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글에서 자폐증의 전형적인 증상으로 언어 발달 장애, 사회성 발달 장애가 있고 기괴한 행동을 반복한다는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뇌 과학자도 정신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전문의도 아니어서 이런 장애가 기질적 또는 유전적인 이유로 발생하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드릴 수는 없지만 저는 이런 전형적인 장애들이 어떤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즉 낯을 심하게 타거나 내성적인 아이는 낯선 사람을 몹시 불편해하면서 부모, 특히 엄마의 보호 속에 있기를 선호하는데 이로 인해 사회성 발달이 지연되고 그에 따라 언어적 발달도 또래보다 늦어지는 경우처럼 말이지요.
갑작스러운 말이지만 심리 장애 중에는 "선택적 함구증(selective mutism)이란 장애가 있습니다. 이 장애는 다른 상황에서 말을 잘하면서도 특정한 사회적 상호작용 상황에서는 말을 안 하거나 남의 말에 반응을 하지 않는 아이들이 겪는 장애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이 장애가 기질적인지 환경의 조건 때문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를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시선으로 보면 그런 아이들을 이렇게 묘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쟤는 선천적으로 낯선 사람들 앞에서 수줍음을 많이 타거나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겁을 먹는구나" 하듯이 말이지요. 선택적 함구증이라고 진단받은 모든 아이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제가 본 어느 육아 상담 프로그램에서 선택적 함구증으로 진단받은 아이에게 왜 그런 상황에서 입을 다무느냐고 묻자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요"라는 의외의 말이 불과 예닐곱 살 먹은 아이 입에서 나왔습니다.
물론 저는 타고난 기질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예전보다 훨씬 살벌해진 경쟁이 일상이 되어버렸고 자녀를 가져도 하나만 가지는 것이 보편적인 추세가 되었으며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화학이나 물리학으로 설명하려는 자연과학적인 태도가 보편화된 지금 부모, 특히 엄마들은 신문이나 방송 그리고 입소문을 통해 전해 들은 피상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수박 겉핥기 식으로 자기 자녀를 다른 또래 아이들과 막연히 비교하면서 내 아이가 혹시 어떤 기질적인 문제를 가져서 다른 아이들보다 늦되거나 제대로 클 수 없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선천적인 기질,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분류법에 따르면 또래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내향적인 성격일 뿐이고 그래서 사회성의 발달에 문제를 가져서, 즉 낯가림을 심하게 타서 남들과 말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뿐인데도 자폐증에 걸린 것으로 오해할 소지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낯선 환경에서, 그것도 유쾌하고 편한 환경이 아니라 뭔가 낯설어서 긴장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상황 속에서는 낯익고 익숙하고 친숙한 대상을 찾게 마련인데 이는 어색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게다가 어린아이라면 반드시 자폐증에 걸린 아이만이 아니라 어른들의 시선으로는 이해하가 힘든, 그래서 만약 다 큰 성인이 그런 행동을 한다면 대번에 "저 사람 이상해,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인가 봐"라고 할 수 있는 "괴이한" 행동을 정상으로 분류되는 어린아이들도 반복해서 할 수 있는데 이때 어떤 어른들은 그런 기괴한 행동에 불쾌감을 느껴서 쓸데없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야단을 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티브이 방송 인간극장에서 다튜멘터리로 소개된 자폐증 장애 당사자 배형진 씨와 그의 어머니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오래전 영화인 "말아톤"에서 극 중 초원이(조승우 분)는 누가 봐도 자폐증을 가진 청년인데 그 영화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폐증 환자는 사회성 발달에 장애를 겪는다는데 어째서 엄마와의 관계는 그토록 가깝고 길게 말을 하지 않아도 엄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게다가 그런 말을 하는 엄마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지 설명하기 힘들다고 말이지요. 물론 자신의 바렘과는 상관없이 자폐아를 낳은 엄마 입장에서는 자폐증을 앓는 자녀가 몹시 안쓰러워서 다른 엄마들보다 자기 자녀에게 더 큰 관심과 애정을 표할 수는 있지만 정작 자폐증을 앓고 있는 자녀는 그런 엄마의 말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런 말을 자신에게 하는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 이해할 수 없어서 무덤덤하거나 아예 아무런 반응도 나타낼 수 없을 텐데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그 영화에서는 남들이 온전히 느낄 수 없는 엄마와 자폐증 아들 간의 깊은 정서적 유대감이 느껴졌습니다.
