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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Dec 18. 2022

브로콜리너마저의 새노래 <너를 업고>

도망친 자리에서


불편한 진실이지만, 나의 이십대는 거즈반 엄마와의 투쟁에 가까웠다. 



'엄마로부터의 자유', 나아가 '엄마로서의 자유'를 향한 질주.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사람처럼 엄마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부던히 애썼다. 

내가 받은 상처를 보듬는 과정이라 여겼지만 돌아보니 상처를 입힌건 그가 아닌 나였다. 


그를 사랑하는 만큼, 그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그 무게가 버거워서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머리가 자라고 마음이 자라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지켰던 그의 세월이 아까워서, 그 인고의 복에 겨워서

한걸음 한걸음 더 멀리 떠나온 나였다. 


엄마는 내가 스물이 되었을 때, 

드디어 의지할 수 있는 벗이 생겼다 안도했을테지만.... 


나의 뿌리였고 모든 것이었고, 산이자 바다였던 엄마와 무게중심을 맞추며 함께 걷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작업이었다. 


첫 아이를 낳고 느꼈던 두려움과 환희가 여전히 생생하다. 

아이와 새롭게 쌓아가는 관계가 마치

엄마와 나의 관계를 새롭게 대신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몰입했고 전적으로 나를 쏟아부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온전해지지 않는 것 같은 엄마와 나의 관계를 수도 없이 복기하면서,

그 무엇이 있었을거라고. 

엉킨 매듭을 찾고 풀게 된다면 이전처럼 내 마음이 다시 편해질 수 있으려나 숱하게 기도했던 밤들. 


한참이 지난 요즘에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의 도망은 사실은 그가 아닌 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엄마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달아나고 싶었던 내 마음이 사실은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그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절대로 씻을 수 없는 원죄에 관해. 

그의 젊음과 자유를 먹으며 자라 온 내 삶을 수용하기에 버거워서, 그 원죄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해 그래서 내달렸다는 사실을.

아무리 노력해도 갚을 수 없는 부채를 짊어진 사람처럼 있는 힘껏 도망치는 나를 바라보던,

그 때 엄마의 마음은 어떤 색깔이었을까. 


십여년의 진통 끝에 그렇게 어렵게 아주 어렵게 어렵게 와서야 이제서야 나는 약간의 균형을 찾게 되었다. 

어느 순간 또 다시 흔들려 버릴지도 모를 균형이겠지만.  


엄마가 되고 십여년에 접어들어서야

도망치는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된다. 

위태로운 독립의 과정을 힘겹지만 묵묵히 지켜봐 온

엄마의 오랜 사랑을 떠올린다. 


평생을 다 해도 갚을 수 없다 여겼던 희생의 순간들이 

어쩌면 그에게도 소멸의 시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열살이 된 큰 아이의 결정적 기억 속에서 내게 가장 찬란했던 그 시절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그럼에도 변함 없이 나에게 그 시간들은 사랑 그 자체였고, 행복으로 꽉찬 날들이었다. 

엄마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게 나 자신을 다독인다.


나를 사랑했던 엄마의 시간 역시

고되기만 했던건 아니었으리라.

모욕을 감수해야만 했던 순간들로 점철된 건 아니었으리라. 

냉기 어린 현실에도 불구하고 나를 안고 먹이고 업고 돌보아주었던 엄마의 시절들 역시 따사롭고 아름답기도 했었으리라 자위해본다.

후회 없이 자유롭게 그를 계속해 더 많이 사랑해야지. 

아니 사랑하는 이 마음을 더 많이 표현해봐야지 마음 먹는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신곡 링크를 받아들고 엄마에게 지겹게 들었던 레퍼토리를 떠올렸다. 

극도로 예민했던 아이. 밤마다 나를 안고 걸었던 한 밤의 천변길. 내 기억 속에선 사라졌지만 마치 기억이 나는 것처럼 어느 때든 떠오르는 엄마와 나의 그 시절. 


음악은 참말로 기묘한 힘이 있구나. 애써 눌러둔 숨겨진 그 마음을 끄집어 올려내고야 마는 그 힘이 참 대단하구나.    


언제든 가 닿을 수 있는 사랑만 떠올려도 이렇게 마음이 절절한데

생떼같은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오늘은 얼마나 무겁고 처참한 것일지....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길 기도하며 분투하고 있는 유가족들과 생존자들, 떠나간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꿈나라를 건너가는 너

어떤 것도 너를 막지 못하지

나는 바람이 되어 너를 날려보낼게

너를 업고 동네 길을 걷는다

나도 잠깐 잠이 들었나

나는 다 큰 아이가 되었네

.

.

너를 업고 노래를 부른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기를

너는 다 큰 아이가 되었네


브로콜리너마저(@band_broccoliyoutoo)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Dandelion (너를 업고) - YouTube


[공지 공유]

잘 지내세요?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없는 말인지 새삼 깨닫는 요즘입니다. 우리가 겪었던 그 날, 그 밤이 너무도 힘겨운 시간이었기에 몸도 마음도 쉽사리 괜찮아지지 않을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당신의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습니다. 그 마음을 담아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봅니다. 

10월 29일 이후, 누군가 탓하고, 진상과 책임규명에 소극적인 국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분노가 먼저 앞서 충분히 애도하고 슬퍼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이들의 답답한 행동이 우리를 더 슬프게 했습니다. 그 밤 이후 마주한 세상이 우리가 말할 힘을, 용기를 멈추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애썼던, 그 밤을 함께 겪었던 이들이 오히려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화가, 분노가, 슬픔이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가 마음속에만 머물러 있는 분들도 있을꺼라 생각됩니다. 

당신이 겪고 있는 지금의 마음, 답답함, 슬픔, 말하지 못한 이야기. 

곁에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당신의 지금이 혼자 외롭지 않도록 곁에서 함께 하겠습니다.

10월 29일 이태원의 안타까운 기억을 가지고 있는 지역주민, 구조활동을 했던 시민과 구조자, 부상자, 생존자 및 유가족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곁에 02)723-5300

카카오채널 : 10.29이태원참사피해자권리위원회

이메일 : 1029dignit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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