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라디오를 켰다. DJ는 활기찬 목소리로 전화를 어딘가로 건다. 신호음이 가더니 애청자 인듯한 한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대뜸 DJ는 노래 큐~~ 라고 말했다. 전화를 받은 남자분은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노래를 불렀다.
"그땐 우리 너무 어렸었다며
지난 얘기들로 웃음 짓다가
아직 혼자라는 너의 그 말에
불쑥 나도 몰래 가슴이 시려"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다. 많이 불러본 솜씨였다. DJ의 폭풍 칭찬에 그 시민은 몸둘바를 몰라했다. 너무 간만에 이 노래를 만났다. 길가다가 10년전 절친이었던 친구를 만난 느낌이다. 라디오를 끄고 핸드폰 멜론을 열어 원곡을 다시 들었다. 어느덧 나도 함께 차안에서 운전대를 부여잡고 열창을 하고 말았다.
학창시절 전람회2집부터 김동률의 음악 애청이 시작되었다. 명곡들은 여전히 내 삶의 곳곳에 추억으로 남아있다. '고해소'를 들으면 힘들게 학교 야자끝나고 터덜터덜 집에 가던 골목이 떠오른다. '거위의 꿈'을 들으면 대학때 시위를 하다가 주모임에서 이탈해서 숨어 다니며 힘들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노래'엔 몇년전 커피를 입에 물고 힘든 직장생활을 버티던 내 자신이 서려있다. 그의 음악은 내 인생의 사운드트랙이다. 작년 콘서트에 가서 그의 녹슬지 않은 목소리에 감탄했다.
그렇게 좋아했던 김동률의 음악도 사실 챙겨들은지 오래다. 지금은 보물상자에 고히 모셔둔 추억과 같다. 내가 자주가는 공원의 늘 그자리에 있는 나무들 풀들과 같은 곡들이다. 어쩌다 그의 노래를 방송에서 마주치면 과거의 그 음악을 들어서 좋았던 추억이 소환된다. 언제 들어도 좋고, 마음이 푸근해진다. 현재 나를 들뜨게, 호기심에 가득차게 하는 음악과는 또 다르다. 가을이 그의 음악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