이 말로 자폐증이 기질적이 아니라 전적으로 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게 아니라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동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태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떤 특정 집단( cohort)에 속한 사람을 대할 때 그에 대한 특정한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나이가 많은 노인들을 대할 때 그분들께 마치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어투로 말하거나 치매에 걸린 사람들에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를 대하는 듯이 대화를 하는 경우 말아지요. 물론 나이 많은 노인들이 기억이 감퇴되거나 치매에 걸린 사람들이 마치 어릴 적 먼 과거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간혹 빠질 수는 있지만 그것이 그분들을 얕잡아 보면서 어린애 취급을 해도 괜찮다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취급이 그분들께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예를 들어 치매에 걸린 사람이 항상, 그러니까 잠자는 시간 빼고 늘상 치매 증상을 보이는 것은 아닌데, 게다가 기억이 오락가락해서 때로는 그런 자신에 대해 두려움도 느낄 수 있는데 불붙은데 기름을 끼얹듯이 어린아이 대하듯 그를 대한다면 어쩌면 당사자는 두려움과 함께 기분이 상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경우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대할 때도 적용될 수 있는데 자폐증에 대한 피상적인 정보, 즉 자폐증을 앓는 사람의 특징은 이러저러한 것이다라는 정보를 가진 사람이 그 정보를 바탕으로 자폐증을 앓는 사람에게 판에 박힌 태도를 취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자폐증에 대한 피상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중요한 점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사람도 특정한 장애를 가지고 있을 뿐이지 자신과 다르지 않은 인간으로 생각하면서 그를 대하는가 여부입니다. 이런 태도는 비단 자폐증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어떤 특성으로 사람들을 묶은 뒤 그들을 대할 때도 적용될 수 있는데 특정 집단으로 묶게 하는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그 특정한 요소의 측면에서는 나와 다를지라도 인간이란 공통분모로 볼 때 그들이 나와는 달리 "인간"으로 묶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동을 대할 때 그에 대한 증상들을 감안하면서도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즉 다른 정상적인 아동을 대할 때처럼 대화도 하고 감정적 소통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아이가 자폐증을 앓고 있어서 말이 어눌하고 심하게 낯을 가리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점을 속으로 감안하는 조심스러운 내적 태도가 필요하겠지만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따끔하게 야단도 치고 특히 그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어떤 특정한 욕구를 표현할 때는 장애인이 아닌 정상적인 아동을 대할 때와 같은 태도를 그 아이에게 보임으로써 그 아이로 하여금 자신이 그저 한 평범한 인간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아이가 외부를 향해서 아주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어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회성 이벤트 식이 아니라 꾸준한 끈기를 가지고서 그 아아를 특정 장애를 가진 평범한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할 텐데 앞서 말씀드린 "낙인 효과"는 외부의 다른 사람들이 가질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당사자도 은연중에 자신에 대한 낙인을 찍어서 마치 부모의 선입견으로 인해 어린아이가 "그래, 나는 못난 놈이야"하듯이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자폐증이란 장애의 요소로 국한해서 편협하게 자신을 바라 볼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때 놓치지 말아야 하는 점은 그들을 그렇게 장애를 가진 평범한 사람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그들도 우리처럼 때론 짜증이나 화도 나지만 때론 어떤 일로 즐거워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며 때로는 장난감 같은 것을 갖고 싶은 욕구 때문에 떼를 쓰기도 하는 그저 평범한 아이의 모습들이 우리 시야에 들어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정상적인" 아이들이 그렇듯이 말이지요. 그래서 불필요한 사족 일지는 몰라도 이런 말로 글을 맺고 싶습니다. "지나친 배려나 지나치게 의도된 관심은 때론 원치 않게 상대방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라는 말을 말이지요. (끝)