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브하우스' 혹은 그 비슷한.
‘지속가능성(=써스테이너빌리티)’이라는 말은 한국의 미디어에서는 아직 그렇게 대중화되지 않았다. 마트에서 커피 봉지를 집어들고 직원에게 "이게 지속가능한 커피인가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것 같다. 근데 여기 미국에선 꽤 흔한 질문이다. 아니, 아예 대놓고 상품들을 '써스터이너블한 커피입니다! 키친타올입니다! 비누입니다!!'하고 광고한다. 근데 한꺼풀 벗겨보면 필요 이상으로 물건을 대량으로 만들어 파는거 자체가 공해다. 근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회사에 돈이 안 생긴다. 근데 환경을 위한답시고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똥으로 퇴비를 만들어 농사지어 먹고 사는건 힘들다. 우리는 자본주의+IT시대+기후위기 쓰리콤보의 모순에 낑겨있다.
'지속가능성'의 원어(어디에서 이 용어가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난 영어권에서 먼저 들었다) ‘써스테이너빌리티 sustainability’는 미국에서 벌써 닳고 닳아서 지겨운 말이 된지 좀 되었다. 내가 7년전 파슨스 대학원에 들어갔을때 교수들은 이미 이 단어를 지겨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가르쳐야하는, 어쩔수 없이 계속 이고지고 가야하는 단어, 주제. "환경문제". 미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패션 디자인 대학교의 교수님들이 그 단어를 지겹고 껄끄러워한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친환경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걸 알고 있어서다. 그들의 밥벌이가 학생들을 가르쳐서 최종적으로 브랜드를 차리거나 패션 회사에 입사할수 있도록 도와주는건데, 사실 패션업계가 하는 짓은 대부분 써스테이너빌리티의 우주 반대편에 있다. 지금 인류는 옷이 너무 많아서, 아마도 지금 부터 모든 공장을 문 닫고 향후 50년간 옷을 생산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반면 그동안 입고 버린 옷들의 쓰레기산들이 다 썩어 없어지려면 몇 백년은 걸릴 것이다.
‘지속가능성’과 비슷한 의미로 ‘친환경(=이코프랜들리)’이라는 단어가 있다. 직접적 의미는 다른데 결과적인 뜻은 같다. 아무래도 요즘 친환경보다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가 더 쓰이는건, 친환경이란 말은 좀 애매하기 때문이다. 환경문제는 더이상 친하다 안 친하다로 표현할 만큼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화석연료를 태워서 전기를 만드는 건 환경에 친화적이지 않다."하면 한 귀로 흘려듣겠지만, "이대로 가다간 동식물들이 멸종해서 2***년에는 실험실에서 키운 벌레나 콧물같은 죽만 먹고 살야아한다."고 하면 확실히 와닿는다. 비슷하게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라는 미지근한 말 대신 '기후 위기'라고 하는게 적절하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죽을때 까지 한 50년 동안?에는 동식물이 대멸종하지 않을 것 같고, 애를 낳을 생각이 없어서 훗날 내 자식이 벌레나 옥수수나 콧물죽만 먹고 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없다. 그래도 지금 살면서 가게에서 페트병 생수가 박스로 쌓여서 팔리거나, 플라스틱 빨대나 봉투를 어쩔수 없이 쓰게되는 상황이 오면 마음이 찔린다. 그건 아마도 내가 패션업계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업계는 지구를 통틀어 2위로 가장 환경을 위해하는 산업이다. (1위는 석유 산업).
그래서 내가 살 집을 짓는다면, 공해를 덜 배출하는 집으로 설계하고 싶다. 일반집들 보다 10분의 1만 에너지를 쓰고 산다면, 50년 후에는 꽤 많은 양의 탄소를 땅밑에 가둬두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친환경집'이라는건 좀 가식적인것 같아서 못 말하겠다. 지속가능할랑말랑한 집이라고 해야하나. 진짜 쌩 리얼 무공해 집이 되려면 오두막을 짓고 똥을 퇴비로... (이하생략) 해야하니까.
