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윤중로 벚꽃길에서...

by 초록맘

남편에게 듣고 싶은 말이 생겼다.

“사랑해” 보다 어쩌면 더 설레고 끌리는 말 일 것 같다.

“당신, 오늘 하루 어땠어?”라는 기분 좋은 대화의 물꼬 같은 말이다.




벚꽃의 물결이 계절을 통과하는 어느 날이었다.

비가 내린다던 틀린 일기예보가 다행이고 반갑던 4월 첫 주 토요일이었다.

5호선 여의나루역 출구를 나오자 온통 머리 위를 덮은 벚꽃 지붕에 깜짝 놀랐다.

화사한 여의도 윤중로 벚꽃길을 남편과 둘이 걸었다.

집에서 가까운 공원의 벚꽃도 괜찮겠다 싶었지만 남편은 거듭 여의도를 말했다.

남편이 주장한 이곳에 오길 참 잘했구나 생각했다.


여의도는 벚꽃축제의 대명사로 충분히 명성을 누릴 만한 곳이었다.

도로 양옆의 벚나무 행렬과 손에 닿을 듯 펼쳐진 풍성한 벚꽃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예전과 다르게 노점상이 사라진 깨끗한 보행환경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여의나루역을 출발해서 국회의사당 뒤편 여의서로 구간까지 벚꽃의 무아지경에 빠져 들었다.

샛강 생태공원 방향은 몇 년 전에 남편과 자전거로 오갔던 낯익은 장소라서 반갑게 걸었다.

여의도 공원이 보일 즈음에는 특별한 추억이 생각나서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자기야! 그거 알아?”

“뭐?”(남편)

“큰애 낳던 해에 여의도에서 태백 시할아버님과 둘이서 벚꽃구경 했었거든

말도 안 되는 행동이었지...

그때는 어려서 뭘 몰랐었나 봐...”

“......”(남편)




첫 아이를 출산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던 28년 전 이야기였다.

3월에 낳은 큰아이는 시댁에서도 반가운 첫 손주였다.

강원도에 사시는 시조부님께서는 첫 증손자를 보고 싶어 조급하게 서울행 기차를 타셨다.

그 때문에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던 나는 갓난아이를 데리고 신혼집으로 차를 몰았다.

시조부님은 90이 넘으셨지만 증손자의 이름도 직접 작명하실 정도로 학식과 애정이 남 다르셨다.


시조부님이 서울에 며칠 머무르시는 동안 4월의 벚꽃은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어렵게 올라오신 시조부님을 위해 서울 구경이라도 시켜 드려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했었다.

차를 몰고 도착한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길을 시조부님과 손잡고 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90이 넘은 시조부님과 20대의 어린 손주며느리의 철없고 엉뚱 발랄한 외출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과하게 역할에 충실했고 몰입하지 않았나 싶어서 어이없는 웃음이 난다.




이런저런 추억 이야기에도 앞만 보고 걸으며 조용히 듣기만 하는 남편이었다.

벚꽃 감성이 폭발한 나의 대화에 리액션은커녕 남편의 반응은 미지근하기만 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남편은 한쪽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아내의 이야기에 최소한의 반응은 있었지만 공감이 섞인 소통은 없었다.

남편의 관심 안테나는 오직 미국과 이란의 긴박한 휴전상황을 예측하는 유튜브 소식에 있었다.

벚꽃에 감탄하거나 아내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드는 분명 아니었다.


요즘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남편은 세계정세에 민감해 있다.

자산의 등락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시장과 쏟아지는 뉴스에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집중력이 흐려진 남편과의 대화에 서운함이 고개를 들었다.

잠자리에서도, 아침 식탁에서도, 오늘처럼 산책길에서 조차도 휴대폰은 장애물 같았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버린 내 마음을 위로하듯이 떨어지는 벚꽃 잎이 춤을 췄다.

퇴근 후에 남편과 이런 오프라인 대화가 그리워진다.

“당신, 오늘 하루 어땠어?”(남편)

“글세 어땠냐면 말이야~~~^^” (나)


4월 여의도 윤중로 벚꽃길에서 남편과 나는 서로 딴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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