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요리사-ep.04 갈비찜

미정아 나와서 밥 먹어...

by 춘식

부산에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버지는 내가 해드린 짜장면을 드시면서 많이 우셨다고 한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그날 밤 아버지는 한참을 혼자 중얼거리셨다고 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해한이가 물었다.


"억해야, 니 아부지 기억도 볼 수 있제?"

"응, 볼 수 있지."

"그럼 니 아부지가 젤로 행복했던 기억이 뭔데?"


나는 잠시 생각했다. 아버지의 수많은 기억들 중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모여서 밥 먹을 때. 그때가 제일 행복해하셨어."

"그래... 밥 한 끼가 그렇게 중요한 거다."


11월의 서촌은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대오서점 앞 은행나무도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아침 일찍 가게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사장님!"

뒤돌아보니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서 계셨다. 깔끔한 정장 차림에 서류가방을 든 모습이 커리어우먼 같았다.

"네, 어서 오세요."

"혹시... 예약 없이 와도 될까요? 친구한테 소개받아서 왔는데..."

"괜찮습니다. 앉으세요."


그녀가 의자에 앉는 순간, 나는 그녀의 기억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윤미정.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기억 속에는 깊은 후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혹시 드시고 싶은 음식이 있으신가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조용히 말했다.

"갈비찜이요... 우리 오빠가 해주던 갈비찜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그녀의 기억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1985년 겨울, 서울 변두리의 작은 연립주택.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미정이는 오빠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부모님은 3년 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고등학생이었던 오빠 윤재석이 동생을 키우고 있었다.

오빠는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저녁에는 공사장에서 일했다. 밤늦게 돌아와서도 동생의 도시락을 싸주고, 숙제를 봐주었다.


"미정아, 오늘 뭐 먹고 싶어?"

"오빠, 나 괜찮아. 라면 먹으면 돼."

"안 돼..미정이 많이 먹고 쑥쑥 커야지. 오빠가 오늘 특별한 거 해줄게."


어느 토요일 오후, 오빠는 동생을 위해 갈비찜을 만들기로 했다. 돈이 많지 않아서 갈비를 사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오빠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갈비를 사다가 동생에게 해주곤 했다.


시장에서 제일 싼 돼지갈비를 샀다. 소갈비는 너무 비쌌다. 하지만 오빠는 그 돼지갈비로도 최고의 갈비찜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먼저 갈비를 찬물에 1시간 정도 담가서 핏물을 뺐다. 그 사이에 양파, 당근, 감자, 무를 준비했다. 야채는 시장에서 아저씨가 싸게 주신 것들이었다.

갈비를 끓는 물에 데쳐서 기름기와 잡내를 제거했다. 이때 생강 한 쪽을 같이 넣어서 누린내를 없앴다.

양념은 간장, 설탕, 다진 마늘, 다진 파, 참기름, 깨소금, 후추로 만들었다. 오빠만의 비법은 배를 갈아서 넣는 것이었다. 시장 아저씨가 주신 못난이 배 한 개를 갈아서 양념에 넣으면 갈비가 부드러워지고 단맛이 났다.

냄비에 데친 갈비를 넣고, 양파와 무를 먼저 깔았다. 그 위에 갈비를 올리고 양념을 부었다. 물을 자작하게 부어서 센 불에 끓이다가, 끓어오르면 중약불로 줄여서 40분간 푹 끓였다.

중간에 당근과 감자를 넣고, 은행과 밤도 몇 개 넣었다. 이것도 시장 아저씨가 서비스로 주신 거였다.

마지막에 대파를 송송 썰어 넣고, 깨소금을 뿌렸다.



"미정아! 갈비찜 다 됐다! 와서 먹어!"

"와! 오빠! 진짜 맛있겠다!"


그날 미정이는 갈비를 먹으면서 오빠에게 말했다.

"오빠, 나 커서 돈 많이 벌면 오빠한테 매일 소갈비 사줄게!"

"그래, 우리 미정이가 그때까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하지만 미정이의 기억은 여기서 아프게 꺾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미정이는 공부에 집중했다. 명문대에 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오빠와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오빠, 나 공부해야 하니까 조용히 해줄래?"

"미정아, 오빠가 갈비찜 해줄게. 나와서 먹자."

"싫어. 나 다이어트 중이야. 그리고 공부 방해하지 마."

대학에 들어가고, 취직하고, 승진하면서 미정이는 점점 더 바빠졌다. 오빠는 여전히 변두리 연립주택에서 살면서 공사장 일을 했다.

"오빠, 나 오늘 회식 있어서 못 가."

"오빠, 다음 주에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어서..."

"오빠, 요즘 너무 바빠서..."


그렇게 5년이 흘렀다. 그리고 작년 가을, 오빠가 공사장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오빠는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보호자분, 각오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미정이는 오빠의 손을 잡고 울었다.

"오빠, 미안해. 내가... 내가 너무 못했어. 오빠가 해준 갈비찜도 제대로 먹지 않았어. 오빠..."

오빠는 힘겹게 눈을 떴다.

"미정아..."

"응, 오빠. 나야."

"너 회사에선 별일 없이 잘하고 있지? 누가 혼내면 오빠한테 말해. 찾아가서 혼내줄게"

"응, 오빠. 다 오빠 덕분에 회사 생활 너무 잘하고 있어"

"다행이다... 오빠는... 미정이가 기쁘면 기쁘다..."


