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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롬 May 03. 2021

글이 안 써질 때는 '글이 안써진다'고 쓰기

'글 도피증'에서 벗어나는 방법



인생엔 몇 가지 아이러니가 있다. 내 삶에 가장 강하게 적용된 아이러니는 "너무 잘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도전조차 못 하게 된다"는 아이러니였다. 완벽하게 해 내고 싶은 나머지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다. 글쓰기가 그랬다.


지인 두 명과 함께 작은 글쓰기 모임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글의 첫 주제는 "나는 왜 글쓰기가 두려운가"였다. 그때도 비슷한 답을 내놨었다. 


하기 싫은 것 중에서도 두 번째 부류에 속하는 것들이 늘 내 속을 썩인다. 이런 경우는 너무 ‘잘’하고 싶어서 오히려 하기 싫어진 경우다.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것들. 가까이 가고 싶은데 나랑은 멀어 보이는 것들. 그리고 이것들의 공통점은 ‘쉽게’ 잘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글쓰기다. 

 · 2018년 10월 11일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글쓰기가 어렵다. 물론! 저 때만큼 어렵진 않다. 저 때는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 내 글을 나와 친한 이들에게 일부만 공개하는데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글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그때 내가 글쓰기가 두려웠던 조금 더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글은 글쓴이가 가진 생각의 깊이를 드러낸다. 심지어 어떤 글은 글 한편에 ‘한 사람’이 담긴다. 독자들은 그 글을 읽고 글쓴이의 논리력, 사고력, 표현력을 느끼는 것을 넘어 일생과, 가치관과, 성격과, 믿음과, 취향을 짐작한다. 대학시절을 거치면서 나는 글을 써서 남에게 보이는 일이 두려웠다. 내가 쓰게 될 글에서 내 깊이가 탄로날까봐 불안했다. 내 자신이 아직 얕고, 좁고, 가볍다는 것을 알기에 글에 ‘나’라는 사람이 비춰지는 게 싫었다. 나는 아직 설익은 사람이니까, 조금 더 성숙해지면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때도 많았다. 두려움 끝에 결국 내가 택하는 건 글에 드러날 나를 감추는 것이었다.

 · 2018년 10월 11일


해당 부분을 읽고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의 차이를 찾았다. 지금도 '글쓰기를 제일 잘하고 싶다'는 열망은 여전하다. 그 열망이 가끔 쓰고자 하는 나를 뒤로 잡아채는 순간도 여전하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 부끄럽지 않다. 글쓰기 모임을 통해서 '얕은 내가 담긴 글'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글쓰기 모임은 당최 글을 쓰지 않는 언시생 둘을 위한 선배 기자의 특단의 조치였다. 물론 글에 담긴 후배들의 삶을 엿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글쓰기 모임의 첫 번째 존재이유는 글과 친해지게 하려는 선배의 노력이었으리라. 기자하고 싶다는 놈들이 매일 글 한 편도 안 쓴다는 잔소리에서 출발한 모임이었다. 


지각도 잦았고 글을 미제출한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글을 올렸다. 마음에 안들더라도 올렸다. 수년째 글쓰기로 먹고사는 기자 선배와 내 글이 비교돼서 초라해보일지라도 올렸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선배가 나를 동등한 작가로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그는 글쓰기 모임을 하는 동안 시험용 글처럼 글을 함부로 평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글 속에서 발견한 후배들의 인간성과 삶의 흔적을 찾아서 동감해주셨다. 모임을 하는 동안 우리는 스승과 제자이기보다는 각각의 에세이스트였다. 


글에 담기는 것은 곧 '나'니, 글을 존중받는 건 곧 그 안에 담긴 나도 받아들여진다는 뜻이었다. '나는 왜 글쓰기가 두려운가'로 시작했던 글쓰기를 이어가면서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줄어들었다.


일단 쓰는 게 중요하다. 근데 죽어도 안 써진다면, 왜 안써지는지에 대해 써 보자.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미숙하고, 한없이 부족해질지라도. 그게 글쓰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방금도 글이 안써져서 왜 안써지는지에 대해 쓰다가, 문득 2018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내가 생각나서 이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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