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쇼폴리 Aug 20. 2023

루카스

나라잃음 같은 잃음

'슬픔'같은 단순한 말로는 표현할길이 없어서 '나라잃음'이라고 써봤다. 점점 굳어가는 뇌와 멈춰있는 한국어 실력과 멍해있는 지금 상태에서 생각해낸 최선이다. 루카스를 잃은건 그만큼 고통스럽고 어이없고 정말 물리적으로 심장이 눈알이 목구멍이 손끝 발끝이 아팠다. 이게 처음은 아니다. 그래서 견뎌낼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였다. 경기도 오산 육산 칠산 팔백억만산이었다. 


첫번째 비교 경험은, 아직 반려동물이 아니라 애완동물이라는 단어를 쓸 시절, 해피를 잃은 경험이다. 90년대 한국의 강아지들 절반은 이름이 해피 아니면 밍키였고, 종은 요크셔테리어 아니면 말티즈였다. 우리집 강아지도 예외없이 요크셔테리어 해피였다. 나의 8살 겨울, 승숙이 어느날 저녁에 큰 오버사이즈 울 코트를 입고 밖에 갑자기 어딘가 다녀오겠다고 했다. 도대체 왜 엄마가 오밤중에 어딜 혼자 갔다오는 것인가. 궁금하고 답답한게 슬슬 한계에 다다랐을때 그녀가 돌아왔다. 뭐 붕어빵이 든 비닐봉지 조차 없이 빈 손이었다. 근데 승숙은 현관에서 들어오지 않고 한껏 상기된 얼굴로 나한테 이리와서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라했다. 뭐지 하고 그 에이포용지만한 큰 겉 주머니에 손을 넣은 순간, 따뜻하고 동글동글한 정수리가 만져졌다. 아마도 1-2개월 밖에 안된, 해피였다. 너무 작에서 밖에서 봤을때 코트 주머니에 든게 티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집 첫 강아지였던 해피는 당시 해줄수 있는 모든걸 해받고, 4식구의 사랑을 듬뿍 받고, 외출후 우리가 돌아오면 반가워서 발라당 뒤집어져서 오줌을 질질 쌌고, 가끔은 몰래 쓰레기통을 뒤져대서 엄마한테 쓰레빠로 많이 얻어맞기도 했지만, 후에 캐나다까지 같이 이민을 갔고, 넓은 잔디밭과 눈밭을 뛰놀고, 바다 처럼 넓은 호수에도 갔고, 그리고 내가 11학년 때 쯤, 갖고 있던 지병이 점점 심해져서 동물병원에 입원, 몇 천 불을 써가며 살려내려고 했지만 결국 댕댕별로 떠났다. 그때 승숙은 40대 후반인가 50대에 들었을까, 내가 11학년이었으니까 몇 살이지 아무튼. 나도 이틀이나 학교도 안가고 집에서 울면서 세상 잃은것 처럼 침울하게 보냈지만, 승숙은 더 심각했다. 동물병원에서 사망판단과 장례수속을 밟고 엉엉 울면서 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승숙이 눈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 그대로 핸들을 훽 돌려서 영화에서 나올것 같은 유턴을 했다. 뭐야 엄마 어디가? 도착한 곳은 페츠마트. 그대로 승숙은 시베리안 허스키를 새로 입양했다. 나라도 말렸어야 했는데, 우리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에너지 넘치는 큰 강아지는 건강하게 더 오래 살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던걸까. 그 허스키는 물론 굉장히 귀엽고 건강했다. 건강하다 못해 우리가 끌려다닐 판이었다. 이렇게 망가진 정신상태와 허물어진 몸상태로 우리가 감당할수 있는 댕댕이가 절대 아니었다. 결국 두달만엔가, 승숙이 수소문을 해서 거의 무료로 어떤 젋은 청년에게 새로 입양을 보냈었다. 멘탈적으로든 금전적으로든 엉망진창으로 거하게 손해가 갔다. 

그 후에 내가 뉴욕에서 독립하고, 퀸즈의 어떤 가정집에서 다 큰 3살 상태로 데려온 두툼한 체형의 벵갈믹스 고양이 루카스는 나의 20대 중후반 뉴욕에서의 대학원, 회사원생 삶을 쭉 같이해주고, 결혼해도 똑같은 결혼생활에서 우리 둘의 사랑을 듬뿍듬뿍 받는 털애기 포지션을 5년 동안 담당해준, 그야말로 우리의 애기였다. 