‘친환경’이란 말은 한국에서도 오래전부터 하도 들어서 귀딱지가 앉은 느낌이 난다. 그냥 아무 제품에나 ‘친환경’ 딱지를 붙이고 초록색 이파리를 포장지 디자인에 넣고 하는게 미국에서 ‘써스테이너블’이라는 딱지를 여기저기 붙이고 자시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코프렌들리’, ‘오가닉’도 마찬가지다. 자연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다 물건을 팔아먹기 위한 마케팅 용어가 되었고, ‘지속가능성’의 가장 근본적인 핵심과 반대된다. 에코백도 전혀 에코하지 않다. 에코백을 디자인별로 20개씩 집에 쌓아두거나 1년에 한개씩 사서 버리고 하는건 환경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짓거리다. 장 보러 갈때 그냥 원래 갖고있던 베낭을 매고 가는게 제일 실용적이다. 정말 쓰레기산과 플라스틱섬 같은게 없는 온전한 환경을 미래 인간들에게 물려주려면 이렇게 미친듯이 물건을 찍어내는걸 멈춰야한다. 그래서 물건을 팔기 위해 ‘지속가능성’혹은 ‘친환경’스티커를 붙이는건 정말 웃기는 모순이다. 자연에게 가장 좋은건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고, 그러려면 제품을 한 개 사서 최대한 오래 잘 써야한다. 산업혁명 초창기에는 정말 다들 물건을 열심히 견고하게 만들었단다. 근데 그러다보니 어느정도 팔리고나자 아무도 새 제품을 안 사게 되어서 회사들이 망해갔다. 도쿄 분카패션콜리지(문화복장학원)에 다닐적에도, 맨즈 테일러링 선생님이 쓰시는 반질반질한 나무 손잡이의 육중한 스테인레스 다리미가 너무 좋아보였는데, 단종되었다고 해서 아쉬웠었다. 알고보니 다리미를 너무 튼튼하게 만들어버려서 10년이 지나도 고장나지 않아서 새 제품이 안 팔리고 회사가 없어졌단다. 그 얘기를 하며 선생님이 씁쓸하게 웃으시던게 기억난다. 그래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해야하는 지금 세상에서는 다들 일부러 적당히 쓰고나면 망가지도록 물건을 디자인한다. ‘적당히 쓰면 망가지는 제품’은 19세기 전구에서 시작되서 21세기 스마트폰에 이르렀다. 스마트폰의 수명은 빠르면 1년, 길어야 3년이다.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 하드웨어가 멀쩡해도 일정시간이 지나면 애플에서 OS를 업데이트 해주지 않아서 앱을 깔수가 없고 쓸모 없어져서 결국 새 아이폰을 사야한다. 심지어 OS 업데이트를 통해 오래된 모델의 베터리 수명을 줄여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공격적으로 물건을 사고 쓰고 버릴수 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아주 커다랗고 아주 중요한 물건인데 수동적으로 오래오래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집. 에너지를 덜 쓰는 집이다. 대표적으로 패시브하우스가 있다.
패시브-하다, passive-
형용사
수동적(受動的) 또는 소극적인 특성이 있다.
패시브 하우스는, 추우면 히터 팡팡 틀고 더우면 에어컨 팡팡 트는,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쓰는 지금 집과 반대되는 "소극적"인 집이다. 바닥부터 지붕까지 꽁꽁 싸매서 지어서, 최대한 안에 있는 쾌적한 온도(20~25도)를 유지함으로 인해 에너지를 최대한 덜 쓰는게 이 건축 방식의 목표다. 보통 집의 10분의 1만 쓰고, 후기를 찾아보면 한달 전기세가 10불내외로 나온다고 한다. (지금 우리집은 한달에 100불정도 나온다. 엉엉.) 태양열/태양광 시스템까지 갖추면 거의 도시가스/전기를 사다 쓰지 않아도 된다. 찾아보면 정보가 많이 나오지만, 의외로 주변사람들은 모른다. 내 주변의 미국에서 나고자란 미국인 친구들도, 캐나다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도 '패시브 하우스'를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아마 집을 짓겠다고 생각하고 알아본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는 듯. (사실 근미래에 땅을 사서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
패시브하우스는 80~90년대에 독일과 북미에서 처음 개념과 실험주택을 만들고 상용화 시켜서, 표준 기술, 창호, 단열재 재료가 대부분 유럽/북미산이다. 그래서 내가 만약에 패시브 하우스를 짓는다면 여기 북미에서 짓는게 제일 좋을 것이다. 집 짓는 과정에서도 최대한 근처의 로컬 재료를 가져다 쓰는게 효율성도 좋고 운반시 탄소배출량도 적을테니까. 저 두꺼운 벽체를 모양대로 하나하나 만드는게 오래걸려서 현장 건축보단 프리패브로 공장에서 만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찾아본 실제 패시브 하우스 사례 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바로 이 집이다. 메인Maine주에 지어진 '스텔라 하우스'.
