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무게감
졸업시즌
매년 이맘때쯤 초중고를 비롯하여 대학(원) 졸업식 시즌이 시작된다.
학교 앞 정문에는 축하 꽃다발을 판매하는 상인들로 그야말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며칠 전 대학원 졸업식 참석을 위해 휴가를 내고 졸업식 장으로 향했다.
정문 앞에서 꽃다발을 사서 식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에서 옛 추억이 묻어나온다.
건물 앞 조각상에서 가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졸업생들의 미소 속에 그 간의 학창 시절의 추억과 수고로움이 필름 속으로 투영된다.
식장에 들어서자 졸업가운을 입고 학위 수여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졸업생들이 눈에 들어오고 각자 그간의 여정을 복기하듯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학위수여식이 끝나고 교수님들과의 기념사진 촬영을 끝으로 모든 순서는 끝이 나고 졸업가운을 반납하기 전
마지막으로 건물 밖에서 아쉬운 추억을 사진에 담기 시작한다.
그렇게 스마트폰으로 몇 장의 추억을 담는 순간.
구도가 좋은 자리로 이동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 주위의 사진사들이 사진 촬영을 권한다.
장당 3만 원이라는 가격이 부담되는 게 현실이지만 기분 좋은 추억의 자리이기에 가격은 그저 오늘 하루만큼은 숫자에 불과하다.
폴라로이드 사진사
그 순간 폴라로이드 사진사가 다가와 즉석사진 2장에 5,000원의 가격을 제안했다.
40대 후반의 비전문가처럼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였다.
아마도 이런 일 자체가 처음이라는 것을 사진을 촬영하는 자세에서 우리는 대번 알아볼 수 있었다.
일단 2장을 찍기로 결정하고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포즈를 취했다.
사진사의 흔들리는 자세는 불안한 인상과 어정쩡한 구도로 인화되었다.
인화물은 그 누가 찍어도 그 보단 더 낫겠다는 정도의 수준으로 우리를 반겨주었고 사진 값을 받기가 부담스러운지 2장에 3,000원만 받겠다고 했으나 사진 상태가 수준 이하라서 가격을 지불할 수 없었고 단 1장을 더 요청하고 지불하겠다고 했다.
그는 사진 한 장을 더 찍어주기로 하고 우리는 다시 포즈를 취했다.
그때 폴라로이드 셔터를 "하나, 둘, 셋"이라는 약속 신호도 없이 눌러 버렸다.
그 사진에 대한 마지막 기대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초점 없는 사진 3장과 3,000원을 교환했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해서 코트를 벗는 순간 주머니에서 3장의 방치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그 순간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과연 폴라로이드 사진사의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40대 후반의 나이......
그 시간에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은 아르바이트는 아닐 것이다. 사업실패 또는 갑작스런 구조조정으로 무슨 일이든 간에 해야만 했을 것이고 그것이 생전 처음해 보지만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전문가가 사용하는 고가의 아날로그 카메라가 아닌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기쁜 날을 선택해야만 했을지 모른다.
생계를 위해 당장 무언가를 해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이른 새벽에 가족여행 때 구입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챙겨서 당장 한 끼의 식사를 걱정하는 가족을 위해 졸업식장 무리 틈에 끼여 수 많은 고민 끝에 한마디 건넸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행복해하는 가족의 사진이 아닌 당장 해결해야만 하는 현실의 무게감이었을 것이다.
그를 위해 만 원짜리 한 장 건네주지 못한 마음이 아려오기 시작한다. 오늘도 사진사는 졸업식장으로 무거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목에 건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위해.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감을 느끼며......
며칠 전 폴라로이드 사진사의 짧은 만남과 긴 여운은 그렇게 한 동안 멍하니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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