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할일이 있고 바쁠때는 무의식에 있던 생각이나 감정들도 고개를 들지 못하다가 숨 좀 돌리고 여유가 생기거나 일이 없어서 한가해지면 눌러왔던 생각들과 감정들이 나 좀 봐달라고 아우성 치는 것 같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이제 좀 신나게 놀아야지!' 마음먹자마자 독감이 찾아왔다. 정말이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정도로 고통과 통증이 심했고 기운이 없었다. 코로나도 약 안 먹고 견뎌냈는데 너무 아파서 약을 때려 넣어도 아팠다. 행여나 아이가 걸릴까 봐 집에서도 노심초사하며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며칠 후 접촉 한번 없었던 남편에게 독감이 찾아왔고 며칠 후 아이까지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열이 없었던 남편은 미미하게 지나갔고 나는 아이가 열이 오르던 날 밤새 간호를 하다 며칠 후 대상포진이 왔다.
얼굴에 수포가 올라왔는데 진안 의료원 오진으로 골든타임을 놓쳐서 통증도 수포도 바로 잡지 못한 채로 지독한 병치레를 하며 보내고 나니 1월 한 달이 다 지나갔다. 다행히도 한별이는 미미하게 지나갔지만 혹시 다른 아이들에게 옮길까 봐 아픈 와중에 한 달 동안 가정 보육을 했다. 순식간에 한 달이 지나간 거 같으면서 정말 길고 길었던 한 달이기도 했다. 체력이 안 되는 상황에서 육아는 정말 곤혹스럽다. 그럴 때마다 모든 화살이 남편에게도 향한다.
스트레스가 극도로 올라가던 날, 있는 힘을 다해 기차를 타고 친정집으로 갔다. 살림만 안 해도 스트레스가 줄어드는 것 같았다. 엄마의 보살핌으로 살림으로부터 해방되는 것만으로도 통증도 점점 사그라 들어갔다. 여전히 얼굴에 올라온 수포는 괴물같이 남아있지만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천천히 일상으로 복귀 중이다. 계획했던 장기 해외여행도 취소해야만 했고 올 한 해 계획도 어수선 하지만 움츠렸던 겨울이 활짝 피어나기 위한 봄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으리라고 위로해 본다.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뒹굴거리며 죄책감 없이 넷플릭스에 빠져 있기도 했고 한별이와도 찐하게 붙어있으면서 이쁜 순간들을 많이 저장해 두었으니. 손가락 까딱 하기 힘든 날들도 많았지만 손가락 까딱할 수 있는 날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 엄마로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