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과 고개 돌리며 침묵하는 아이 (1)

by 조태진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젊은 어느 날 저는 서점에서 "딥스, 자아를 찾은 아이"라는 책을 발견하고서 당장 그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피상적인 심리학 지식만을 알고 있는 수준이었는데 이를테면 우울증이라던가 공황장애 등에 대한 겉핥기 식 지식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굳이 상세한 심리학적 지식을 많이 갖추고 있지 않았어도 맥락을 어렵지 않게 이해하면서 그 책을 읽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자기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그 책은 이제 고작 유치원에 다니는 딥스라는 어린아이가 유치원에서 이른바 문제 행동을 일으켜서 선생님들을 몹시 당혹하게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그 문제 행동은 다름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데 딥스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재잘거리기는커녕 온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책상 밑에 웅크리고 숨어서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딥스를 난처하게 지켜보던 선생님들 중 한 명이 딥스에게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했고 부모의 동의를 얻어서 딥스는 어느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게 됩니다. 상담을 맡은 정신과 의사는 상담을 진행하기 위해 우선 딥스의 가정환경부터 살펴보는데 알고 보니 딥스의 아빠는 매우 권위적인 폭군과 같은 존재였고 엄마는 우울증에 빠져 있었는데 그녀가 왜 그런 우울증에 빠졌는지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 속에는 정신과 의사가 상담과 치료를 하기 위한 사전 조사에 대해 상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아서 그 정도 정보만으로 딥스가 기질적으로 자폐증 환자인지 아니면 열악하고 불쾌하고 두려운 환경적 조건 때문에 그런 이상 행동을 보이게 된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 것입니다. 지만 딥스가 보인 이상행동, 그러니까 책상 밑에 웅크려 숨어 있은 자세를 보인 것은 어쩌면 두려운 현실을 피하기 위한 상징적 방어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짐작은 할 수 있었습니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그 정신과 의사는 인형 치료기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딥스는 병정 인형 중 하나를 ‘아버지 인형으로 정하고 그 인형을 모래무덤에 묻거나 인형을 향해 총을 쏘는 시늉을 하는 등 다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아빠에게 향한 격성을 나타냄으로써 그동안 심한 두려움 때문에 마음속 깊이 억눌려 있던 아빠에 대한 분노를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밖으로 드러낼 기회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상담 치료를 끝내고 난 뒤 시간이 꽤나 흘러서 그 정신과 의사가 우연히 길에서 다시 딥스를 만나게 되었는데 어느새 초등학교에 다니는 나이가 된 딥스는 밝고 씩씩한 아이일 뿐만 아니라 반에서 반장을 맡을 정도로 리더십도 갖추고 있는 아이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자폐증의 주요 특징은 대인관계 회피, 심각한 언어발달 장애, 반복적인 괴이한 행동 3가지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사회성이나 언어인지 행동발달 전반에 걸쳐 문제를 보인다고 합니다. 현재 의학계에서는 기질적인 뇌 손상이 자폐증의 원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인데 그 견해에 쌍수 들고 반대할 생각도 능력도 없지만 저는 이른바 "낙인 효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어디선가 접한 피상적인 자폐증 정보를 가지고서 자가 자녀가 다른 또래 아아들에 비해 언어 발달이 늦거나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꺼려하는 행동을 보여서 "혹시 내 아이가 자폐증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정신과를 찾았는데 자신이 두려워한 대로 자폐증 진단을 받으면 전보다 더 자주 아이가 보이는 "유별난" 행동들에 신경이 쓰여서 자기 아이가 자폐증에 걸린 게 확실하다는 달갑지 않은 확신이 점점 더 강해질 것입니다. 정신과 진단을 받기 전에는 주목하지 않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행동들까지 "이상행동"이라고 낙인찍으면서 말이지요.


이런 현상은 비단 자폐증과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처음에는 성격이나 성향 등을 잘 모르는 사람을 점차로 점점 더 알게 됨에 따라 그가 특정한 조건 속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것도 한 예일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 뉘앙스가 그다지 좋지 않은 선입견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텐데 진짜로 이 선입견이 좋지 않게 되는 경우는 자신의 예상과 다른 행동을 상대방이 반복해서 보일 때 그에 대한 자신의 선입견이 (부분적으로라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상대방이 보인 행동의 이유나 동기를 제멋대로, 다시 말해서 자신의 아집 같은 경직된 틀에 억지로 짜 맞춰서 해석, 즉 억지 춘향식의 오해(?)를 의도적으로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혹시 제 말씀을 오해하실 분이 계실지 몰라서 굳이 더 말씀드리자면 저는 비록 선입견이 사회적 쓰임새에서 윤리적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공유된 판단을 받긴 하지만 그 누구도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인간인 우리가 외부의 대상, 그러니까 사회적 제도나 관행 그리고 나와 다른 타인을 처음부터 속속들이 전부 알 수 없고 따라서 처음에 제한된 정보를 통해서 그 대상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한 뒤 그 대상에 대한 일정한 태도를 보이게 되는데 이는 "특정 대상에 대해 먼저 들어온 정보를 통한 견해"라는 뜻을 가진 "선입견"의 정의와 부합됩니다. 좀 엉뚱한 말이지만 그래서 특정 대상에 대한 "좋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가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좋은 선입견과는 딴 판으로 행동하는 상대방을 보고는 실망감, 때로는 깊은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