그것이 오빠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그녀의 기억을 보면서 숨이 막혔다. 그녀가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얼마나 오빠를 그리워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한참의 침묵후에 그녀는 말을 했다.

"오빠가 평생 저를 위해 살았는데, 저는 오빠한테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대접하지 못했어요. 오빠가 해준 갈비찜을 '살찐다'고 거부했어요. 오빠를... 부끄러워했어요."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오빠 돌아가시고 나서 알았어요. 오빠가 얼마나 힘들게 저를 키웠는지. 오빠의 통장을 정리하면서 봤어요. 매달 제 학비, 생활비 보내고 나면 오빠한테 남는 돈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도 한 달에 한 번씩 갈비를 사셨더라고요. 저를 위해서..."


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오빠가 만들어주던 그 갈비찌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돼지갈비가 아닌 소갈비를 준비했다. 최고급 소갈비였다.


찬물에 담가서 핏물을 빼고, 끓는 물에 데쳤다. 생강을 넣어서 잡내를 제거했다.

양념을 만들었다. 간장, 설탕, 다진 마늘, 다진 파, 참기름, 깨소금, 후추. 그리고 배를 갈아서 넣었다. 오빠의 레시피 그대로.

냄비에 양파와 무를 깔고, 그 위에 갈비를 올렸다. 양념을 부르고 물을 자작하게 부었다.

센 불에 끓이다가 중약불로 줄여서 푹 끓였다. 당근, 감자, 은행, 밤을 넣었다.

갈비찜이 익어가는 동안,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손님, 오빠께서 손님을 원망하지 않으셨어요."

"...네?"

"오빠의 마지막 기억은 동생이 잘되어서 기쁘다는 거였어요. 오빠는 평생 동생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생각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오빠께서 돼지갈비로 갈비찜을 만드신 건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어요. 소갈비를 살 수 있었지만, 그 돈으로 동생의 참고서를 한 권 더 사주고 싶으셨던 거예요. 오빠에게는 그게 더 큰 기쁨이었어요."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갈비찜이 다 익었다. 나는 접시에 정성스럽게 담아서 그녀 앞에 놓았다.

"여기 갈비찜 나왔습니다."

그녀는 갈비찜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소갈비잖아요?"

"네."

"오빠는 항상 돼지갈비로..."

"오빠께서 진짜로 동생에게 해주고 싶었던 건 소갈비 갈비찜이었어요.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동생에게 최고급 소갈비로 갈비찜을 해주고 싶다고 늘 생각하셨어요."


그녀는 젓가락을 들어 갈비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오빠 맛이에요... 오빠가 해주던 그 맛이에요."

"네. 오빠의 레시피 그대로 만들었어요. 배를 갈아 넣는 것, 생강으로 잡내를 없애는 것, 야채를 아래 깔고 갈비를 올리는 것. 모두 오빠께서 하시던 방식이에요."

그녀는 갈비찜을 먹으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오빠... 미안해. 정말 미안해. 오빠가 이렇게 맛있게 해줬는데... 나는..."

나는 그녀 옆에 앉았다.


"손님, 오빠께 사과하고 싶으시면 이렇게 하세요. 오빠가 손님을 위해 살았던 것처럼, 이제는 손님도 누군가를 위해 살아보세요. 오빠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세요."

"...어떻게요?"

"오빠처럼 누군가에게 정성스럽게 밥을 해주세요. 가족이든, 친구든, 동료든. 밥 한 끼에 마음을 담아서 대접하는 거예요. 그게 오빠가 가장 기뻐하실 일이에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혹시 이 레시피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제가... 오빠가 해주시던 방식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어요."

"물론이죠."

나는 오빠의 갈비찜 레시피를 자세히 적어서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갈비찜을 다 먹고 일어났다.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오빠를... 다시 만난 것 같았어요."

"손님, 오빠는 언제나 손님의 기억 속에 살아계세요. 그리고 손님이 누군가에게 밥을 해줄 때마다, 오빠도 함께 그 밥을 만드시는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나간 후, 해한이가 주방에서 나왔다.


"억해야, 니는 진짜... 사람들한테 위로를 주는 거 같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하해가 내게 준 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지. 그게 하해가 나에게 바라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들고"


-

미정씨는 집에 돌아가서 부엌에 섰다. 그리고 오빤 영정 사진을 보며 말했다.

"오빠, 나도 이제 누군가에게 밥을 해줄게. 오빠처럼 마음을 담아서. 오빠가 나한테 해줬던 것처럼."

그녀의 눈에는 이제 후회가 아닌, 다짐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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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윤미정 씨에게서 문자가 왔다.

"사장님, 오늘 회사 후배들에게 갈비찜을 해줬어요. 다들 너무 맛있다고 했어요. 사람들이 왠 갈비찜이냐고 물어 보길래. '소중한 사람이 가르쳐줬다'고 말했어요. 오빠가 웃으면서 보고 계실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나는 그 문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밥 한 끼에 담긴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은 이렇게 전해진다. 사랑은 이렇게 이어진다.

"하해야, 너와의 기억도, 추억또한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여전히 나에게 남아있어.

나는 매번 다른이의 식사 한끼를 만들면서 하해 너를 기억해. 내가 너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너를 기억하고 있어. 언젠가 만나는 그날, 너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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