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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들의 예찬 Jan 31. 2016

 일진운(日辰運)

[일]의 [진]행 됨의 흐름과 상태

출근(出勤)

"나가서 부지런히......"?
"부지런히 나가서......"


매번 비스름하게 울리는 스마트폰 새벽 알람 소리에 양 미간은 찌푸려진 채 첫 눈이 어둠 속 작은 알람 불빛과 조우(漕遇)한다. 십 수년을 반복한 결과로 생긴 미간의 움푹 파인 깊은 골은 출근에 대한 나 자신의 징표(徵標)가 된 지 오래인 듯하다.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씻는 둥 마는 둥 세안과 양치를 하고 옷과 서류가방, Car key를 챙긴 후 쌔근쌔근 숨을 몰아쉬며 단잠에 빠져있는 아이들의 볼에 입맞춤을 하고 나면 내 유아시절이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그땐 아무 걱정 없이 살았었는데......

아이들이 전해준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현관문을 나서지만 차 키를 누름과 동시에 번쩍거리는 불빛이 방금 가지고 나온 온기를 냉혹한 현실로 변질시켜 다시 한번 나를 맞이한다. 이렇게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조금 늦게 일어나면 올림픽대로 한강 교차로에서 어김없이 막혀 아침 출근시간 정체 대열로 합류하기에 마음은 조급해진다. 그렇게 분당 수서 간 도로를 달리며 출근하는 1시간 동안 오늘 하루는 어떤 일들이 급작스럽게 다가올 것인지? 아니면 평온? 하게 지나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이 도로변 가로수처럼 스쳐 지나간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택시 안 슬로건(Slogan)이 섬광처럼 반짝이다 어느새 판교에 진입해 있는 상태에 다시 마음을 다잡곤 한다.


업무(業務)

"직장 같은 곳에서 맡아서 하는 일"?
"직장에서 상사의 지시에 의해 맡겨진 일"

사무실에 도착하니 조용한 분위기에 자리에 앉아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르면서 가방에서 필기구를 꺼내놓는다.


아직은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아 고요한 이 시간에 무엇인가 나만의 생산적이고 중요한 일들을 계획하고 짜임새 있게 쓰겠노라고, 이 고요한 시간의 주인공이 되겠노라고 다짐한지도 벌써 몇 개월이 훌쩍 지나가버렸다는 자책감이 몰려올 때쯤, 하나 둘 씩 들이닥치는 직원들의 구두 발자국 소리에 긴장감은 고조된다.

탕비실에  구비된 믹스커피와 원두커피 중 깔끔한 원두커피를 종이컵에 따르면서 나름 전투준비에 필요한 마음가짐과 자세를 가다듬는다.




신입사원, 대리 시절에 귀에 못이 박혔다 빠지면 다시 못질해댔던 소리 중 "적극적인 자세로 업무에 임하라"였다. 무슨 일이든 찾아서 하고 다른 직원이 바쁘면 몸소 물어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귀를 쫑긋 세워야 한다라고 상사로부터 들었다.


그러나 요즘엔 그렇게 상사의 말을 고지 곧대로 실행하는 직원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 시절엔 그래야 되겠구나? 그래야 인정받고 평탄대로 가 열리겠구나라고 짧은 생각을 했었다. 물론 요즘에도 그렇게 주문하는 상사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부하직원의 성장을 위한 것이라기 보단 오직 그들을 위한 그들만의 논리인 것 같다. 조직은 조건대로 군소리 없이 순응하는 직원을 선호한다. 그래야 일 시키기도 편하고 잘 부릴 수 있기 때문에 자기주장이 강한, 색깔 있는 직원들은 조직에 있어 불편한 존재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상사들의 지시에 군소리 없이 행하는 "Yes man"들에게 일은 집중 투하되게끔 되어있다.
상사들이 만들어 놓은 조직의 논리로  포장된 가설(假說)에, 약자(弱者)들은 상사의 지시에 퀵 서비스를 제공하는 택배직원으로 길들여져 왔던 것이다.




키보드 자판소리와 업무 문의 전화 벨 소리가 교차하면서 나의 시선은 키폰 전화기에 슬쩍 시선을 던져보고 윈도 창 여러 개를 엑셀과 파워포인트 파일에 섞여 띄워둔다.

그간 지시받은 업무의 진행을 보고하는 주간업무보고 내용을 보완하고 빠져있는 내용과 한 줄을 더 채우기 위해 나름 불필요한 업무 중간단계를 삽입해서 한 줄을 늘려 쓴다.

거의 하루 종일 앉아있는 그 시간 동안에 딴짓하지 않았다는 증빙서류와 영수증을 보여주는 주간업무보고는 

주차위반 범칙금과 같은 세금납부고지서와 비슷한 강도의 스트레스를 요구한다.

일단 가장 중요한 주간업무보고를 작성하고 인터넷 창을 여러 개 띄운 다음 키보드 자판 위 alt 키와 tab키의 위치를 동시에 눌러보면서 오감 작동 안테나를 작동시킨다.

 

전면 유리창에  반사된 후면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는 발달된 시각과, 예민한 청각은 상사의 동태파악에 가장 중요한 전략무기 중 하나이다. 요즘같이 추운 날씨에 감기에 걸리기라도 하면 이 기능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선제 기습 공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건강관리에도 신경 써야만 한다.

