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머리가 사라진 그 남자 이야기

궤변 속에 담긴 진심을 찾아서 (1)

by 빙산HZ

앞머리가 사라졌다


출생시절부터 하늘을 향해 솟아 있던 풍성히 그 머리카락들은 영유아시절부터 그의 이마를 가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특히 앞머리가 긴 것이 ‘멋’으로 여겨지던 문화가 있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 역시 이런 유행은 이어져서 거주 국가를 두 번 바꾸는 과정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회사원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수십년간 그의 이마는 머리를 감을 때, 수영장에서나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대부분의 남성들이 이마를 드러내는 결혼식장에서도 그의 앞머리는 이마를 덮고 있었다.


그러던 그의 앞머리는 왜 갑자기 사라진 것일까?



시간 소모의 관점


계기는 2024년의 8월.

그의 딸 아이가 아팠던 때가 있었다.

그 후 시간은 너무나 소중한 자원이 되었다.

이발하러 가는 시간도 아까웠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 머리를 감는 시간이 미안했다.

아내에게.


어떤 경우에는 아빠가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있는 동안 아이가 울거나 아내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머리가 짧으면 샤워시간이 짧아졌다.

머리말리는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머리가 짧을 땐 주기적으로 이발을 하러 가야했고,

점심시간을 활용하지 않으면 결국 퇴근시간이 늦어지거나, 주말에 따로 이발을 위해 시간을 내야했다.


결국은 같은 집에서 있는 샤워시간을 아낄 것인가,

아니면 혼자 나와있는 시간을 줄일 것인가 두 선택지 중 하나였다.


아이가 클수록 후자의 경우가 아내가 더 힘들 가능성이 높았으니,

이 역시 고려사항이 되었다.



경제역사적 관점


생각해보니 매달 이발을 하지 않으면 월 약 2만원이 생겼다.

10달이면 20만원이다.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

책 5-7권.

기타 이펙터 1개.

옷 대여섯 벌.

아니면 '당근'에서 '쓸모는 없지만 갖고 싶은 것'을.



그나저나 현대 남성들은 언제부터 짧은 머리를 하게 된걸까.


음모론을 만들어보자.


대부분의 남성들이 하는 머리스타일.

옆머리, 뒷머리를 ‘바리깡’으로 미는 그 스타일.


조선시대의 우리 선조들은 달랐다.

身體髮膚는 受之父母니 不敢毁傷이 孝之始也
신체발부는 수지부모, 불감훼상이 효지시야 “


머리카락을 그저 ‘소모품’이 아닌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신체의 일부로 바라보는 시선을 담고 있다.

그들은 머리가 길면 나이에 따라 땋기도 하고, 어른이 되면 위로 묶어 처리했다.


이런 멋드러진 말을 끌어다 붙이면

머리를 안 자르는 게 효가 되었다.


호오라.

효자가 되어볼까?


그의 마음 속에 효심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남자가 여자처럼 머리를 길게 기르다니!!"


이런 말의 시작은 아마도 개화기 였을 것이다.


개화기에 도입된 헤어스타일은 일본강점기의 이발사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구독서비스’ 같은 거였다.

옆머리를 짧게 ‘치거나’ 밀어버리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삐죽삐죽 잔디처럼 자라는 옆머리는 결국 이발소에 가서 잘라야 한다.


명절이 되어 성묘하러 가서 제초를 하듯 말이다.


제초는 1년에 두어번 이지만, 이발은 물론 주로 1-2개월에 한 번 이상이다.

매달 머리를 자르러 가는 남성들은 이발사들의 캐시카우(cash-cow) 였던 것이다.


그에겐 이제 이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헤어스타일을 거부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졌다.



심미적인 이유


매번 머리를 깔끔하게 자른다고 더 멋있어지는 게 아닌 거라는 사실에도 눈을 떴다.

잘 생긴 사람이야 얼굴을 많이 드러내는 것이 멋있는 면적을 많이 드러내는 거니 진작에 그런 생각이 있었다.

물론 원빈은 스포츠 머리를 해도 멋있고 장발을 해도 멋있다.

원빈이 아닌 사람은 그저 사회적 흐름에 따라 남들과 유사한 헤어스타일로 튀지 않았을 뿐인 거다.


남들과 다르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은 게 되지만 그게 딱히 '멋있다'와 연결되지도 않았다.


늘 그런 생각이 머리카락 안, 머리 속 한 켠에 있어왔다.


‘그저 그런 사람’은 많이 가려야 더 ‘나아 보이는 것은 아닐까’?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를 짧게 하는 것의 장점을 찾을 수 없었다.


군인이야 군모와 헬멧, 또 빠른 샤워시간, 또 지정된 이발소와 비용이 들지 않는 이발에 대한 지원이 있었고, 그 시간은 근무시간 중 처리가 되었다. 그런 용모를 유지 하는 것 자체가 군 복무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군인이 아니다.

자유한 사회인이다.


‘지금까지 난 뭘 한 거지?’


그는 허무함을 마주했다.


매달 시간과 돈을 들여 머리카락을 잘라도 지역경제 활성화 이 외에 아무 이득이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타인의 평가


물론 이런 이유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생각해낸 이유이다

.

풀타임 근무, 잔여시간 육아에 올인.

아이들이 잠든 시간, 새벽에 깨면 글을 쓰던 삶을 수개월 계속하다보니 그저 머리가 많이 길었을 뿐이다.


