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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Dec 31. 2019

귤 철

제주도민입니당

  

월요일은 가장 바쁜 날인데 사람이 적다 싶으면 밀감 따러 가는 철이다. 밀감 따러 가는 철인데 사람이 많다 싶으면 비가 올 예정인 것이다. 제주도에 친인척이 없는 우리는 귤을 사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직장을 다니고부터 여기저기서 노지 감귤을 많이 받는다. 자고로 노지 감귤은 크기가 작을수록 맛있다. 며칠에 한 번씩 봉지째로 받으니 아껴먹지 않아도 된다. 껍질을 버리지 않고 하루 동안 모아둔다. 귤 향이 은은하게 퍼지며 천연 방향제 역할을 한다. 이럴 땐 육지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약을 올려주고 싶다. 관광객들이 하는 감귤 따기 체험은 상품이 안 되는 노지 감귤 나무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아빠는 신 것을 잘 못 먹어서 귤을 갈아서 음료로 만들어 숨을 참고 들이마신다. 탁자에 올려둔 나머지 귤들은 빨리 상하지 않게 사이를 모두 약간씩 떨어뜨려 놓았다. 매번 명절에 친척들에게 귤을 보내는데 서귀포 남원읍 귤이 최고 반응이 좋다. 서울 사는 남자친구에게도 그 맛을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겨울이 오기 전에 헤어졌다. 제주도 아가씨를 만나는 이점을 보려면 함께 겨울을 지내야 한다. 언제는 강아지가 밥 먹는 나를 아련하게 쳐다봐서 귤을 줬더니 냄새 한 번 맡곤 쳐다도 안 봤다. 레드향 천혜향 한라봉 이런 건 사실 제주도 살아도 잘 못 먹는다. 귀하다. 하우스감귤 때문에 365일 귤을 먹을 수 있지만 아직도 귤 하면 이불 속에서 까먹는 귤이 떠오른다. 귤 철이 뚜렷하게 있는 제주도에 살아서 더 실감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선 명절이 아닌데도 귤 철만 되면 직장에 상품성을 띠는 귤 상자가 계속해서 들어온다. 그것을 봉지에 나누고 나누고 나눈다. 이미 집에 한가득이라며. 다들 눈송이같이 동그런 귤을 안고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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