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홍아, 배고프지? 아빠가 짜장면 해줄까?"
할머니는 그 이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 오셔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만두를 빚고 가신다. 나는 그때마다 할머니와 함께 만두를 빚으며 할아버지의 기억을 전해드린다. 할머니는 그런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고 하신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손님이 왔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분이었는데,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맨 회사원 같아 보였다.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서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주신다고 들었는데요."
"네, 어서 오세요. 앉으세요."
그가 앉자마자 나는 그의 기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기억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이 얽혀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짜장면이 있었다.
"혹시 드시고 싶은 음식이 있으신가요?"
"짜장면이요... 아버지가 만들어주던 짜장면이요."
그의 목소리에는 묘한 떨림이 있었다.
나는 그의 기억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봤다. 그의 어린 시절, 아버지는 중국집을 운영하셨다. 작은 동네 중국집이었지만 아버지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셨다.
1992년 어느 토요일 오후, 8살이었던 그는 아버지의 중국집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손님이 별로 없는 한적한 오후였다.
"재홍아, 배고프지? 아빠가 짜장면 해줄까?"
"네! 좋아요!"
아버지는 아들만을 위한 특별한 짜장면을 만들기 시작하셨다.
먼저 춘장을 기름에 볶았다. 이때가 가장 중요한 과정이었다. 춘장의 쓴맛을 없애고 단맛을 끌어내기 위해 약불에서 천천히, 정성스럽게 볶으셨다. 춘장이 윤기가 나고 달콤한 향이 날 때까지 최소 15분은 볶으셨다.
양파는 큼직하게 썰어서 춘장과 함께 볶았다. 양파의 단맛이 춘장과 어우러지면서 짜장의 기본 맛이 만들어졌다. 거기에 돼지고기를 넣고 볶다가 감자와 당근을 넣었다. 아들이 야채를 잘 안 먹어서 감자와 당근을 조금 크게 썰어서 씹는 맛을 주려고 하셨다.
물을 넣고 끓이면서 설탕을 조금 넣어 단맛을 더했다. 마지막에 전분물을 넣어 적당한 농도로 맞춰주셨다.
면은 직접 뽑은 수타면이었다. 아버지는 면 뽑는 일에 장인정신을 가지고 계셨다. 밀가루에 소금물을 넣어 반죽하고, 충분히 치대서 쫄깃함을 만들어내셨다. 그리고 가는 면발로 뽑아서 끓는 물에 삶아주셨다.
"재홍아, 아빠 짜장면 어때?"
"맛있어요! 아빠 짜장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그때 아버지의 얼굴에 번진 미소를 나는 그의 기억을 통해 선명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기억에는 아픈 부분도 있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그는 아버지의 중국집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너희 아빠 중국집 짜장면 맛없다"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상처받았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아예 아버지 가게에 가지 않았다.
"아빠, 저 이제 친구들이랑 다른 데서 먹을게요."
그때 아버지의 표정을 그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실망스러우면서도 이해한다는 듯한 아버지의 눈빛.
결국 아버지의 중국집은 5년 전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작년에 갑자기 쓰러지셨다. 지금은 요양원에 계신다.
"그래서 오늘 아버지를 뵈러 가기 전에... 아버지 짜장면을 한 번 더 먹어보고 싶었어요."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아버지가 만드신 그 짜장면을 정확히 재현해보고 싶었다.
춘장을 기름에 넣고 약불에서 천천히 볶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처럼 15분간 정성스럽게 볶았다. 춘장에서 윤기가 나고 달콤한 향이 올라올 때까지.
양파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돼지고기, 감자, 당근 순으로 넣으며 볶았다. 물을 넣고 끓이면서 설탕을 조금 넣어 단맛을 더했다.
면은... 나는 잠깐 고민했다. 수타면을 뽑을 수는 있지만 그의 아버지만큼 장인정신을 가지고 뽑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미리 준비해둔 생면을 사용했다.
"여기 짜장면 나왔습니다."
그는 젓가락으로 면을 한 젓가락 집어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잠시 멈춰있더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맛이에요... 아버지 짜장면 맛이에요."
나는 그 옆에 앉아서 함께 있어주었다.
"사장님... 저 정말 바보같죠? 아버지가 평생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신 짜장면을 부끄러워했으니까요."
"아니에요. 그땐 어렸으니까요."
"아버지께서 지금도 기억하실까요? 제가 아버지 가게 안 간다고 했던 그 말들을..."
나는 그의 아버지의 기억도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가게를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하지만 화를 내시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이 더 큰 세상에서 더 좋은 것들을 경험하기를 바라셨다.
"아버지께서는 화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아들이 더 넓은 세상을 보길 원하셨어요. 아버지의 기억 속에는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만 가득했어요."
"정말요?"
"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지금도 아들이 와서 '아빠 짜장면 해줘'라고 말해주기만을 기다리고 계세요."
그는 짜장면을 다 드시고 일어났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이제 아버지께 가서 말씀드릴게요. '아빠, 짜장면 정말 맛있었어요. 그때 몰라봐서 죄송했어요'라고."
"네, 아버지께서 정말 기뻐하실 거예요."
그가 나간 후 해한이가 나에게 물었다.
"억해야, 니는 언제 니 아버지한테 고마웠다는 말 한번 해볼 거가?"
"뭔 소리야?"
"니도 니 아버지가 니를 위해 전국 맛집 다니면서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그런데 니는 한 번도 아버지한테 고맙다는 말 안 했잖아."
해한이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나는 내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렸다. 어린 나를 위해 전국의 맛집을 찾아다니시던 아버지. 그때 아버지도 아들을 위한 마음이었는데, 나는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해한아, 내일 부산 내려가자."
"응? 갑자기 왜?"
"아빠랑 자짱면이나 먹그로."
해한이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날 밤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렸다.
"아빠, 내일 집에 내려갈게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짜장면 해드릴게요."
"어.. 억해야? 갑자기 왜? 장사는?"
"아빠가, 그냥... 보고 싶어서요."
전화 너머로 아버지의 기쁜 목소리가 들렸다.
기억은 돌고 돈다. 내가 받은 사랑을 이제는 내가 전해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