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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맘 Aug 12. 2024

누구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띠리릭”

카운터 앞 바코드 리더기에 휴대폰을 가까이에 대자 출석 확인음이 울렸다.

큐브를 쌓아놓은 것 같은 네모난 사물함과 열쇠박스 사이로 걸음을 옮긴다.

집 근처 구립 문화체육센터의 헬스장을 이용한 지도 오늘로 벌써 1년이 넘었다.




방문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동작순서에 상관없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헬스는 나와 잘 맞았다.

구립 문화체육센터 프로그램은 헬스, 수영 등 스포츠와 인문학 강좌까지 이용하는 연령층이 매우 다양하다.

평일 오전시간에는 연세가 있으신 남녀 어르신들이 헬스기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간혹 성난 근육의 젊은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머리가 희끗하신 시니어분들이 운동에 진심을 보였다.

 


터주대감이나 장기회원인 어르신들끼리는 중간중간 스몰토크를 즐기시며 호탕한 웃음소리를 감추지 않으셨다.

대화소리에 조금 불편할 때도 있지만 어르신들 특유의 웃음코드 때문에 혼자 키득키득 웃기도 했었다.

이 또한 다양성이고 인간미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건강 등 저마다의 목적으로 만나는 헬스장은 때로는 운동뿐 아니라 숨어있는 '인간관계의 룰'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날도 출석 바코드를 경쾌하게 찍은 날이었다.

탈의실에서 환복을 하고 텀블러와 손수건을 챙겨서 러닝머신에 올라갔다.

중간 속도의 레벨로 30분 정도의 걷기를 하고 나면 손수건이 필요할 정도의 땀을 닦는다.



다음으로 향하는 타깃은 하체근력운동 기구가 있는 곳이다.

레그 익스텐션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데 벤치프레스(상체근력기)를 하고 있는 중년 남성분의 표정이 자꾸 신경 쓰였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바로 옆 스쿼트랙(하체근력기)을 하시던 아주머니도 그 남성분에게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벤치프레스는 무거운 중량을 올려가며 남자분들이 즐겨하는 상체근력강화 기구다.

그 남성분은 중량도 없이 빈 바만 올리면서도 마치 표정은 백 킬로이상의 무게를 들어 올리는 얼굴표정이었다.

곁눈질하는 우리로서는 보기 드문 낯선 모습이었다.

결국 호기심 대마왕인 아주머니는 간섭본능을 발동하셨다.


“아저씨, 그게 그렇게 힘들어요?”

“그냥은 나도 하겠구먼”


아주머니가 웃자고 던진 말에 그 남자분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한마디만 했다.

“어깨 아파 봤어요?”


아마도 재활치료의 목적으로 안간힘을 쓰고 계셨나 보다.

누구든 궁금할 수 있지만 아무나 간섭하지 않는 법인데 아주머니의 얼굴에 후회가 막심해 보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나는 조용히 눈길을 피했 오래전 기억 속의  비슷한 한 장면과 다시 마주했다.


임신초기의 직장동료인 K언니와 퇴근길 지하철 승강장 앞이었다.

출입문이 열리자 입덧으로 힘들었던 K언니는 자연스럽게 노약자석에 앉았다.

정류장이 늘어날수록 탑승객들로 좁아지는 전동차 내부에서 불편한 시선이 K언니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어르신이 탑승하자 기다렸다는 듯 정의의 사도처럼 한 여자분이 K언니에게 쏘아붙였다.

“좀 일어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K언니는 결국 임신사실을 밝히고서야 노약자석에 앉은 오해의 눈초리를 피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고 임산부 배려석이 시행된 것으로 기억된다.



어설픈 정의감을 앞세워 간섭하거나 섣부른 호기심으로 남을 저울질 할 때는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상대의 입장을 알 수 없는 낯선 상황에서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먼저 했으면 좋겠다.



체육센터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며 운전대를 잡고 가는데 옆차선에 있던 차량이 앞으로 끼어들었다.

“바쁜 이유가 있겠지” 하며 조용히 양보한 내가 오히려 기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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