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31
내 사랑이 곤히 잔다.
간만에 마음이 들뜬 나. 남은 2호도 재워야 하지만 설거지가 쌓여있지만 마음이 가볍다. J에게 말했다. "역시. 이런 시간이 필요했어." 오늘은 평소와 달리 내가 정후를 재웠다. 잠들기 전 정후와 한참을 뒹굴고 속닥이고 하루를 곱씹었다. 생각해보니 잠든 준후를 유모차에 태워 빵집데이트도 다녀왔다. 그래. 이런 시간이 필요했어. 우리 둘의 시간.
준후를 낳고 알게 모르게 우울한 마음이 잦았다. 큰 애 때는 간헐적이었고 순간적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이상하게 일정수준의 우울감이 '지속'되었다. 수치로 보자면 이전만큼 극적이지는 않은데 항상적이다보니 자꾸만 가라앉고 의욕이 없었다. 처음만큼 허둥대지 않아서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인내의 역치가 낮아지는 내 자신을 보면서 '아 나 사실은 힘든거구나.' 정도까진 그래도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도 뭔가 있다. 그 정도를 넘어선 뭔가. 뭐지. 뭐지. 이 불쾌한 우울감은 뭐지. 대체 왜지? 뭐가 문제지?
자가탐색에 들어간다.
두 아이 돌보느라 몸이 힘든 것도 맞고 새로운 삶의 패턴에 적응하느라 버겁고 한켠으론 호르몬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거다. 내가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나 싶을 정도로 상실감과 좌괴감 팍팍 심어주는 국정사태와 혼란스러운 세계정세도 한 몫했다. 그런데 그것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두 아이를 다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무력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제 오늘 깨달았다.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는걸.
그건 바로 품 안의 자식을 차츰 벗어나는 정후에 대한 아쉬움.
아이는 자꾸 커가고 참으로 건강하게 제 자리 찾아가는데. 고맙게도 동생도 잘 받아들이고 제 몫의 훈련을 잘 참아내는데. 철없는 엄마가 헤매고 있었다.
성장의 과정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전만큼 정후와 충분히 교감하지 못한데서 오는 아쉬움이 컸나보다.
준후가 몹시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머잖아 쭌 역시 차츰 엄마를 이전만큼 필요로 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어 벌써 슬프고. 어쩌면 이 시간이 평생을 두고 곱씹을 '우리들의 아름다운 시절'이 될 것만 같아서. 동네 할머니들 말씀처럼 '그 때가 좋았지. 그 때 그 시절. 업고 안고 애 키우던 시절.' 할 것 같아서. 오지도 않을 내일을 생각하면서 오늘을 충분히 즐거워하지 못했다. 준후 젖먹이는 걸 보며 환갑이 넘으신 지인께서 말씀하시길. "그 때가 행복했다."고. "사람이 늙으니까 쓸모가 없어진다."고. 그 말이 자꾸만 떠오르면서. 이제 혼자서 많은 걸 해내는 정후를 대견해하다가도 이전의 하나됨이 아쉬워 쓸쓸한 마음.
어른들이 다녀가신 밤, 거실에서 함께 자자는 할머니 말씀에 정후가 흔쾌히 그러겠노라 하는데... 왜인지 모르게 아쉬웠다. 아. 이제 나 없이도 잘 수 있구나. 그러면 안됐는데. 굿나잇 인사도 안 하고 자는 정후에게 괜히 입을 삐죽거렸다. 그제서야 나랑 준후만 방에 남겨져있던걸 발견한 정후가 자꾸 안방과 거실을 오간다. "할머니. 잠깐만 나 엄마에게 할 말이 있어가지고." 그리고는 막 아무 말이나 끄집어내서 말을 건넨다. 그러다 한마디 툭. "엄마랑 준후만 여기 따로 있네." 할머니랑 약속한게 있어 아빠랑 거실에 누웠다가도. 마음에 쓰였는지 다시 또 내 옆으로. 그 모습이 안쓰러워 미안해졌다. 좀 더 건강히 응원해줬어야했는데. 멋진 형아가 된거라고 격려해줬어야했는데. 그 날 밤을 지내며 나도 모르던 내 마음을 깊이 깨달았다. 만 세돌을 지내고 새로운 애착단계로 들어선 정후에게 걸맞는 엄마가 돼야하는거라고. 돼겠다고 다짐했다.