옆머리가 뜨지 않도록 눌러주는 도구에 8,000원 정도를 투자하니 옆머리도 뜨지 않게 되었다.

늘 중력을 거스르며 자랄 것 같은 옆머리도 결국 중력을 받고 아래로 향하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자고 머리에 물을 주고, 아니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은 그저 자랐을 뿐이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었다. 봄이 되었다.

머리가 제법 길었다.

늘 드러나던 목덜미를 덮어 목을 따뜻하게 해주던 그의 머리카락들.

나름대로 실용적이었다.


하지만 앞머리는 이제는 아이들에게 목욕을 시킬 때 얼굴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머리를 감지 않는 날에 머리가 젖지 않도록 묶어주던 머리끈.

목욕을 시킬 때 쓰던 그 머리끈은 결국 그의 머리카락을 묶는데 쓰이기 시작했다.


퇴근 후,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더울 때, 집에서 아이들을 씻긴 후, 운전해서 가는 회사 출근길 등…

점점 머리를 묶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는 약 40여년의 삶을 산 후에서야 처음으로 깨달았다.

머리카락이 이마를 가리지 않았을 때의 상쾌함.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리지 않을 때의 쾌적함.


그렇게 머리 묶는 게 상당히 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되는 회사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아침 일찍 사람들이 없을 때는 묶고 있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출근하기 시작하면 머리를 푸르는 ‘그저 머리가 좀 긴 사람’으로 살아갔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묶었던 머리는 차에서 내린 후에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 속에서도 그대로였다.

머리를 묶고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다.


회사에서 오랜 만에 만난 선배는 말했다.


“어머! ㅇㅇ씨, 머리 길렀네.

잘 어울리네.

계속 묶고 다녀.”


그제서야 머리끈을 빼며, 머리를 묶고 있었던 걸 깨달은 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아, 요즘 머리 자르러 갈 시간이 없어서요’



아침에 제일 일찍 출근하는 옆 팀의 팀장님도, 일찍 앞자리에 앉는 선배도 그에게 비슷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 묶으니깐 잘 어울리네”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을 때,

같은 동에 사는 ㅇㅇ님 (역시 세 아이의 엄마)도 한 마디 했다.


“잘 어울리시는데요? 머리 계속 묶고 다니세요~”

발레를 전공해서 인지 츄리닝을 입어도 우아한 이웃의 평이 더해졌다.



그렇게 멋과 전혀 상관이 없던 실용적인 이유 위에 주변 사람들에 인해 헤어스타일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의 씨앗이 심어졌다.


그렇게 입사 12년 만에 그는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지 않을 때도' '멋있네-’ 소리를 듣는 사원이 되었다.


그저 머리를 안 잘랐을 뿐인데…


어느 새 ‘90년대 영화배우’, ‘뮤지션 같네’ - 같은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물론 '청학동 소년인 줄 알았네'도 있다)


역시 이 사회는 겉모습을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이다.



유전학적 리스크와 '카르페 디엠'


그의 아버지는 55년생.

지금도 빽빽한 머리숱.

어머니는 흰머리가 먼저 많이 나셨지만, 아버지는 훨씬 늦게 흰머리가 조금씩 나기 시작하셨다.

할아버지도 그렇다.


대머리 유전자의 가능성은 외할아버지에 있다.

음주가무를 좋아하셨다는 그의 외할아버지.


그가 아기 때 함께 찍은 사진에서부터 정수리에서 빛을 반사하고 계셨다.

그 역시 물려 받은 DNA 어딘가에 대머리가 될 유전적 확률이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후생유전학을 훨씬 더 좋아하는 일인으로서 큰 불안은 없다.

그 술도 담배도 이렇다할 염색이나 펌[파마]도 많이 하지 않았다.

직장인이 되어 2년차 처음해본 파마.

그렇게 30대 후반까지 다 합해야 대여섯번일 거다.

그렇게 마지막 파마 이후 6여년이 지났다.

그의 두피, 모근은 보호 받아왔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미래.

'대머리의 가능성'은 ‘묶을 수 있을 정도의 긴 머리’에 대한 또 다른 합리화 요소가 되었다.


‘대머리가 되면 할 수 없는 머리잖아’




장발장


그 무렵 아이가 여러 사람들에 물려 받은 책들 중에는 ‘장발장’이라는 책이 있었다.
이야기 속에서 빵을 훔친 장발장.

그 책을 골라 읽어달라고 하니 두어차례 읽어줬다.


유치원생에게 장발장의 이야기가 얼마나 전달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아이에게는 빵을 훔친 장발장이 ‘나쁜 사람’이 되었다.


아이는 혼나고 나서 아빠한테 화날 때 ‘아빠 나빠!’ 라는 말 대신

아빠 “장 발 장 !!” 이라고 한다.


어이가 없어 웃으니 웃는 아빠가 재미있나보다.

그 다음부터는 종종 ‘아빠 나빠’ 대신 ‘아빠! 장발장!’ (큭큭큭) 이 되었다.

그렇게 아빠는 어느덧 장발장이 되었다.

장발인 건 맞는데…


그렇게 종종 머리를 묶고 다니다가 풀면 또 머리는 뒤로 넘어가 있는 상태로 유지된다.


그렇게 그에게는 앞머리가 없는 '이마 해방시대'가 시작 되었다.


하지만 그런 이마해방시대를 달가워 하지 않는 이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의 아내였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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