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쌈과 딸의 마음

by 초록맘

딸은 아빠를 쏙 빼닮았다.

얼굴뿐만 아니라 식성도 성격도 비슷했다.

어쩌다 딸과의 교집합 코드를 발견하면 숨은 그림을 찾은 듯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월남쌈이다.




우리 집에서 아들을 제외하고는 체중계 숫자에 민감한 편이다.

특히 딸은 매일 아침 체중계와 눈을 맞추며 이렇게 소리친다.

“엄마! 오늘은 몸무게가 얼마인지 아세요?”

별로 안 궁금하지만 딸의 질문에 의례적인 반응은 필수다.

“와~~ 대박!, 그래?, 어쩌냐..” 등의 짧은 감탄사가 전부라도 말이다.


어느 날 아침, 딸의 몸무게를 듣고 가벼운 걱정의 리엑션이 오갔다.

올라간 눈금 때문에 나름 비장한 식단을 각오하는 딸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문득 엄마는 딸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우리 점심에 월남쌈 만들어 먹을까?”

“오~~ 좋아요!!”

월남쌈의 신선한 재료들은 다이어트 중인 모녀에게 훌륭한 공통 메뉴가 되어 주었다.



딸이 월남쌈을 처음 접한 시기는 초등학생 무렵이었다.

처음 만들어 준 월남쌈을 거부감 없이 돌돌 말아 입으로 가져가던 귀여운 딸이었다.

월남쌈 소스(피시소스)를 싫어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완전 딸에게 취향저격이었나 보다.

놀이처럼 식탁 위에서 월남쌈을 만들어 먹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 후로 우리 모녀는 완전 월남쌈 킬러가 되었다.


그렇게 월남쌈으로 대동단결한 딸과 함께 집 근처 대형마트를 찾았다.

지하주차장에서 무빙워크를 타고 곧장 신선식품 코너로 향했다.

처음엔 집에 있는 재료를 뺀 나머지 재료만 구입하겠다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알뜰구매를 계획하지만 마트를 나서는 장바구니는 예상보다 무겁고 뚱뚱해지기 일쑤였다.

딸과 함께 장을 보면 특히 과자코너를 지나치기가 쉽지 않다.

다이어트의 의지를 허무는 견물생심(見物生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엄마! E마트에는 없는 희귀템 과자가 L마트에는 있네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카트에 담긴 딸의 기호식품들도 함께 집으로 옮겨왔다.




당당히 구입목록에 있던 월남쌈의 재료들은 딸과 역할 분담으로 접시에 차려진다.

가열해야 하는 몇 가지 재료 외에는 모두 딸의 몫으로 미루어도 불만이 없다.

월남쌈 메뉴는 80% 이상이 신선한 원재료 상태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잡채용 돼지고기만 양념에 재었다가 볶아 내고 계란 지단은 국민요리처럼 쉽고 간단하다.

나머지 파프리카, 오이, 양파, 깻잎, 양배추, 당근, 맛살 등은 도마 위에서 길쭉하게 자르면 그만이다.


재료들은 먹어본 자의 여유와 방식대로 재빠르게 식탁 위에 자리를 잡았다.

다채로운 색감이 눈 맛을 당기고 라이스페이퍼 속에 담긴 재료와 상큼 소스는 입맛을 잡았다.

여러 가지 재료 풍년에 한 두 개는 빼먹고 안 넣는 경우도 흔한 실수다.

“엄마! 이거 빠트렸어요!”

“그래도 괜찮아..”

“냉장고에 아삭이 고추도 있는데 썰어 넣어 볼까?”

월남쌈의 매력은 얼마든지 어떤 재료든지 더하고 뺄 수 있는 융통성이 좋은 메뉴다.


식탁에서 재료들은 라이스페이퍼에 돌돌 말렸고 반대로 딸과의 대화는 술술 풀리는 시간이었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던 딸이 꺼낸 에피소드는 이랬다.

한 학기 동안 학교 근처 원룸에 살았을 때 베프를 한 명 초대했다고 한다.

워낙 입이 짧고 깡 마른 친구를 위해 배달음식이 아닌 월남쌈을 만들어 준 성공담이었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친구가 딸이 만든 월남쌈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는 뿌듯한 후기였다.

그 당시 월남쌈 맛의 치트키 재료는 깻잎, 파프리카, 양파, 계란지단, 맛살 5개였다며 손에 꼽았다.




딸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기특해서 웃음이 났다.

입 짧은 친구를 생각한 딸의 우정이 읽혀서...

얇은 지갑으로 실패 없는 재료를 골라야 했을 어린 마음이 보여서 말이다.

투명한 라이스페이퍼에 담기는 재료들처럼 딸의 알록달록한 이야기가 엄마 가슴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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