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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태진 Sep 14. 2021

이기주의 그리고 이타주의

지금 생각해 보니 민주시민이나 세계시민이란 사회적 화두가 등장한지도 시간이 꽤나 지났습니다. 그런 사회적 개념들이 우리 사회에 화두로 나타난 것은 아마도 그런 사회적 특성이 현 사회에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거나 그로 인해 생겨나는 사회적 문제들이 일기예보식으로 표현하면 경고 수준을 넘어 위험 수준까지 도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민주", "세계" 및 "시민"이라는 개념에는 사회적인 뉘앙스가 강하게 배어 있고 이른바 개인주의와 날카롭게 대립하는 느낌을 줍니다.  물론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군집 동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인 프라이버시, 즉 사적 영역도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조건이기도 합니다. 저는 대학생일 때 접하고 아주 흐릿하게나마 이해했던 변증법을 믿는 편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개인적인 직접적 경험들과 산문 지상에 오르곤 하는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적 현상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대학생일 때 접한 변증법이 너무 낙관적인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아직까지 세력을 완전히 잃지 않은 자유주의의 재등장을 보면서 오래전 역사에 등장했다가 그 내재적 모순으로 인해 보호주의에 자를 내주었던 자유지상주의가 역사에 다시 나타난 현상은 변증법적 운동 원리와는 사뭇 일치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표현을 쓰면 단번 저를 케케묵고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조삼스럽지만 저는 언젠가부터 음양오행설 중 음양의 원칙을 어느 정도 믿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남녀를 차별하고 남성의 절대적 우위를 믿어서가 아니라 좀 건방지게 말하자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서로 밀고 당기는 갈항적 관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서입니다.


 그런 저의 생각을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개인과 사회도 밀고 당기는 갈항적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개다가 한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고 나아가 발전시키려면 긴장된 갈항적 관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특정 공동체의 특정한 시기적 상황 맞물려서 이른바 "시대정신" 영향을 강하게 받는데 한 가치를 위해서 대비되는 가치를 무시하거나 억압하게 되면 대비되는 두 가치는 길항적인 긴장된 관계를 상실하고 부각된 가치가 폭력을 행사하는 전제 군주와 같은 자리에 등극해 건강한 생명력을 잃은 이올로기로 한 사를 억압적으로 지배하면서 사회적 우상으로 작동할 위험이 농후합니다.


그래서 저는 비단 한국사회만은 아니겠지만 유독 한국사회에서 심한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른바 "개인주의"가 건강성을 회복하려면, 그리고 민주시민이나 세계시민이라는 피상적이고 헛헛한 개념이 건강한 생명성을 얻으려면 개인과 사회의 건강한 길항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기주의라는 개념이 손가락질당하고 멸시당하지 않으려면, 나아가 입에는 자주 올리지만 너무 거창하고 게다가 너무 추상적이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엄두도 내게 만들지 못하는 이른바 이타주의 생명력을 불어넣어 인간적인 동기로 작동하게 하려면 개인과 사회, 달리 말해서 이기주의와 이타주의가 긴장된 건강한 길항적 관계를 맺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긴장된 건강한 길항 관계를 복원하려면 일단 우리가 채 의식하지 못하면서 하는 말과 행동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데 어느 쪽으로 더 많이 또는 심하게 기울어졌느냐는 문제가 있겠지만 우린 완벽하게 이기주의적이지도 완벽히 이타주의적이지도 않고 중요한 점은 내가 경험해 본 물질적 심리적 결핍이나 불편함 또는 불만족 등을 통해 타인의 결핍과 편함 그리고 불만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그 바탕에서 내가 그러한 타인의 결핍이나 불편함 그리고 불만족을 해소하거나 줄이려고 돕는 것이 마땅한지, 그리고 마땅하다면 현재 상황 속에서 일상을 살면서 얼마나 가능한를 따져 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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