사진들이 꿈속의 장면처럼 예뻐보이는건 바닥에 있는 저 미러볼이 한 몫하고 있긴 하지만, 단순한데 아늑한 디자인, 실 평수는 작은 편인데 넓게 빠진 공간 설계와 아낌없이 뚫은 큰 창문이 좋다. 건축주는 원래 뉴욕 브루클린에 살던 시드니 벵시몽이라는 프랑스인 사진작가인데, 메인주에 놀러갔다가 자연환경이 너무 좋아서 거기에 집을 짓기로 맘먹었다고 한다. (뉴욕주에서 메인주까지는 비행기를 타거나 차로 10시간 넘게 운전해야된다.) 메인주는 추워서 그런지 패시브하우스 건설업체가 많다. 집 이름은 당시 키우던 늙은 개 이름 스텔라에서 따왔다고 한다. 슬프게도 집이 다 지어지기 전에 스텔라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서 이 집에서 같이 살수는 없었지만, 집은 이름을 물려받았다. 사진작가인 건축주가 평소 친하게 지낸 예술 업계 지인들의 도움으로 예쁜 가구와 조명, 소품으로 채워진 이 집은, 시드니 본인이 사진 작가인만큼 예쁘게 사진을 찍어서 아크데일리 등 여기저기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인터뷰에 보면 건축주가 혼자 살려고 지었기 때문에 방은 안방과 손님방 두개뿐. 그런데 최근 별그램에 보니 아기방을 꾸미고 있었다! 판데믹 베이비 인건가... 스텔라 하우스를 만든 건축소 데모 아키텍츠는 현재 뉴욕의 북쪽 허드슨벨리 근처에 더 큰 규모의 패시브하우스를 짓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건축 진행 상황이 조금 더뎌진 모양이다. 데모 아키텍츠는 내가 주시하는 건축소 중 하나가 되었다.
스텔라 하우스: https://www.instagram.com/stellahouse_maine/
데모 아키텍츠: https://www.instagram.com/demo_architects/
꼭 패시브하우스 방식이 아니더라해도 보온보냉이 잘되게 집을 짓는 방법이 또 있다.
바로 땅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다! 두꺼운 흙/땅이 네추럴 단열재 역할을 해준다.
사실 둘 다 완전히 두더지굴 마냥 어두컴컴하고 습한 땅속 집은 아니다. 둘 다 언덕면을 활용해서 부분적으로 땅에 묻혀있고, 중정을 파내든, 언덕 낮은면을 향하든 해서 겁나 큰 통창이 뻥! 뚫려있어서 햇빛이 쏟아진다. 나는 아직 땅을 사려면 멀어서 어떤 대지에 지을지 알수 없지만, 만약 언덕에 있는 대지를 구입하게 된다면 이렇게 짓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남푠은 여름에 시원한 집을 갖고싶어해서 땅속의 네추럴 냉장고 효과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게다가 팬트리 같은 저장창고는 옛날부터 서늘한 동굴이나 땅 속에 만들어왔다.
패시브하우스든 땅속 집이든 공기가 막혀있기 때문에 환기가 중요해서 환기 시스템을 설치해야되는데, 어차피 나는 창문 여는걸 까먹어도, 겨울이라 열 수 없어도 집이 알아서 환기가 잘되는 집으로 짓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존 생각과 잘 맞는다. 여름이면 몰라도 겨울에 눈폭풍이 왔는데 환기를 하자고 창문을 열수는 없으니까.
난 이 글에서 지금껏 기후위기 시점에서 에너지를 덜 쓰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지만, 사실 패시브하우스나 냉난방 단열이야기를 찾아보면 99%는 돈 이야기다. 어쩔수 없이 당연한 이야기다. 예산이 모든걸 좌지우지 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지속가능성에 관심이 없다. 한국에서 패시브하우스를 짓는건 난방비를 아끼면서 쾌적하게 살기 위해서다. 가성비를 따져서 조금이라도 비싸다고 느껴지면 짓지 않는다. 15년정도 지나야 절약한 난방비로 뽕을 뽑을수 있다는데, 그 15년을 기다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패시브 하우스는 한국에서는 일반집 시공비보다 15% 정도 비싸게 든다고 하고, 북미에선 5-10% 정도 더 비싸고, 종주국(?)인 독일에서는 대량생산화 되어서 일반집 시공비와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근데 내가 아디다스로 이직해서 독일 본사가 있는 헤르초게나우라흐로 이사 가지 않는한 독일에서 살 일은 없다.) 사실 집을 짓는 비용에 대한 이야기는 가장 현실적이고 복잡다양한 문제라 따로 떼어서 쓸 예정이다. 처음부터 에너지 절약형 집을 지을 생각으로 모을 금액을 정해야한다.
Dear my architect:
패시브 하우스 혹은 그와 비슷한 에너지 효율이 좋은, 지속가능한 집!
지붕 위에 태양광 패널로 전기를 생산하는 집!
PS.
항상 캣 휠을 보면서 생각한건데, 캣휠로 전기생산을 해서 베터리에 저장할수는 없을까? 루카스가 잘 돌릴것 같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