아 진짜 미치겠네. 4개월이나 되었으니까 이제 좀 글로 쓸수 있을까 싶었는데 여전히 무리다. 또 눈물콧물이 제어가 안된다. 루카스가 급성 폐암으로 죽기 한달 전 부터, 죽고 난 그 후도, 너무 울어서 아예 휴지를 버리기 쉬운 뚜껑 없는 휴지통을 옆에 뒀다. 젖은 휴지가 쓰레기통에 차오르는 속도가 엄청났다. 휴지는 진작에 가장 부드러운 챠밍 두루마리휴지를 쓴지 오래다. 안그러면 코가 다 헐어버리니까. 인간이 이렇게까지 계속해서 울수 있는가 스스로 신기할 정도였다. 아마 인생에서 가장 운 시기가 아닐까. 분카 1학년때 뽁이와 헤어졌을때도 많이 울긴 했었는데 그래도 그땐 그냥 죽을만큼 외로워서 울었던거지 뽁이는 여전히 잘 살아있으니까 다시 만나려면 만날수있고 또 학교가 미친듯이 바빴으니까 더 미치게 바쁠수 있게 이거저거 해대서 이겨냈었고, 그리고 결국은 다시 만나서 결혼해서 지금 같이 잘 살고있으니까 괜찮은데, 루카스는, 루카스는 어떻게 할수가 없다. 평생 반려동물 없이 살아왔던 뽁이에게도 루카스는 첫 고양이였다.  그리고 10년 넘게 알아온 그에게서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우리는 그냥, 자식 잃은 부모였다. 실제 호칭도 루카스 엄마 루카스 아빠였으니까.


우리는 같이 울고 같이 위로해주면서 제정신으로 있을수 있게 부던히 노력했다. 저녁에는 같이 평소처럼 맛있는걸 해먹고, 단순하게 즐겁거나 재미있는걸 보려고 했다. 뭘 봤었더라. 한 주말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편을 다시 봤다. 마지막에 나쁜놈과 싸우다가, 나무인간 그루트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모두를 감싸 폭발로 보호해주고 산산분해가 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그루트의 절친인 너구리가 나무 조각 하나를 소중히 다시 심어서, 베이비 그루트로 다시 자라나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서 무심코 내가 말했다.


'루카스도 털을 다시 심어서 루카스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우리에겐 엄청 많은 루카스의 털이 남아있으니까. 근데 그 말을 듣고 뽁이가 다시 무너져내릴뻔 했다고 몇일 후에 말해줬을때는... 나도 마찬가지다. 사실 뭔가 약간, 루카스가 없는 세상에 살게된 이후부터는 뭔가, 강 건너에서 살고 있는 기분이다. 물론 재미있는 이야기나 일이 있으면 웃고 떠들고 하지만, 나의 한 켠은 강 건너에서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고있다. 루카스가 없는 세상. 다시 마블세계관으로 돌아가는데, 정말 그런 느낌이다. 루카스가 아직 있는 세상이, 평행우주가 존재해서, 내가 가끔 밤에 꿈으로 가서 건강한 루카스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몇 번 정도 만났는데, 한번은 내가 간식같은걸 줘서 루카스가 '평소처럼' 맛잇게 먹는 것이었다. 그래서 와 잘 먹네.. 근데.. 뭔가 미시감을 느꼈다. 내가 아는 루카스는,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루카스는 아파서 밥을 잘 못먹었었는데... 지금 루카스는 밥을 잘 먹네.. 아 이건 꿈이구나.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예상 할수 있듯이 잠에서 깨어나 또 휴지를 뜯고 얼굴에 나있는 고장난 수도꼭지를 닦고 휴지통을 채웠다. 


루카스를 보내고나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 방 구조를 완전히 바꿨다. 캣타워는 루카스의 사진들과 인형들로 빼곡히 장식하고, 유골함도 유리커버안에 사진과 털인형과 함께 예쁘게 꾸며놓았다. 살아있을적 물건은 전부 정리해서 보이지않게 보관했다. 우리가 같이 찍은 사진들도 많이 인화해서 포토월로 가득히 꾸며놓았다. 해피가 떠났을때, 구석에 해피와 비슷한 크기의 가방이나 옷같은게 떨어져있으면 모조리 해피로 보이는, 그래서 가슴이 반짝 뛰었다가 그게 해피가 아니라는걸 깨닫고 철렁 내려앉는걸 몇 달 동안 계속해서 반복하는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잘 알고있어서, 최대한 그런 물건이 방바닥이나 침대위에 있지 않도록 정리하고 살았다. 그래서 확실하게 우리 곁을 떠났지만, 추억할수 있는 코너가 있어서 기쁜일만 기억할수 있도록. 지금 우리의 방 모습은 내가 지금껏 10년간 살아온 중에서 가장 깔끔한 상태다. 누가 보면 정말 팻로스증후군을 완벽히 이겨낼수 있을 것 처럼 잘 정리해놓았는데... 그냥 우리가 그만큼 고통스러워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너질거 같아서 그런것 뿐이다. 루카스의 말랑말랑한 뱃살을 부르르르 하고 실컷 주물러댄 다음에 서로를 쳐다보며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다 있을꼬! 하면서 매일매일 외쳤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과거형이 되었다. 과거형이 이렇게 슬픈건지 몰랐다. 정말 사무치게 몰랐다. 시발 젠장할 반려동물이 처음인것도 아닌데, 알았는데도 몰랐다. 루카스는 정말 착한 고양이었어, 정말 귀여운 고양이었어. 행복하게 10년간 우리랑 잘 살았어. 하고 주문 처럼 외우면서. 마치 그 주문이 우리 멘탈을 지켜줄 것 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