특히, 발걸음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임원의 경우 임원방의 개폐(開閉) 소리에  예민해져야만 후폭풍을

피할 수 있다.

십 수년 동안 alt+tab 키의 기능을 활용 해왔기에 익숙하지만 그러한 행동 자체가 씁쓸하게 느껴진다.

늘 그래 왔듯이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삼삼오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메뉴에 대해 물어보나 의미 없는 웃음과 "글쎄?"라는 표현이 예상했던 답변이라는 듯 침묵 속에 B1에 도착한다. 그리고 막내에게 메뉴를 떠넘기고

영혼 없이 따라간다. 지극히 가리는 음식이 없다면 그냥 따라가는 게 이미  규정화된 지 오래되었다.


호출(呼出)

"전화나 전신 따위의 신호로 상대편을 부르는 일"?
"적당히 말 잘 들을 것 같은 부하를 긴급한 척 부르는 상사 또는 임원의 행위"

그렇게 점심식사 후 노곤한 몸을 의자에 기대어 엑셀 화면 직사각형 Box에 집중하려는 그 순간에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어렴풋이 귀를 간지럽힌다.
신경이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심히 받으면 가끔은 환청이 들리곤 하지만 환청과 현실을 구분 못할 정도의 스트레스는 없었기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임원과의 주파수가 통해버렸다.
늘 그래 왔듯이 필기도구와 다이어리를 재빠르게 챙기고 그를 향해 다가가면서 어떤 업무를 주문할 것인지 두려움을 넘어 긴장감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임원, 내가 아는 임원의 경우, 상대방의 전문분야 또는 어떠한 업무를 잘 해내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미미한 수준이라 엄한?(까닭이나 이유 없이 분명치 않은) 업무지시가 대부분이었다.



야구선수에게 어린 시절 몇 번 축구를 해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축구 원-톱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주는 경우를 비일비재하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고도 명쾌하다.  
운동신경이 좋으니 축구도 잘 할 거야! 어려운 거 없어 수비수와 미드필더가 연결해 준 공을 받아서
골대를 향해 힘껏 차서 골만 넣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지!
반문하고 싶었다.
"그렇게 주식을 수십 년간 해왔으면서 왜 돈을 벌지 못하냐고......
주식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냐고!
모니터로 산 주식의 등락을 보고 있다가 떨어질 때 사서 오를 때 팔면 되는 거 아니냐고!

임원이라는 직책이, 물론 임시직원의 약자(略字)이기도 하지만, 지시와 명령으로 부하직원을 부려 자신의 자리를 견고히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의 Needs가 무엇인지 Why 이 업무를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의논하고 고민을 들어주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너무 이상적이라면.. 최소한 누구에게 왜 이 업무를 시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엄한 업무지시에 말문이 막혀 Yes Man의 후예처럼 그렇게 조직 논리에 순응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일단, 호출한 사유와 왜 그 업무를 내가 해야 하는지는 영원히 풀지 못할 수수께끼로 남겨둔다 치더라도,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모니터 속 엑셀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내 영혼까지 갉아 먹힐 것 같다.


퇴근(退勤)

일터에서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거나 돌아옴?
임원이 떠난 후 눈치를 살피며 피곤한 모습을 보여주며 상사의 허락하에
집으로  귀가함


이른 새벽 집을 나올 때와는 다르게 퇴근 시점부터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직장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복병(伏兵)인 교통상황이 아직 남아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기 위해 퇴근길 정체를  정면돌파해야 하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한결 가볍다는 것을 걷는 속도와 구두 소리 만으로도 읽을 수 있다.


첫 번째 고비사막인 경부고속도로를 힘겹게 지나고,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올림픽 대로마저 통과하고 나면, 피곤함과 기아로 인한 짜증이 서서히 목덜미를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평균 퇴근 시간 1시간 30분에서 2시간 10분을  길바닥에 기름처럼 흘려서 귀가하는 시간이, 빠르면 저녁 8시 30분...... 결국 이 시간까지 빈속인 채 귀가해 헐레벌떡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9시가 조금 넘는다.

이제부터는 자녀와의 연장전에 돌입하게 된다.

그나마 가장 행복한 순간들...... 아이들과의 씨름은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행복감 인 것이다.


취침(就寢)
"잠자리에 들어 잠을 잠"?
"출근을 위해 드러누움"


잠자리를 펴고 천장을 멍하게 바라보다 소등하는 그 사이에 잡념이 내 옆으로 와 먼저 누워있다.

오늘 하루에 대해 내일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들이 수 많은 가정들과 함께  머릿속을 두드리기 시작하지만

스마트 폰 알람을 확인하고 베개 속으로 좀 더 깊숙이 파 묻혀버린다.

내일 생각하자...... 내일!

 

조직생활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이 세상에서 원래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거라고 그냥 영혼 없이 우기는 게 문제인 것이다.
그나마 논리가 있다고 쳐 주면 상명하복이라는 미명 하에 지극히 단순하고도 간편한 명령과 지시로
상대방을 제압한다.
강자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느낄 수 있지만 약자는 스스로 강하다는 것을 말하고 인정받으려 한다.


이렇게 퇴근 후의 시간은 다음날 새벽 출근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으로  존재한 지 오래다.


내일의 일진운(日辰運)은 상사와 임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결정해야만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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