내 뮤즈였던 후는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었다. 남편이 서운해할 정도로 후에게 애틋했던 나. 물론 J는 늘. 시간이 자기 편이라며. 아들들은 제 짝 찾아 떠날테고 본인만 남을테니 결국 돌고돌더라도 남는 건 부부뿐일거라며 종종 아들에게 근자감을 보였었는데. 그의 말대로, 순리대로, 나의 기도대로. 후는 자신의 세계를 향해 뚜벅뚜벅 힘찬 걸음을 내딛어간다.
엊그제는 후가 밤새 열이 펄펄 끓고 앓았다. 간만에 정후를 안아재운다. 어느새 내 2/3 가까워진 정후를 안아올리면서. 거울에 비친 우리 둘의 모습, 아들녀석의 얼굴을 번갈아보면서. 기분이 이상하다. 점점 더 자라 나보다 더 커지고 울긋불긋 수염이 올라오고 굵은 목소리로 제 방문을 닫게되면 그 땐 또 어떤 기분으로 아들을 바라보게 되는걸까.
밤새 시름시름 끙끙 앓아대던 정후가 새벽녘에 갑자기 벌떡 정신이 깨더니만, 이전의 정후로 돌아가 재잘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그렇게 좋았다. 열은 그대로였지만,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후와 단 둘이 집중해 대화한게 얼마만인가. 열과 감기는 곧 지나가지만, 우리가 쌓아가는 사랑의 순간들은 영원히 남겠지 싶어 힘이 불끈 났다. 아이와 나누는 조잘한 대화들, 팔베개한 순간들, 기대고 부딪고 심지어 날세웠던 순간까지. 얼마나 그리워질까. 얼마나 다시 만지고 싶어질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하염없이 오늘이 감사하다, 더 없이 소중해진다.
두 아이가 동시에 우는 일촉즉발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지난 백여일간 나는 어떻게든 아이들을 잘 재우려고 애를 썼다.
감사하게도 준후가 자랐다. 사람이 자란다는게 얼마나 희망적인 일인지. 성장한다는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준후가 자라온만큼 형아된 정후가 자라고 그만큼 두 아이 부모로서 우리가 자랐다.
이제는 잘 재우는 걸 넘어 좀 더 촘촘히 교감하고 사랑해 갈 새로운 도약점에 선다. 준후도 제법 눈을 맞추고 까르르거린다.
애들 재우고 샤워하는데 J가 문밖에 서 얘기한다. "표현하지 못한다고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 사근거리고 다정하기 그지없던 정후가 점점 사내아이로 커가면서 느끼는 내 당혹감, 그 아쉬움에 대한 답이었다. "나랑 목욕가면서 정후가 그러더라. 동생은 이제 더 필요없다고. 그리고 준후가 좀 더 크면 엄마랑 많이 놀거라고 지금은 준후가 너무 어려서 기다려주고 있는거라고."
눈물이 핑 돌았다. 준후가 처음 자기 엄지 손가락을 입에 넣고 쬭쬭 빤 날. 그 모습을 본 정후가 박수를 치며 외쳤다. "준후야! 축하해. 이제 뒤집기만 하면 엄마랑 같이 공동육아 갈 수 있겠다. 형아가 그럴 날만 기다리고 있어."
물론 정후는 자랐다. 이전만큼 나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혼자서도 점점 더 많은 것을 해나간다. 그러나 그것이 곧 사랑의 철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아이가 나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기다려주고 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를.
아이들을 키우면서 많은 걸 배운다.
고등교육까지 16년동안 받은 정규교육은 엄마로서 배운 3년에 비할바가 못됐다. 가장 격렬하게 성장하고 웃고 우는 시간이었기에.
부모란 세례요한의 고백 비슷하게,
자식의 인생에서 점점 더 쇠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다. 빛과 소금으로 썩어져 자신은 쇠해가야한다. 아이가 스스로 자립해 자기 삶에 주어진 과제와 성장을 잘 해내갈 수 있도록 토양을 마련해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인 것 같다. 오롯이 하나였던 아이를 한걸음씩 자립시켜가는 과정이 때론 홀가분하고 때때론 아쉽지만서도. 우리에게 뺏기지 않을 추억과 사랑의 기억을 남겨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한가지 다행인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모이자 주의 자녀인 나 자신으로 부르셨단 사실. 나를 주어로 하는 1인칭 시점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를 누군가의 자녀로, 주의 자녀로, 주인된 인생으로, 주인을 섬기는 인생으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다들 잠든 밤, 끙끙 앓는 큰녀석 숨소리와 교차해 들려오는 J의 숨소리, 사이 사이 껴드는 작은녀석 숨소리를 녹음해놓는. 변태적인 엄마는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