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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태진 Sep 14. 2021

이기주의 또는 자기애에 대한 오해

저는 가끔 정신과 의사들이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경험과 지식을 배경으로 글을 게재하는 "정신의학신문"이라는 신문을 인터넷으로 찾아 읽곤 합니다. 좀 뜬금없이 들릴진 모르지만 그 신문에 실린 글들을 읽으면서 언젠가 접한, 프랑크푸르트 학파 2세대의 대표주자인 하버마스가 사용한 "진리성(Wahrheit)"과 "진실성(Wahrhaftigkeit)"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그 글을 쓴 정신과 의사들은 진심으로 그 글들을 썼겠지만 그렇다고 모두 잔리는, 즉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제가 독일에서 태도 심리학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과제물로 리포트를 썼던 내용도 그와 관련이 있는데 이미 옳은 것으로 입증된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교과서 같은 내용도 살면서, 그것도 시쳇말로 황혼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살면서 쌓인 경험들로 그런 교과서적인 내용을 경험하긴커녕 심지어 그와 반대되고 적대적이기조차  한 경험들을 누차 하게 되면 그런 교과서 같은 내용에 코웃음을 치며 냉소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냉소적인 반응을 유발하는 개념에는 이른바 "이성적"이나 "이기주의"와 밀접한 언어적 관계를 맺고 있는 "자기애(Selbstliebe)"가 있습니다.


코로나가 번지기 시작하기 전에 저는 제가 기획하고 연출할 심리극을 준비하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리는 사이코 드라마들을 찾아보러 다녔는데 어느 날 즉흥 사이코 드라마를 진행하던 정신과 의사 입에서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라"라고 그날의 사이코 드라마 주인공에게 지시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이성적"이라는 표현이 사회적으로 심하게 잘못 쓰이고 있다는 이전의 인상을 더 깊이 받았고 어쩌면 그 의사가 그렇게까지 의도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저는 그 표현에 "남들의 처지나 형편 같은 것을 고려해서 생각하고 판단하지 말고 자기 본위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말하라"라고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기주의가 건강한 이기주의로 작동하려면 이타주의와 긴장된 길항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위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기주의가 건강하려면 프랑스 철학자인 미셸 푸코가 사용한 "자기 배려"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제가 이해한 자기 배려란 노동력도 부족해서 자기 인격까지 멋지게 꾸며서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거나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정 상품에 대해 화려한 외피를 입혀 치장하는 마케팅 전략처럼 자신을 타인의 시선을 끌뿐만 아니러 호감을 유발하기 위해 스스로를 상품처럼 마케팅 전략을 써서 외부에 내 보이는 대중추수주의(populism)적으로 살아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가 뭐라 해도, 즉 남이 조롱하거나 비하하거나 멸시하거나 난해도 나만의 취향과 능력과 관심을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하지 않고, 게다가 정신분석학적 용어를 쓰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억압"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면서 아직 채 가꾸어지도 가다듬어지지도 않은 잠재적 상태의 취향과 능력과 관심을 현실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보듬고 가꾸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이기주의란 표현과 언어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자기애"라는 개념으로 돌아가면 있는 그대로의, 즉 본래의 진정한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나 사랑을 이런저런 이유로 경험해 보지 못한,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수준을 넘어서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미워하는 사람은 세간에서 몹시 잘못되게 사용하는 의미로 이기주의자라고 부를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을 배려하고 사랑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자기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관과 관련해서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많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진 인간이 만약 자기 자신을 마워하고 혐오하고 심지어 열등감으로 인해 적개심까지 가지게 된다면 그런 인간관은 타인, 그리고 그 타인들로 구성된 인간 일반에게까지 투영되어서 인간에 대한 적개심을 가진, 즉 인간을 미워하고 혐오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데 이런 사람이 이타적이기를 원한다면 그건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처럼 헛수고일 뿐일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에게 우선적인 관심을 갖고 배려를 하는 태도와 이타주의가 어떻게 적대적이지 않고 공존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 말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타주의란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남의 도움을 받아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어느 정도) 실현하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 각자의 개성과 고유성을 믿지만 동시에 하나의 종으로 묶을 수 있는 인간의 공통된 성질, 이를테면 의식주에 대한 욕구나 특히 어릴 적에 가까운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 등의 공통된 속성도 믿기 때문에 인간이 자기 배려를 통해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들을 깨닫고 인정한다면 바로 그 능력을 바탕으로 나와 다르면서도 공통된 성질을 가지고 있는 타인들을 어느 정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고 타인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나의 이기주의, 즉 자기애의 능력을 바탕으로 내가 과연 도움을 주어야 마땅한지에 대한 윤리적 판단과 함께 그렇다면 내가 나를 배려하면서도 현 상황에서 남을 어디까지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한 도구적 판단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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