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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Mar 27. 2017

4. 여행과 사진을 별개로 구분하다.

사진이 나를 증명하지 않고, SNS가 나를 증명하지 않는다.

사진 찍고 싶은 욕구는 곧 보여주고 싶은 욕구로 이어진다.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이든 잘 알지 못하는 낯선 SNS친구이든 이 욕구가 가장 치솟을 때는 바로 여행을 갔을 때이다. 익숙한 환경과 상황을 떠나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나는 이것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었는지 평소와 다름을 증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우리가 봐야할 순간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사라진다. 내 옆사람의 눈빛,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1초를 사이에 두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 나는 카메라 속 풍경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온 것이 아닌데 마치 제3자처럼 카메라를 투영해서 보고 집중한다. 삼각대를 놓고, 타이머를 맞추고, 셀카봉으로 사진을 백 장 정도 찍고, 돌아가는 길 풍경을 모두 놓치며 옆 사람과 대화 나눌 기회를 놓치면서까지 사진을 고르고 보정할 필요가 과연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전제가 따라 붙었더라도 과연 그랬을까.


물론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라는 관용어도 있다. 나는 사진이 좋지만, 사진을 염두해두지는 않는다. 어디서나 사진 촬영을 생각하고, SNS에 올릴 것을 의식하고, 사진에 비춰질 옷과 표정을 신경쓰지 않는다. 최근에 여행을 앞두고 인스타그램을 탈퇴하자, 사진을 찍어봤자 올릴 데도 없거니와 자랑할 곳도 없게 되었다. 내가 여행을 갔는지조차 아는 사람도 거의 없고 나는 손에 핸드폰을 쥐고 있을 일도 없었다. 친구가 사진 찍자는 말을 종종 하지 않았다면 아무 사진도 남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갤러리 속 사진이 남아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의 추억도 증명되지 않는 걸까 여행이 끝난 뒤에 나는 스스로 질문을 던졌고, 사진은 추억을 증명해주기는 커녕 추억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버린다는 생각에 가닿았다.


그 무슨 이유가 됐던 간에 SNS에 사진을 올리는 사람은 '내가 이런 사람이다' 혹은 '내가 이런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다'하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특징을 마인드맵처럼 캐고 캐서 들어간다면 SNS에는 장점이 하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장점이라 여겼던 것이 모두 단점으로 보이는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개개인이 가야할 길은 하나인데 나의 사진에, 나의 삶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그것은 일시적인 재미에 불과할 뿐 결과론적으로는 수많은 길을 낳는 일이다. 이 길과 저 길로 모두 가보다가 어느 한 길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자신을 보는 일. 따라서 나는 행복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있는 불행을 보게 되는 즉 인기야말로 본질을 방해하는 가장 달콤한 유혹인 것이다. 무엇을 표현해야 하고 무엇을 표현할 필요가 없으며, 무엇을 찍어야하고 무엇을 눈에 담아야하며, 누가 알아야하고 누가 몰라도 되는가. 언제나 여행의 동반자는 사진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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