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아파트 화단에 피었던 벚꽃, 살구꽃, 그리고 이팝나무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짓던 내가 변했다.
하얀 꽃잎이 떨어질 때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봐 줄만 했고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사정이 달라졌다.
주차장에 세워 둔 차량으로 사그라든 봄의 찌꺼기와 잔해들이 중력으로 테러를 가했다.
우리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이 없다.
재개발을 앞둔 저층 아파트단지로 한 밤중에는 주차를 위해 몇 바퀴를 돌기도 한다.
반면에 제법 수령이 오래되고 몸집이 큰 나무들이 많아서 기특한 점도 있다.
처음 아파트 입구를 들어서는 지인들은 푸른 녹음에 연신 감탄을 한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를 자연스럽게 둘러싼 나무들이 풍기는 편안한 친근함이 좋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4월에 거실 베란다를 열면 벚꽃과 생강나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특히 딸의 방이 더 뷰맛집 이라며 자랑을 한다.
만개한 하얀 벚꽃과 푸른 하늘이 창문 프레임 가득 담긴다며 좋아했다.
가끔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멍 때리던 딸의 모습이 이해가 갔다.
그렇게 4월의 봄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뷰와 멋짐을 선물했었다.
꽃들이 피고 지는 동안 까칠한 봄날씨가 이어졌다.
한낮엔 더웠다가 밤엔 갑자기 추웠다가 비바람으로 꽃잎들을 흔들어대기도 했다.
지난 벚꽃이 한 창일 때 일본으로 출장을 떠났던 아들의 귀국 날짜가 내일로 다가왔다.
덩달아 엄마의 마음도 분주해지는 아침이 되었다.
나 말고도 초보운전자인 아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말 없이 주차된 차량이 있었다.
아들이 돌아오면 곧 운전대를 잡을 테니 말이다.
“오늘은 아들을 대신해서 세차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장도 보고.. 참, 워셔액도 샤야겠다”
며칠 전 차 안에서 워셔액을 보충하라는 차량 음성안내도 생각나서 맘을 먹었다.
차 키를 들고 현관 서랍에서 장바구니도 챙겨 나왔다.
3층 계단을 내려와 화단을 지나고 아파트 뒤쪽 주차장으로 향했다.
리모컨 키를 먼저 누르고 주차된 차와의 거리를 점점 좁혀갔다. 5m 전, 3m 전...
분명 우리 차 곁으로 가는데 다가갈수록 낯선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그때, 은색이었던 차량이 온통 노란 송홧가루에 뒤덮인 차체가 보였다.
가까이 가 보니 나무에서 말라 떨어진 갈색 꽃대와 꽃받침으로 엉망인 상태가 되어있었다.
뿐만 아니라 새들이 투척한 분비물도 얼룩처럼 말라 있었다.
조금 과장해서 하마터면 자동차 번호판을 확인할 뻔했다.
야속해서 올려다본 이팝나무는 마른 꽃잎들을 위태롭게 매단 체 나를 비웃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가 차의 시동을 걸었다.
급한 대로 와이퍼 레버를 당겨 성난 워셔액을 뿜어댔다.
앞유리창의 시야를 겨우 확보하고서야 차를 움직여 근처 주유소로 향했다.
먼저 5만 원 주유를 하고서 5천 원 자동세차를 하기로 했다.
다행히 오전이라 세차 대기줄은 길지 않았다.
바로 앞 차가 간단한 예비세차를 마치고 자동세차 터널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 차례인 내 차를 향해 세차직원이 수신호를 했다.
차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세차직원은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어딘가 듬직해 보였다.
매의 눈으로 우리 차를 살피던 직원은 결심한 듯 고압 분사기로 예비세차를 시작했다.
이만하면 끝인가 싶었는데 또다시 분사기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차 안에서 오염물질이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직관하던 나는 묘한 쾌감까지 느꼈다.
거의 앞 차량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과 노력으로 예비세차가 겨우 마무리되었다.
AI 문명으로 불안한 직업군들이 예상되는 요즘에 대체불가한 블루칼라의 숙련된 기술을 보았다.
꼼꼼했던 예비세차 덕분에 완성도 높은 차량 세차로 찝찝했던 행복이 복원되었다.
고압 분사기의 방아쇠를 거침없이 당기던 그 직원의 세심한 마음이 일등공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