 빚었지? 그 젊은 요리사가... 당신이 옆에서 함께 만들어줬다고 하더라고. 정말 그런 건가?"


할머니는 사진 속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환히 웃고 계셨다.

기억은 때로는 아픔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다리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날 밤 하해의 기억을 떠올렸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널 잊어버린다고 해도 내가 세상 끝까지 너를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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