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아직 제가 청년이라 불릴 때인 어느 날 티브이에서 그 당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던 어느 국어학자가 그 당시 청소년들이 입에 붙여 쓰곤 했던 "~인 것 같아요"라는 표현에 대해 요즘 젊은이들의 "확신 없는 마음"을 잘 반영해 주는 표현이다라고 평하는 것을 듣고 저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는커녕 그가 고리타분한 책상물림 학자로 자신이 배운 얄팍한 이론으로 현실을 제멋대로 재단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래전의 이 기억이 의식의 층을 비집고 떠오른 이유는 용돈이나 학자금을 벌기 위해서 커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어린 학생들이 음료수를 만든 뒤 마이크에 대고 "00번 손님, 커피 나오셨습니다"라고 한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나서 어처구니없어서 잠시 정신이 멍했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니 제 세대도 웃어른들에게 "그 옷이 잘 어울리시네요"처럼 주어가 사물인 데도 습관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경어를 쓴다는 것을 자각하자 그런 황당한 표현을 쓰는 젊은이들에게 그 표현이 자기도 모르게 입에 붙어버려서 하나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젊은 날 티브이를 통해 들었던 저명한 국어학자의 주장이 완전히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요즘 젊은이들이 흔히 즐겨 쓰는 말 표현이 너무 획일적이고 강박적이라는 느낌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획일적인 표현을 쓰지 않으면 소속되어 있다고 믿는 또래 집단에서 추방당하는 것에 적지 않게 겁을 먹고 있다는 느낌 말이지요. 좀 넘겨짚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 쩐다" 같은 표현이나 너무 심한 성적인 욕이라서 글로 옮길 순 없는 욕설 표현 같은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기 나름대로 다르게 표현하면 "쟤, 좀 이상해, 우리랑은 잘 안 맞는 애로 보여" 하면서 물리적이자 심리적인 거리를 둘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이 어쩌면 제가 너무 지나치게 넘겨짚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가 어렸던 또는 젊었던 청소년기나 청년이었을 때 너무 흔히 들어서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각인된, 지금도 왜 그런 표현이 그런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한때 젊은이들에게 유행했던 유행어를 쓰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어떤 일로 화가 많이 났을 때 "야마 돈다"라고 하거나 재수 없고 황당한 일을 예기치 않게 경험했을 때 "똥 밟았다"라고 하거나 어아 없고 황당한 일을 당했을 때 "X팔" 같은 비속어를 쓰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말 표현으로 세대를 가를 만큼 일반적이지도 심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좋다면 저는 언어의 기능 중에 가리킬 것을 제대로 가리키는 기능이 무척 중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젊은 아이들이 쓰는 지나친 줄임말이 언어의 그런 중요한 기능을 갉아먹을 뿐만 아니라 그런 획일적인 줄임말로는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 때문에 생긴 개인적인 감정이나 욕구를 제한적이나마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언젠가 무슨 일로 초등학교 고학년에 다니는 후배의 아들과 만나서 요즘 젊은 아이들이 흔히 쓰는 줄임말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 그 아이와 얘기를 나누면서 느꼈던 것은 말을 최대한대로 줄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상대방 친구가 그 뜻을 짐작하기 어렵게 만들수록 친구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요샛말로 "짱"으로 등극(?)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후배의 어린 아들은 말 끝에 자기도 요즘 또래에서 유행하는 줄임말 중에 간신히 40% 정도만 외우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도 동네에서 친구들과 같이 놀 때 놀이를 주도하거나 놀이 규칙을 주도적으로 정하곤 했던 골목대장이나 학교 청소 날 반 선생님 대신 반 아이들에게 청소 일을 배정하며 요령 피우지 않고 제대로 맡은 구역의 청소를 잘하는지 감시(?)까지 했고 학급회의 때에는 교실 앞에 나가서 회의를 주도하기도 했던 반장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의 행동과 말까지 사실상 통제하거나 강요하지는 않았는데 그저 상상일 뿐이지만 만약 그 아이들이 그렇게 했다간 다른 아이들이 심하게 반발해서 알량한 권력을 잃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성적이 좋은 아이들과 (죄송하지만 제 의도를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 일부러 좀 상스러운 표현을 쓰겠습니다) 지지리도 공부 못하는 아이들로 나뉘어서 반에서 성적이 1, 2 등을 다투는 아이들이 반장, 부반장으로 뽑히고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거의 다 독차지하곤 했는데 요즘 상대평가에 기반한 성적 등급이 없었던 시절이어서 0.5 점 차이로 등급이 나뉘는 어이없는 요즘의 학교 세태와 비교하면 좀 과장해서 천국과도 같았습니다. 게다가 방과 후 선생님이 내 준 지겨운 숙제를 해야 했지만 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통로나 해방구로는 동네 아이들과 현재 국제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놀이를 하거나 시험 기간에는 시험이 끝나면 거의 송두리째 머릿속에서 사라질 게 뻔한 교과서 내용과 그에 대한 내용을 받아 적은 공책에서 복권의 숫자를 고르는 것보다는 훨씬 덜한 정도겠지만 아마도 내일 시험에 나올 것 같은 내용을 찍어서 머릿속에 쑤셔 넣곤 했는데 이때 위안이 되어준 것은 제 또래로 보이는 여학생이 보낸 낯간지러운 내용을 담은 감상적인 사연을 그 당시 최고의 라디오 DJ들이 감정을 넣어 읽어 주거나 큰 안기를 끌었던 국내외 가수들 중 제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기억이 떠오르니 제 귀엔 대부분 그저 소음으로 들리는 요새 아이돌 그룹 가수들의 노래를 편리해진 통신 기술 때문에 유튜브 등에서 들으면서 열광하는 요즘 청소년이나 케케묵은 과거의 청소년이나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점이 없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드는군요. 하지만 많이 다른 점은 그 당시 이른바 날라리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빵집 미팅이나 롤러 스케이트장이나 19금 성인영화를 몰래 보는 것은 삼가야 했지만 그래도 학교가 파한 뒤 혼자 또는 친구들과 놀 시간이 있었고 그렇게 논다고 해서 부모로부터 심한 꾸중을 듣거나 좀 이상한 아이 취급은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너무 오래 놀았다간 성적이니 공부니 하면서 사나운 표정으로 "너 이다음에 뭐가 되려고 그러니?"라고 어머니로부터 야단을 맞거나 심하면 그 벌로 저녁밥을 못 먹게 되는 블상사(?)도 생기곤 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외우기만 하는 공부가 지겹고 싫었어도 그 때문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은 그 당시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공부에 치여서 노이로제나 정신질환에 걸려 정신과 약까지 먹는다는 말을 들었다면 "걔네 부모는 좀 이상한 사람들인가 봐. 어떻게 애 머리가 이상해질 정도로 공부하기를 닦달하지?" 하면서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쓰다 보니 무슨 회고록처럼 제 어릴 적 얘기를 길게 늘어놓았는데 저는 그 얘기로 "사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나폴레옹이나 슈바이처 같은 희대의 영응에 대한 영웅전 속에 들어 있는, 교묘하게 각색되고 편집되어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지?" 하는 마음 때문에 존경심보다는 주눅부터 들게 만드는 이상한(?) 사람 얘기가 아니라 좀 농담을 섞어 말하자면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 키스는커녕 손도 맘대로 잡아보지 못했던 여자 친구가 딴 놈이랑 바람이 나서 졸지에 버림 당한, 아직 뺨에 솜털이 보송보송 나 있는 젊은 남자가 술자리에서 가까운 친구에게 그 사연을 털어놓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그만 친구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에 대해서 말이지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